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늦게 잤더니 오늘 아침엔 모두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덕분에 나도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 늑장을 부린다. 오늘은 간단히 먹고 나가서 아침 겸 점심을 먹어야겠다. 아침 준비를 하지 않으니 무척 여유롭구만.
간단히 우유랑 떡만 먹고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이제 아이들도 짐 싸기 정도는 일사천리다. 아들은 효과음까지 넣어가며 신나게 짐을 꾸린다. 양치질하고 옷 갈아입고 각자 가방에 넣을 짐은 따로 챙기고, 이불 개고 쓰레기 정리까지 일사불란하게 끝냈다. 시간 딱 맞춰 체크아웃 준비 완료. 들고 갈 짐도 알아서 나눠 들고 내려가 차에 싣는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어젯밤 푹 쉰 덕분인지 오늘은 다들 컨디션이 좋다.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준비가 된 듯 말이다. 다행이고 감사하다. 티격태격하다가도 특별히 화해하지 않아도 또 사이좋고 애틋하고 이래서 가족인가 싶다.
아점으로 비빔밥과 칼국수, 만두를 맛있게 먹고 오늘은 서천 국립 생태원으로 간다. 너무 넓어서 다 보기는 힘들 테고 가고 싶은 곳만 몇 군데 가봐야지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스탬프 투어용 지도를 보더니 의욕에 불타오른다. “엄마, 이거 다 찍고 가도 되지?” 심지어 기차 타고 들어가자고 해도 스탬프 찍어야 한다며 걸어가겠다고 한다.
차근차근 도장 깨기를 하며 3코스까지 돌아보고 밖으로 나왔는데, 이런. 비가 온다. 우산을 가지러 나갈까 고민하다가 주차장보다는 5코스 에코리움이 더 가깝길래 가까운 실내 건물로 들어가기로 했다. 걸어가는 사이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는데 사춘기 버전의 딸램은 뛰지 않는다. 아들에게 먼저 뛰어가서 기다리라고 했더니 몇 번이나 “엄마 괜찮아?” 하며 엄마를 걱정하다 엄마의 손짓에 마지못해 입구까지 먼저 뛰어간다. 오늘은 딸에게 잔소리하지 않고 그냥 기다려주어야겠다 생각했다. 오늘은 나도 괜찮다. 굵어지는 비를 함께 맞으며 걸었다. 어제의 감정싸움 덕분에 나도 한 뼘 자랐나 보다. 우리가 함께 하는 모든 경험들이 서로를 자라게 한다.
에코리움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도서관에 가고 싶다고 했다. 목포 도서관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 후 다음에도 도서관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딱 적절한 때에 우리 앞에 도서관이 나타났다. 이곳에서도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기다려준다. 아이들은 만화책을 실컷 보고서야 도서관을 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오늘은 꽤 멋진 엄마다.
열대관, 온대관, 사막관 등을 꼼꼼히 보고 나오니 다행히 비는 그쳤는데 이번엔 바람이 너무나 세차다. “우리 많이 봤는데, 이제 그만 가도 되지 않을까?” 제안해 봤지만, 아이들은 고개를 젓는다. 스탬프 6개만 찍으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고 2개만 더 찍고 가자고 한다. 가까운 곳에서 스탬프를 두 개를 더 찍었지만 사람은 욕심이 끝이 없는 법이다. 아들은 여전히 그냥 가기는 아쉽다며 10개를 모두 채우고 싶다고 한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감기에 걸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아들이 이렇게 간절할 땐 기회를 주고 싶다. 기어이 스탬프 10개를 다 찍고 나오면서 얼굴에 미소를 잔뜩 그리며 “뿌듯해”를 몇 번이나 되뇐다. 따라다녀 주길 잘했다. 어릴 적 잠자리에 누워 엄마를 안고 혀 짧은 소리로 “해보케(행복해)를 되뇌던 아들 옆에서 함께 행복해하던 엄마는 오늘 이곳에서 아들의 뿌듯함에 전염된다.
하지만 스탬프를 모두 찍고 입구까지 걸어 나올 때는 정말이지 지칠 대로 지쳤다. 진심 춥고 배고프다. 편의점들은 이미 문을 닫아 뭐 하나 사 먹을 곳도 없다. 주차장까지 나왔지만,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시골길을 달리는 동안 편의점 하나 찾기 쉽지 않다. 고속도로 구간도 워낙 짧아 휴게소도 하나 있을까 싶었는데 그때 눈앞에 휴게소가 나타났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휴게소 대표 메뉴 소떡소떡과 핫바를 하나씩 집어 들고 모두들 세상 행복하다. 동생이 원하는 대로 따라다니느라 완전히 방전되었지만 불평하지 않고 참아준 기특한 딸도 행복한 얼굴로 맛나게 간식을 먹는다. 배고플 땐 따뜻한 먹거리 하나에도 충분히 감사하다. 뿌듯하고 흡족한 날이다.
국립생태원: 충남 서천군 마서면 금강로 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