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시기 어린이와 교육의 변화에 관한 고찰

역사적으로 어린이는 어떤 존재였는가. (1)

by 동그래

1. 서론


최근 종교개혁사는 수정주의 해석으로 새롭게 연구되고 있다. 수정주의란 전통적인 서술에 반기를 들고 대안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역사 서술의 흐름을 말한다. 일반 대중은 종교개혁을 1517년 10월 마르틴 루터의 면벌부 거래에 대한 공격으로 촉발된 논쟁인 ‘루터 사건’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지만, 역사가들은 16세기와 17세기 전반기에 유럽 종교 생활에 일어난 일련의 격변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로 이해한다. Fernand Braudel가 The Order of Historical Time: The Longue Durée and Micro-History 논문에서 언급했듯 ‘역사란 가능한 모든 이야기의 총합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직업과 관점들의 모음이기에 이 모든 이야기 중 하나를 배제하고 선택하는 것은 유일한 실수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적 오류일 것이다.’는 문장처럼 종교개혁을 마르틴 루터의 영웅적 서사로 본다면,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역사적, 종교적, 정치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총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중세의 타락한 가톨릭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진 종교개혁은 다양한 방향으로 이뤄졌으며, 그 방법, 목적과 의미와 영향력은 각각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종교개혁의 시기를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등장한 1448년으로 잡으려 한다. 인쇄술이 비록 기술의 발전이긴 하지만, 문학, 성경 번역, 신비주의 서적의 확산 등의 근원이 되었으며, 이는 어린이 교육에도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16세기와 17세기의 종교개혁이 어린이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재정립됐는지, 그에 따른 어린이 교육의 변화는 어떠한지에 관해 탐구한다. 중세 유럽에서 어린이는 ‘작은 성인’(miniature adults)으로 여겨졌으며, 어린 시절을 독특한 발달 단계로 보지 않았다. 1962년 출판된 Philippe Aries의 Centuries of Childhood에 따르면 중세 사회에서는 어린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교육 기회는 귀족과 왕족, 성직자만 부여되어 제한적이었기에 전체적인 문맹률은 무척 높았다. 어린이는 사회적, 가정적 역할을 어릴 때부터 수행해야 했으며, 그들의 지위는 가족, 계층, 성별에 따라 달라졌다. 중세의 그림이나 문헌에서는 어린이가 노동이나 종교적 의무에 참여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며, 이들은 대체로 어른들의 활동에 통합되어 있었다. 어린이에 대한 종교 교육은 최소한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로 라틴어 기도를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종교개혁은 신학적 운동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구조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마르틴 루터와 존 칼뱅을 비롯한 개혁자들은 교육과 신앙 양육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으며, 이는 가정, 교회, 그리고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어떻게 전수할지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이 연구의 주요 질문은 첫 번째, 종교개혁 시기에는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두 번째, 종교개혁 시기에 어린이를 위한 교육은 어떠했는가? 세 번째, 종교개혁으로 인한 교육 변화가 현대에 남긴 의미는 무엇인가? 이다. 먼저 그 당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2. 역사적 배경


2.1 종교개혁 이전의 중세 어린이


중세 사회에서 어린이의 위치는 매우 불분명했다. 중세 예술가들에게 어린이는 무시당했고, 천사는 후대처럼 날개를 가진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으로 묘사되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가 더 여성스럽고 아름답고 자연스러워진 후에도, 어린이 예수는 작은 어른과 같은 모습인 '난쟁이'로 표현되었다. 그들은 그냥 평범한 아기가 아니라 아기 예수를 원했고, 중세 예술가들은 말 그대로 '작은 사람'이라는 뜻의 호문쿨루스(homunculus), 즉 예수가 “완벽하게 형성되고 변하지 않은 채로” 태어났다는 믿음을 지지하기 위해 어린이가 아닌 어른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그림에는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거나, 옷을 가지고 놀거나, 모유 수유를 하고 있을 때에도 성인의 특징과 체격을 가진 예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Averett에 따르면 당시 예술가들은 “자연주의에 관한 관심이 부족했고 표현주의적 관습에 더 치우쳤기 때문에” 이 동그랗고 어른처럼 보이는 아기 예수는 모든 어린이의 표준이 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중세 시대에는 어린이다움이 그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작은 성인으로 어린이를 바라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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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들 역시 중세 시대의 어린이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작은 성인으로 취급받았다고 본다. 어린이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적 계층에 따라 삶이 크게 달랐다. 농민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가축을 돌보거나 밭을 가꾸는 등 생계를 돕기 위해 일했다. 교육은 사치였고, 많은 농민 자녀는 읽고 쓸 줄 모르고 자랐다. 어린이들은 거의 성인처럼 취급되었고, 노동, 군사 훈련, 직업 교육을 어릴 때부터 강요받았다. 반면 귀족 자녀들은 성과 저택에서 사치스러운 환경 속에서 자라며 기사도, 예절 교육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주체적인 결정권이나 자유가 없었으며, 어른들이 제시하는 명예와 규범을 지켜야만 했고, 유리한 결혼을 통해 가문의 재산과 부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부모는 자녀가 갓난아기일 때 이미 결혼을 정하기도 했으며, 결혼 후에도 불임이나 남자 후계자를 낳지 못한 경우 이혼이나 혼인 무효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2.2. 인쇄술의 발달


인쇄기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지식은 필사자가 직접 손으로 옮겨 쓴 필사본을 통해 보전되고 전달되었다. 주로 수도원이나 교회에서 서적이 생산되었으며, 중세 말로 가면서 다양한 종류의 종교 서적이 필사되고 읽혔다. 그 당시의 문맹률은 매우 높았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 이후 인쇄술이 발전함에 따라 지식과 정보 전달이 훨씬 빨리, 쉽게, 경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인쇄술이 없었다면 종교개혁도 없었을 것이라는 표현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과 인쇄술의 관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종교개혁의 핵심인 ‘모든 사람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어린이들도 자연스럽게 직접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주체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인쇄된 성경과 교리문답과 종교 서적이 보급됨에 따라 사람들이 읽고 쓰는 기회가 증가했고, 이는 유럽 전역의 문해율을 높였다. 특히 개신교 사회에서 성경을 읽는 것이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성경책, 교리문답과 교육용 텍스트가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이는 어린이들이 읽고 쓰는 법을 배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시기의 인쇄술은 단순히 개신교 사상을 퍼뜨린 것에 그치지 않고, 개인들이 주체적으로 읽고 쓰게 하면서 그들의 삶을 재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개인들이 종교적 텍스트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더 문명적이고 신학적으로 다양한 사회를 만들었으며, 이는 근대적 계몽주의로 이어지는 기초가 되었다.


3. 종교개혁 시기의 어린이와 교육


종교개혁 이전에는 일반 어린이 교육은 거의 없었으며, 귀족 등 소수의 자녀에게만 교육의 기회가 주어졌으며, 주로 성직자들의 권한 아래에 있었다. 카톨릭 교회는 종교와 관련된 모든 교육을 독점했으며, 신도들은 성직자에게 의존하여 성경을 해석했어야 했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와 존 칼뱅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등장으로 상황은 조금씩 바뀌었다. 개혁자들은 고전 언어 학습을 강조했는데, 단지 르네상스 시대의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한 관심 때문만이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이 성경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교회의 전통이 신의 명령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16세기 개혁자들은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이라는 교리를 강조하며, 개인의 신앙과 성경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을 강조했고, 신도들이 직접 성경을 읽으며 해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주장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어린이들 역시 성경을 직접 접할 기회가 많아졌으며,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주체가 되었다. 교회에서는 글을 알지 못했던 어린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문해력을 증진하며, 개인의 성경 해석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종교개혁은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어린이들이 글을 배우고, 신앙을 세워가며 성장할 수 있는 물꼬를 터주었다. 왼쪽 위의 그림은 루터의 가족 그림인데, 아이들이 책을 보거나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중세 시대의 어린이 그림과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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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chulz. Martin Luther's family, 1866


개혁가들은 기독교 교육을 통해 하나님 말씀에 기반한 건전한 삶을 강조하였으며, 어린이 교육의 실천적 변화를 이끌었다. 그들은 교리문답을 만들고 신학적 고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는 데 집중했다. 이 교육 기관들은 그 당시 명성을 얻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명하다. 종교개혁 당시 어린이에 대한 신학적 접근은 가정 내에서의 부모의 교육적 역할과 사회적 책임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개혁자들은 어린이를 단순히 신앙의 수혜자가 아니라, 신앙 공동체의 중요한 일원으로 여겼다. 그들의 교육은 단지 종교적 교훈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린이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성찰하며 개인적인 신앙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개혁교회는 어린이에 대한 교육을 교리적 성숙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으로 정의하며, 이러한 변화는 후에 근대 교육 제도의 형성에 중요한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역사학자들은 종교개혁을 16세기 유럽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여기며, 존 칼뱅, 마르틴 루터, 훌드리히 츠빙글리, 필립 멜랑톤, 토마스 뮌처와과 함께 급진적 개혁을 주장한 아나뱁티스트와 가톨릭의 대응을 이끈 인물들까지 포함해 다양한 목소리와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끼친 운동이라 평가한다. 이들은 각자의 배경과 신학적 견해에 따라 기독교의 역사를 풍부하게 만들었으며, 현대 기독교의 다양한 전통에 영향을 주었다. 종교개혁이 다양한 지역,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기에 어린이에 대한 관점 역시 다양하다. 이 연구에서는 많은 종교개혁가들 중에서 마르틴 루터, 칼뱅, 재세례파의 관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3.1 마르틴 루터의 관점


마르틴 루터(1483-1546)는 신학적인 입장에서 인간을 이해한다. 창조와 타락은 어떤 종류의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인간의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죄인임과 동시에 의인임을 강조하며 교육과 신앙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은 점차 성화되거나 반대로 점점 더 잘못된 모습으로 일그러지거나의 양자 간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루터는 어린이에 관해 서술한 내용 중 자주 눈에 띄는 내용은 어린이의 천진스럽고 근심 없는 마음이다. “어린이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교황이나 영주나 죽음이나 사단까지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어린이는 교회와 사회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없다.” 등으로 서술했다. 어린이가 천진난만한 이유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으며, 죄가 없고, 의심없이 순전히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린이는 순수하게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하나님에 관한 생각은 어느 누구보다 아름답다. 어린이는 믿음에 있어 성인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등으로 묘사했다. 루터는 어린이 안에 의식과 이성이 아직 잠자고 있으며, 죄 또한 그 안에 잠자고 있기에 어린 시기에 바르게 교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스크린샷 2024-12-10 153541.png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그려진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통한 교회와 사회개혁을 시도해 가는 과정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하였고, 교육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교육에 관한 관심보다 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교육의 기능적 측면에 대해 강조하였다. 그는 교육의 목적을 하나님께 봉사하는 사람(Gottes Diesnst)으로 성장하는 것에 두었다. 그에게 교육은 인간이 교회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책임을 잘 감당하고, 자신의 악과 사회의 악을 싸우면서, 세상 안에서 점점 더 하나님의 질서가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과제를 감당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루터는 어린이를 교육하는 것은 진리로 세상을 잘 다스리라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이며, 연약하고 부드러운 어린이를 기독교적으로 잘 양육해야 할 사람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루터에게 교육이란, “하나님께서의 봉사를 위한 훈련”이었다.

그는 교회나 예배 개혁에만 그치지 않고 교육 개혁을 추구했으며, 성경을 대중에게 알려주는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했으며, 성경 공부를 바탕으로 한 공교육 시스템을 잘 구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는 당시의 스콜라 교육을 비판하며, 남녀, 사회적 계층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기독교 교육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는 두 개의 「교리문답서」를 발표했다. 그는 잘 훈련된 교사들이 제공하는 확고한 교육 없이는 누구도 문명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없으며, 올바른 것과 잘못된 것, 진리와 거짓을 제대로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인이라면 최소한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으로 교리문답서를 출판하였고, 이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자 했다. 기독교인됨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기초적인 지식을 매개로 하여,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과 설명을 덧붙였다. 이 책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개념, 구원의 필요성과 믿음의 중요성, 성경의 권위 등에 관한 내용으로 ‘목사와 설교자들에게’라는 부제를 붙인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당시 교육과정을 보면, 어린이는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는데, 세 학년 모두 루터의 교리문답을 기초적으로 배우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확대 심화하도록 구성되었다. 읽기와 쓰기의 교재 역시 교리문답서로 진행되었다. 루터는 간단한 질문과 대답 형식을 사용해 아이들이 반복 학습을 통해 내용을 암기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이해가 어려운 것은 해설을 통해 이해하도록 했다.

교사: 첫 번째 계명, 너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이것은 무엇입니까?

어린이: 우리는 하나님을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믿어야 합니다’


또한 루터는 가정 내에서의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제대로 교육받지 않으면 누구도 질서정연하고 신실하며 순종적인 사람이 될 수 없으며, 교육을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삶의 도전 과제를 더 잘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끊임없이 아이들이 부모에게 신앙교육을 해야 할 것과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의무라고 강조했다. 순종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순종이 없으면 질서가 무너지고, 가정에서의 훈육 부족은 국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도시란 집들이 모인 곳에 불과하다. 그럼 어떻게 집들에서 정부가 없으면 도시가 잘 다스려질 수 있겠는가? 아이나 하인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도시가 잘 다스려질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주와 도시와 마을은 무엇인가? 그럼 어떻게 가정이 잘 다스려지지 않으면, 주는 잘 다스려질 수 있겠는가? 진실로, 폭정, 마법, 살인, 도둑질, 불순종 외에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 군주는 구역으로 구성되고, 왕국은 군주들로 구성되며, 제국은 왕국으로 구성된다. 이 모든 것은 가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잘 다스리지 않고 자녀가 자유롭게 한다면, 도시, 마을, 구역, 군주, 왕국, 제국은 잘 다스려질 수 없다." 성경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며, 젊은이들은 노인들에게 존경을 표해야 한다고 명확히 말한다. 또한 부모는 자녀에 대해 가진 권위를 남용해서는 안 되며 대신 모두가 사랑과 경건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자녀에게 '십계명'을 가르치는 것이 첫 번째 교육적 의무라고 주장했다. “부모는 자신들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의무를 갖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며, 무엇보다 먼저 그들의 직무를 성실하고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자녀와 하인, 피지배자 등을 먹이고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리며 자녀를 훈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우리가 세속적이고 영적인 지도자로서 가치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원한다면, 자녀를 하나님과 인류를 섬길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된 루터의 말이다.

루터는 가정 교육뿐 아니라 공립학교에 보내는 것을 강력히 지지했다. 중세 교육이 수도원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독일의 개혁자는 성별이나 나이, 사회적 계층과 관계없이 접근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교육을 지지했다. 그는 오직 성직자만이 진정한 종교적 소명이 있다는 중세의 의견을 거부했으며, 프로테스탄티즘은 모든 개인이 자신의 구원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한 글로는 "독일 귀족들에게의 호소"(1520)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의 모든 도시의 시의회에게 기독교 학교를 설립하고 유지할 것을 요청하는 글"(1524)이 있다. "친애하는 여러분, 우리가 도시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해 매년 총, 도로, 다리, 댐 및 수많은 항목에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면, 왜 우리는 소외된 젊은이들에게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쓰지 않아야 합니까? 적어도 학교를 가르칠 수 있는 유능한 사람 한두 명을 고용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써야 합니다."

그 외에도 마르틴 루터는 여러 찬송가를 작곡하여 모든 사람, 즉 어린이들도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도왔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와 같은 찬송가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통해 어린이를 발견하였고, 종교개혁을 이루기 위해 모두를 위한 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의 인문주의에 발맞추어 근대적 교육 사상을 전개하였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신학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하였다는 면에서 한계와 비판을 받지만, 오랫동안 소외되었던 어린이를 신앙의 주체로 세웠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3.2 존 칼뱅의 관점


칼뱅은 종교개혁가이면서 현실 사회의 변화에 깊이 관여한 행동가다. 칼뱅은「기독교강요」에서 타락한 인간이 믿음을 통하여 의인으로 칭함을 받고 거듭나면, 기도와 성례를 통하여 계속해서 완성을 향하여 성화되어 가는 도상에 서게 된다는 입장을 가진다. 특히, 칼뱅은 성화(Heiligung)에 특별한 강조점을 두었는데, 이 완성의 과정은 평생동안 계속되어야 할 삶의 목적이자 교육의 목적으로 제시된다. 칼뱅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 가는 성화의 과정 위에 선 인간의 삶을 ‘그리스도의 제자가 걷는 길’이라고 표현한다. 칼뱅의 관점에서 어린이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어린이를 원죄에 빠진 존재로 보았고, 칼뱅은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이라는 교리를 강조하며, 어린이들이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교회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신앙과 이성을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린이가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신학적, 도덕적 교육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가르쳐주는 최고의 교사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어른이나 아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그의 학교로 부르시고 모두를 그의 학생으로 삼기 원하신다.” 그는 하나님이 교사인 관점에서 “행실을 바르게 갖도록 하다, 교정해주다, 연습시키다, 이끌다”와 같은 단어들로 교육을 설명했다.

먼저「기독교강요」4권 유아세례와 관련해서는 재세례파와 논쟁을 벌이는데, 거기서 어린이에 대한 그의 입장을 볼 수 있다. 그는 예수가 성경에서 천국은 어린이의 것이라고 말한 구절을 지적하며, 어린이도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 교회의 일원이 되며, 약속 공동체에 전적으로 속하는 존재임을 분명히 하면서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강력하게 변호한다. 신앙을 갖거나 회개하는 일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이것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칼뱅은 비판했다. 이에 어린이도 성인과 같이 거듭나고 새 삶에 들어올 수 있으며, 이를 상징적으로 제도화하는 세례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린이가 이해능력이 어른보다 부족하다는 것, 자발적이고 책임적인 신앙의 고백을 하기 어렵다는 것,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이 아직 흐리다는 점은 인정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고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은 그 전제조건이 될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어린이 교육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다시 말해, 어린이가 세례로 인해 새 생명을 얻은 존재임을 성장하면서 분명히 깨닫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세례가 그들의 계속적인 삶에서 구체적으로 거듭남의 삶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독교 가정은 작은 교회(parvae ecclesiae)와 같다”고 했다. 그는 가정교육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교회교육을 보았다. 이는 가정에서 독트리나(라틴어로 가르침이라는 말로, 기독교인이 믿어야 할 바의 내용에 대한 건전한 인지적 가르침과 가르침을 삶으로 연결하고 삶을 통해 확인되는 것, 나아가 성숙해가는 발전해가는 과정으로 칼뱅이 가장 강조했던 핵심요소)를 통해 교회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가정교육에서 ‘독트리나’의 가르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가정교육의 부모는 교회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고, 교회는 부모를 감독할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가정과 부모에게 최고의 교육적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루터와 입장이 대조되는 지점이다. 이는 성직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 차이를 잘 반영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칼뱅은 제네바에 있는 동안 학교교육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종교개혁이 사회개혁과 연결된다고 생각했기에, 사회개혁의 중요한 통로로 학교의 활성화를 강조했다. 특별히 김나지움(인문계 중고등학교)의 개혁에 관심을 쏟았고,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였다. 이 아카데미는 당시 최고의 교사들—고전 언어(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철학, 신학, 물리학, 문학, 수학, 프랑스어, 법학, 의학 등의 전문가들이 가르쳤고, "칼뱅의 제네바 작업의 정수"라고 평가되며, 학문적 유산에 중요한 기여했다. 칼뱅이 활동했던 당시에는 인문주의의 영향으로 교육이 중요시되고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교육 개념이 생기면서 기독교적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바탕으로 모든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교리문답과 성경이 가르쳐지고, 기도와 예배가 드려지며, 주일예배와 성찬 참여를 위한 준비를 했다. 그는 학교에서 교회의 주일예배를 준비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심화하는 교육을 교회와 연계성 있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신자가 되는 사람들을 위한 기초를 돕고, 신자들의 계속적인 신앙성장을 돕기 위해 「요리문답」을 출판하였다. 그의「요리문답」은 교회의 독트리나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1부는 믿음에 관하여, 2부는 율법에 관하여, 3부는 기도에 관하여, 4부는 성찬에 관하여 다루고 있으며 총 373개의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요리문답」은 철저히 성경과의 관련성 속에서 전개된다. 여기에서 전개되는 질문과 대답의 과정들은 수업 현장에서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아래의 예를 살펴보자.

목사: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어린이: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목사: 왜 그렇습니까?

어린이: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세상에 두심으로 우리들 속에서 영광을 받으시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삶이 향하는 것은 분명히 옳은 것입니다.

목사: 그러면 인간에게 최고의 선은 무엇입니까?

어린이: 그것도 위와 같습니다.

목사: 왜 그렇습니까?

어린이: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없으면 우리의 상태는 다른 짐승보다 더 불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사: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습니다.

칼뱅의 권유에 따라 제네바의 모든 교회에서는 매주 일요일 12시에 요리문답수업을 실시하였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고아원이나 사회복지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그 시설에서 진행되었는데, 이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요리문답수업을 받도록 하고자 하는 칼뱅의 강한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칼뱅은 기독교강요에서 믿음이 지식과 연결되어 있어 "암묵적 신앙"은 있을 수 없다며 인지적인 독트리나의 교육을 강조했다.: "믿음은 무지에 의존하지 않고 지식에 의존합니다. 그리고 이 지식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규정한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거나, 그로 하여금 알아보고 알게 하는 일을 맡기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 칼뱅은 치리는 교인들의 삶을 지도하고 동반하고 인도하는 교회의 감독적인 기능으로 “독트리나가 교회의 영혼이라면, 치리는 교회의 힘줄이다.”라고 두 가지를 강조했다.


3.3 아나뱁티스트의 관점


아나뱁티스트(Anabaptist, 재세례신앙) 운동은 종교개혁 당시 철저한 제자도의 정신을 기초로 초대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소수 급진종교개혁자들의 개혁운동이었다. 재세례신앙(anabaptism, rebaptism : 다시 세례를 주었던)의 신자들은 교회가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가로부터의 자유로워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스도인의 세례는 개인의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관습적인 유아세례는 제자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오히려 교회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신자됨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믿었기에 유아세례를 반대했다. 그들은 어린이가 신앙의 성장과 자기결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세례를 받기 전까지 교회의 의례에서 완전한 참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어린이들이 신앙을 고백할 준비가 되었을 때 세례를 받을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여긴 것으로 보아 어린이를 작은 어른이나 한 사회의 일원이기 전에 신앙생활에 주체적이고 인격적인 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가톨릭과 개신교에서의 공식적인 학교 교육처럼 교리문답 등의 체계화된 교육을 만들기보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신앙적 가치와 도덕적 훈련을 받을 것이라 여겼다. 어린이들은 공동체에서 함께 성경을 읽고 이해하도록 하며, 공동체 내에서 협력하고 평화롭게 사는 법, 비폭력적이고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 간소한 생활에 대한 교육을 강조했다.

종교개혁 당시 아나뱁티스트들이 모진 박해를 받고, 종교적 난민으로 지냈는데, 이는 가톨릭이나 개신교 정부가 복음을 말한다하면서도 복음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당국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그들은 단순히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 살고자 하는 모습을 고집스럽게 반복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아나뱁티스트들의 제자도는 이론적인 정교함보다는 삶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습으로 자리하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아나뱁티스트 신학에서 ‘제자도’는 항상 십자가, 고난과 함께 이야기된다는 점이다. 16세기에 아나뱁티스트 운동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운동과 아주 다른 점을 보인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제자도”였다. 아나뱁티스트는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당연히 그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제자도는 모든 영역에 걸쳐 요구되는 항목으로 이해하였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난 신자들이라면 하나님 나라의 기준을 따라 살아야 할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요청하였다. 제자도에 있어서도 성령께서 남녀를 동일하게 부르셨으므로 동일하게 제자도를 요청하신다고 믿었다. 성령께서 부르실 때, 남자 여자 따로 구분해서 부르지 않으신다고 믿었다. 필그람 마르펙은 ‘Discipleship/Nachfolge (following after)는 결국 누군가의 뒤를 따르는 것이며 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라 여기면서 어린이들도 동일한 삶의 실천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메노 시몬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발자취를 따르며, 회개하고 위로부터 다시 태어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다. 이는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갖고, 그가 걸었던 길을 걸으며,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라야 한다. 누구든지 그보다 아버지, 어머니, 자녀, 혹은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합당치 않으며 그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성역이나 성속의 구분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사회, 경제, 윤리적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의 모습은 당연히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들에게 교회의 경제정의 및 사회정의는 당연한 제자의 삶에중요한 부분으로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에도 아나뱁티스트들이 사회 운동에 관심이 많은 것은 그들이 사회 운동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드러난 모습일 뿐이다. 아놀드 스나이더는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활동 등은 모두 제자도와 연결되며 결혼 생활에 있어 제자도도 예외가 아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모든 것은 남녀 구분 없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모두에게 요청되는 총체적인, 전인적인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보았다.”라고 강조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종교 교육은 어떤 특정한 교회의 프로그램이나,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나뱁티스트들이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교육을 했는지 기록이 많지 않았지만, 공동체 내에서의 성장, 그리고 알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강조점이 많았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 학교를 개설하지 않고 삶의 자리를 내어 주신 것처럼 공동체에서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무리 성경을 잘 해석하더라도 성경적 삶을 살지 못한다면, 누구든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대로 살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고 보았다.



3.4 세 그룹의 공통점과 차이점


루터, 칼뱅, 그리고 아나뱁티스트는 종교개혁의 중요한 주체였다. 하지만 이들은 종교개혁의 방향과 신학적 배경, 어린이들의 교육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먼저 공통점을 고찰해 보면, 첫째, 종교개혁의 핵심은 성경적 권위로 돌아가는 것이었기에 모든 신자가 직접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세 그룹 모두 성경 중심의 신앙 교육을 강조했다. 루터와 칼뱅은 성경 읽기와 교리문답 교육을 통해 신앙의 기초를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었고, 아나뱁티스트들은 공동체에서 성경을 읽었다. 이러한 원칙은 이후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중심으로 한 교육의 기초가 되었다. 둘째, 종교개혁은 만인 사제직을 주장하며, 모든 신자가 신앙에 대해 교육받을 권리와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다. 이에 교회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사회가 개혁될 수 있다고 믿었다. 루터는 모든 어린이들이 글을 읽고 쓰며 신앙을 배우도록 공교육 제도를 강화했으며, 칼뱅 역시 제네바에서 체계적인 신앙 교육을 시행했다. 아나뱁티스트도 공동체에서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교육을 행했다. 이러한 노력은 후에 주일학교 운동으로 이어져, 특히 산업혁명 시기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성경 지식과 문해력을 제공했다. 셋째, 그들은 가정을 강조하며, 부모는 하나님이 보내신 어린이들을 믿음의 자녀로 양육할 책임이 있음을 말했다. 루터와 칼뱅은 부모가 자녀의 신앙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루터와 칼뱅은 부모들이 교리문답서를 사용하여 자녀에게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 등을 가르치도록 권장했다. 아나뱁티스트는 가정을 중심으로 한 신앙 공동체를 통해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제자도를 실천적으로 가르쳤다. 이 전통은 주일 학교에서도 부모의 참여와 신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들의 차이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유아세례의 찬반과 정부와의 협력 여부이다. 루터와 칼뱅은 유아세례를 적극적으로 찬성했으며, 유아세례 후 교리문답과 설교를 통해 신앙을 성장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정부와의 협력하여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교육을 중시했고, 교회와 공교육을 통한 철저한 신앙교육을 조직했다. 어린이는 신앙과 성경 지식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소교리문답, 요리문답 등의 교재럴 ㅅ용했으며, 아이들은 이를 암송하거나 배워야 했다. 반면 아나뱁티스트들은 정부와의 대립 속에서 비공식적인 교육을 실시했으며, 주로 가정과 작은 공동체에서 이루어졌고, 유아세례를 반대했다. 그들은 성인세례 전에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자기 고백을 해야 함을 강조했다. 루터는 교육을 통해 어린이가 사회에서 유용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고, 칼뱅 역시 교육은 단순히 개인의 신앙 성장에 그치지 않고, 신앙을 통해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조화를 이루는 도구로 여겨졌다. 경건하고 교육받은 시민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상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했으며, 소명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사회적인 신앙인을 양성하는 것이 강조되었다.

반면 아나뱁티스트은 루터파나 칼뱅파와는 다른 독특한 신앙적, 교육적 입장을 가졌다.그들은 개인적인 신앙 고백을 중시했으며,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성인 세례를 강조했다. 따라서 어린이 교육의 목적은 신앙에 대한 개인적 책임감을 심어주고, 성경적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성숙한 단계로 성장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다. 어린이는 자신의 신앙 결단을 위해 공동체 내에서 성경을 읽고 삶으로 실천해야 했다. 특히, 그들은 비폭력과 평화주의를 강조했으며, 이를 어린이 교육의 중요한 요소로 삼았다. 아이들은 거짓, 폭력, 불의에 맞서며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정직하게 사는 법을 배우도록 훈련되었다. 그들은 어린이들이 개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공동체 내에서 협력하고 상호 부조의 가치를 이해하도록 가르쳤다. 아나뱁티스트는 세속적 가치와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추구했기 때문에, 교육의 목적은 어린이들이 세속적 영향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단순하고 경건한 생활 방식을 강조했다. 그리고 학문적 교육보다는 실용적이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술 교육을 중시하여, 노동과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워 공동체에 유익한 성인이 되도록 하였다.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은 루터와 칼뱅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때의 사회가 정부나 도시의 의미를 담은 일반 사회가 아니라 신앙 공동체라는 점에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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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론


지금까지 종교개혁 시기의 어린이와 어린이 교육에 관한 연구를 통해 시대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이 변화는 현대 사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종교개혁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모든 신자가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는 어린이들에게도 성경을 읽을 기회가 주어졌다는 의미이며, 소외되었던 어린이의 존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이후 존 로크와 장 자크 루소와 같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어린이들은 신앙의 주체로서 인식되었고, 모든 계층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공교육이 확대되었다. 이는 오늘날의 의무교육 제도의 토대가 되었다. 라틴어 대신 모국어를 중심으로 교육한 것은 현재 지역 언어와 문화를 중시하는 흐름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종교개혁에서 강조한 윤리와 도덕 교육은 현대 시민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기본 가르침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종교개혁에서 가정 교육은 아주 중요했다. 부모는 자녀의 영적 안내자로 기독교적 행동의 본보기가 되고, 가족은 작은 교회 공동체로서의 사회적인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가정 내의 신앙 교육은 단지 교리 전달에 그치지 않고, 부모와 교회가 공동으로 자녀의 영적 성장에 책임을 진다는 윤리적 책임감을 강조한 것도 지금까지 이어지는 부분이다.


중세 시대보다 더 많은 보편적 교육 기회가 어린이들에게 주어졌지만, 여전히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교육과정과 교육 방법에 이끌려 수동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은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할 점이다. 종교개혁을 할 때 어린이들은 개혁의 도구였다. 어린이들의 개인적인 성장보다, 사회적 성장을 위한 목적을 두고 어린이들에게 특정 사상을 주입하려고 했던 점은 어린이들을 완전한 주체적 자아로서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인식은 여전히 현대의 주일 학교 교육으로 이어져 어린이들을 어른들이 조직하고 구성한 교재와 내용을 배워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여러 종교개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린이가 여전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농장이나 작업장에서 일하며 교육 기회를 제한받았다. 소녀들도 문자 교육과 성경 읽기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소녀들을 위한 학교가 설립되었지만, 대부분의 소녀 학교에서는 읽기와 쓰기만 가르치고, 과학이나 철학 등 고급 학문은 배울 기회가 없는 사회적 한계가 존재했다. 또한, 종교개혁이 종교 전쟁과 박해를 동반하면서 종종 어린이를 고아로 만들거나 강제 이주하게 하면서 사회적 약자로서의 어린이들이 정서적, 인지적, 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칼뱅은「기독교강요」제3권 2장 2절에 나오는 믿음에 대한 정의에서 ‘이해는 믿음과 결합된다.’고 말했다. 이는 믿음이 단순히 맹목적인 감정이나 비이성적인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는 지성과 이를 신뢰하는 과정에서 성립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 어린이들도 그들의 자발적인 배움과 깨달음의 기회가 주어졌어야 한다. 주어진 것을 학습하는 것으로는 이해와 믿음의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 여전히 현대 교회에서도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짜놓은 교재를 읽고 암송하면서 단순한 감정이나 비이성적인 동의를 요구받을 때가 많다. 따라서 참된 종교개혁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교회와 가정에서 어린이들에게 정해진 한 방향, 한 가르침을 강요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교회와 가정에서 어린이들에게 스스로 말씀을 읽고 해석할 기회와 생각하고 토론할 자유를 주면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믿음에 이르도록 하는 시간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기독교인이 급감하는 현대 시대에, 어린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잘 짜여진 교리와 교재, 재미있는 프로그램이기보다 믿음과 신앙에 대한 어린이들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함께 대화하며 하나님을 이해하고 믿어갈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와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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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ennonitechurch.ca/

https://kac.or.kr/category/%EC%9E%90%EB%A3%8C%EC%8B%A4/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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