by joyfulmito Mar 3. 2022
2차 여행의 첫 도시 군산에서는 사흘을 머물러 갈 예정이다. 여행의 템포를 늦추기 위함이기도 하고, 군산이라는 도시가 마음에 들어 더 머물러 가고 싶기도 했다. 근대화 거리 곳곳에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 떡볶이 하나를 사러 가는데도 시간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따끈따끈한 호텔방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와 아들이 좋아하는 김밥을 펼쳐 놓고 TV를 보며 신나게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며칠 전 다녀왔던 고창의 고인돌 유적지가 TV에 나오자 아들이 흥분해서 소리를 지른다. “엄마, 엄마, 저기 우리 갔던 데잖아.” 바로 며칠 전 갔던 곳을 TV에서 보니 반갑기는 하다. 앞으로 어딘가에서 접했을 때 반가워할 장소가 매일매일 늘어나고 있다.
근대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답게 주일 예배를 드리러 간 교회도 1927년에 세워진 역사적인 곳이다. 물론 볼거리도 많다. 교회 가는 길에는 재미있게 봤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배경이 된 초원 사진관도 보인다. 유명한 관광지답게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 틈을 빠져나가며 재빠르게 셔터 한 번을 눌렀다. 일본인들이 살던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고 복원을 하기도 해서 이국적인 느낌도 물씬 난다. 우리나라에서 자자손손 살겠다고 일본에서 제일 좋은 자재들을 실어와 지었다는 히로쓰 가옥과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던 고우당, 일본의 항복 소식에 정성 들여 지은 집은 그대로 남겨둔 채 헐레벌떡 고국으로 도망갔을 생각을 하니 통쾌하다. 하지만 아픈 역사의 흔적 앞에서 건물이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며 인생 샷만 남기려 한다면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근대화 거리를 남겨놓고 또 복원하는 것은 그곳을 여행하는 우리의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함이 아닐까. 일반적인 여행과 달리 여행자로서의 책임이 따르는 여행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군산의 알짜배기 땅에 남겨진 일본인들의 마을을 보고, ‘한국인들의 마을은 어땠을까’ 생각했는데, 경암동 철길마을을 살펴보니 또 한 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철길 바로 옆에 이 집들이 사람들이 살던 집이라고? 자기네 땅에서 밀려나고 밀려난 우리 조상들은 결국 이렇게 시끄럽고 위험한 철길 옆에야 보금자리를 꾸릴 수 있었구나. 불안하고 무서워서 도대체 어떻게 이곳에서 아이를 키웠을까.
며칠 동안 여유롭게 군산을 둘러보며 나는 아리랑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며 상상한다. 이 항구에서 김제평야의 쌀들이 배에 차곡차곡 실려 일본으로 갔겠구나. 이 항구 옆 어딘가 정미소에서 일하던 수국이와 젊은 아낙들이 그렇게 온갖 수욕을 당했지. 3.1 운동이 일어났던 그때 이곳을 메웠던 우리 조상들은 무차별하게 짓밟히면서도 두려움을 떨치며 목 놓아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겨울 여행을 다니다 보니 아이들에게 마스크 쓰란 얘기를 수백 번은 하게 되는데, 어느 날 아침 아들이 일어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꿈에서 마스크가 안 벗겨지고 숨이 막힐 것 같았는데, 힘들게 온 힘을 다해 마스크를 떼어내니 얼굴에 마스크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더란다. 어지간히 마스크 쓰기가 싫었던 모양인데, 야경을 보기 위해 은파호수공원에 간 그날도 쓰기 싫었던 마스크 따위는 또 잃어버리고 없다. 그렇게 칼바람이 미친 듯 불어대던 겨울날 군산의 밤공기를 신나게 들이마시며 군산 곳곳을 거닐었다.
군산 근대화거리: 전북 군산시 해망로 240
신흥동 일본식가옥: 전북 군산시 구영1길 17
고우당: 전북 군산시 구영6길19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전북 군산시 해망로 240
은파호수공원: 전북 군산시 은파순환길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