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oyfulmito Mar 4. 2022
여행 중 둘이서 돌아가며 집안일을 돕는데, 오늘은 딸램의 순서다. 늦게 일어나서 여전히 뒹굴거리는 딸이 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사이 나는 홀로 아침 식사 준비를 마쳤다. 아침상 차리는 거라도 도우라고 했더니, 그제야 꾸물꾸물 일어나서 거울 앞에 가만히 서 있다. 참다못해 또다시 내뱉은 내 잔소리에 느릿느릿하게 몸을 움직여 내가 가져다 둔 행주로 식탁을 닦고는 행주는 식탁 위에 그대로 둔 채 또 딴청을 피운다. 또다시 반복된 엄마의 잔소리에 다시 한번 느릿느릿 움직여 밥그릇 두 개와 수저를 갖다 놓는 동안 나는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잔소리 속사포를 늘어놓았다. 그렇게 잔소리를 해 대며 아이의 고집스레 한결같은 동작을 지켜보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너 시키려다가 나만 더 바쁘고 화가 나. 너 이렇게 할 거면 하지 마.”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사춘기에 진입하는 녀석을 시켜 먹으려는 내가 잘못인 건가.
아침부터 안 좋은 소리 늘어놓고 나니 나도 기분이 영 좋지 않다. 하루 종일 사사건건 불평이 생긴다. 오늘 같은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림이나 그리고 싶지만, 다 같이 기분 전환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바닷가로 나갔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도 한 번 먹어야지 하며 회 정식집을 찾았다. 회를 못 먹는 아들을 위해 반찬이 많이 나오는 집을 일부러 찾아갔는데, 단체 예약 손님이 많아서 다른 손님은 받지 않는단다. 그다음으로 간 식당에서 회 정식을 시켰다. 갖가지 다양한 반찬이 나왔지만, 아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고등어와 밥뿐이다. 입 짧은 아들은 해산물에 영 약하다. 큰맘 먹고 온 회 정식집에서 상다리가 부러지게 상은 차려졌는데, 오늘은 내 입에도 음식이 잘 맞지 않는다. 회는 질기고 굴구이는 비리다. 먹다 보니 본전 생각이 난다. 나도 해산물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가 보다. 어찌 되었건 가지 수가 워낙 많으니 배가 잔뜩 부르다.
기분 전환하러 나선 장소는 선유도 해수욕장이다. 오늘도 딸은 모래 한 병을 채우고 갯벌에서 모래 놀이를 시작했다. 짜증 가득한 채 말 안 듣던 딸은 다시 아동기 버전으로 돌아와 동생과 신나게 모래 놀이를 하며 깔깔댄다. 아침에 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서.
군산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낸 후 남편을 터미널에 내려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들어와 이번 주에 갈 숙소를 찾아보고 보령에서 1박, 부여에서 2박 숙소를 예약하는 사이 딸램은 빨아둔 옷에 얼룩이 빠지지 않았다고 속상해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물론 울음이 터지게 된 데는 쓸데없는 엄마의 한 마디가 한몫하고 말았다. 위로해 주지 못할 때는 차라리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게 나은데, 하루 종일 나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던 터라 그 한 마디를 참지 못했다. 딸의 울음에 나 역시 짜증이 잔뜩 나고 말았다.
그 옷에 주방세제를 묻혀 다시 문질러 빨래를 돌려놓고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또 그사이 딸은 아동기로 돌아와 동생과 재미나게 놀고 있다. 속상했다가도 저렇게 빨리 풀리면 뭐 괜찮지.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는 동안 이런 날들이 더 자주 올지 모른다. 아이들의 사춘기를 나도 함께 지나가며 나 역시 조금 더 유연해지고 성숙하겠지. 나도 오늘은 속상한 마음 풀 겸 그리던 그림을 마무리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오늘은 너희들 먼저 자. 내일은 우리 좀 더 사이좋게 지내자.” 하고, 작은 스탠드를 하나 켜 불을 밝히고 밤늦도록 그림을 그렸다. 오늘은 이래저래 조금 힘든 날이었다. 여행하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괜찮다. 내일은 또 괜찮을 거야.
선유도: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남길 3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