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Never Saw Another Butterfly』 말없는 증언자들
이 글은 홀로코스트 시기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유대인 어린이들의 시와 그림을 수록한 『I Never Saw Another Butterfly』를 중심으로, 어린이들의 감정, 경험, 인식에 주목하며 역사적 고통을 미시사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어린이들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 글과 그림으로 죽음과 상실, 그리움, 희망을 표현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삶의 의지를 지켜나가려 했다. 어린이들의 기록은 홀로코스트 시대에 살아있는 존재의 의미이자 무언의 저항이었다. 어린이들의 기록은 ‘작은 목소리’로서 사회적, 윤리적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어린이들이 역사적 공론장에 적극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1. 서론
홀로코스트는 20세기 인류가 겪은 가장 참혹하고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다. 나치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유대인 학살은 전쟁, 정치, 권력 구조, 인물 등 주제로 오랫동안 연구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는 성인의 시각으로 이루어졌고, 어린이들의 경험과 기록은 상대적으로 주변화되어 왔다.
역사 연구의 중요한 과제는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함으로 역사의 넓고 깊은 이해를 돕는 데 있다. 최근에는 기존의 거시적 서술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일상과 감정, 기억을 통해 역사에 접근하려는 흐름이 강조되고 있다. 기존의 역사 서술이 사건이나 영웅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미시사는 개인, 공동체, 마을 등 작은 단위를 중심으로 역사적 경험을 조명한다. 이는 큰 역사 속에 가려진 ‘작은 목소리’에 주목하며, 주변화된 존재들의 기억과 삶을 역사 안으로 끌어오는 작업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했던 존재인 어린이의 시각으로 시대를 조망하는 일은 미시사(Microhistory)적 접근 방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어린이들은 역사 속에서 흔히 수동적이고 비가시적인 존재로 취급되었고, 그들의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해도 종종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어린이의 글과 그림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그들이 스스로 체험한 세계를 언어와 이미지로 남긴 귀중한 역사적 기록물이다. 따라서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바라보는 시도는 기존의 연구에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시각을 제공한다.
이 논문은 테레지엔슈타트(Theresienstadt) 수용소에서 남겨진 어린이들의 글과 그림을 모은 책 『I Never Saw Another Butterfly』를 대상으로 한다. 어린이들이 수용소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그리고 그 표현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들이 남긴 시와 그림을 통해 공포와 그리움의 감정을 살펴보고, 절망 속에서도 살아남으려 애썼던 어린이들의 삶을 보려 한다. 이를 통해 홀로코스트의 또 다른 얼굴을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째, 아이들은 수용소에서 무엇을 겪고 느꼈으며, 어떻게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는가? 둘째, 그들의 시와 그림은 어떤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을 통해 홀로코스트 시대 어린이들의 내면과 감정을 읽어내면서, 변방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역사를 이해하는 미시사적 관점의 가치를 탐색하고자 한다. 한나 아렌트는 한 시대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망각의 구멍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어떤 것도 완전하지 않으며, 망각이 가능하기에는 이 세계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이야기하기 위해 단 한 사람이라도 항상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것도 ‘실질적으로 불필요’하지 않다.”
2.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어린이의 생활
2-1.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에서의 생활
테레지엔슈타트는 체코슬로바키아 테레진(Terezín)에 위치한 강제 수용소로, 나치 독일이 ‘모범 수용소’로 선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성한 장소였다. 특히 1944년, 덴마크의 요청에 따라 국제 적십자위원회의 방문이 허용되었고, 이를 앞두고 나치는 수용소를 철저히 정비하였다. 수용자들에게 연극과 음악 활동을 허용하고, 식사를 제대로 제공했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테레지엔슈타트를 ‘자율적인 유대인 마을’로 꾸며 국제 사회를 기만하고자 했다. 이로 인해 이곳은 ‘선전용 수용소(Propagandalager)’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은 철저히 위장된 연출에 불과했다. 실제 테레지엔슈타트는 극심한 식량 부족, 열악한 위생 상태, 과밀한 생활 환경, 강제 노동 등이 지배하는 비인간적인 공간이었다. 원래 군사 요새로 지어진 이곳은 구조적으로도 좁고 답답한 환경이었다. 수용소는 두 구역으로 나뉘어 운영되었다. 하나는 일반 수용자들의 거주 공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게슈타포의 감시 아래 예술가와 작가들이 ‘문화 활동’을 수행하던 구역이었다. 음악회, 미술전시, 연극 등은 수용자들에게 일시적인 위안을 제공했지만, 그 이면에는 나치의 체계적인 폭력과 학살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테레지엔슈타트는 극단적인 모순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수용자들은 한 방에 50~100명이 함께 지내야 했고, 사실상 개인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별도의 아동용 막사(Kinderheim)에 배치되었으며, 또래끼리 서로를 돌보며 생존해야 했다. 바닥에는 볏짚이나 얇은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고, 겨울에는 극심한 추위를 견뎌야 했다. 하루에 배급되는 식량은 수프 한 그릇과 빵 한 조각에 불과한 날이 많았으며, 아이들은 대부분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인해 항상 허약한 상태였다. 목욕 시설은 거의 없었고, 오랜 시간 같은 옷을 입어야 했으며, 화장실 부족으로 인해 오염된 환경 속에서 질병이 확산되었다. 가족과의 이별, 배고픔, 질병, 추위 등은 어린이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일으켰고, 많은 이들이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하루 하루를 견뎌야 했다.
테레지엔슈타트는 아우슈비츠로 가는 중간 기착지로 사용되었으며, 대부분은 1~2년 정도 머문 후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그 중 극히 일부만이 3년 이상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는 매우 드문 사례였다. 1942년부터 1944년 사이에 약 90,000명이 테레지엔슈타트에서 다른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이 중 87,000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특히 1944년 10월에는 단 5일 만에 18,000명의 어린이, 여성, 노인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고, 그들 대부분은 도착 즉시 가스실에서 학살되었다. 테레지엔슈타트에 수용된 유대인 어린이 약 15,000명 가운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생존한 이들은 단 150명에 불과했다. 이 중 약 100명은 유대인이었으며, 나머지는 혼혈 유대인, 개종 유대인 가정의 자녀, 혹은 특별한 이유로 보호받은 극소수의 어린이였다.
2-2.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이뤄진 예술 활동
테레지엔슈타트는 유대인 엘리트층(예술가, 학자, 정치인 등)과 나이가 많은 유대인, 전시 홍보에 적합한 사람들, 그리고 어린이들이 수용된 곳이었다. 나치의 허용하에 교육이 일부 이루어졌으나, 대부분의 교육 활동은 유대인 교사들과 예술가들에 의해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글쓰기, 수학, 과학, 역사, 문학, 종교, 시 낭송 등 기초 학문을 가르쳤고 예술 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 인간 존엄성, 희망과 생존 의지를 심어주려 노력했다. 이와 같은 교육은 지식 전달을 넘어 유대인의 정체성과 생존을 위한 심리적 저항의 수단이었다.
특히 주목할 인물은 프리들 디커-브란데이스(Friedl Dicker-Brandeis)다. 그녀는 수용소에서 약 600명 이상의 어린이들과 함께 작업하며 예술을 통한 심리적 회복과 정체성 유지를 도운 교육자였다. 그녀는 수용소로 이송될 당시 허용된 50kg의 짐 중 대부분을 미술용품으로 가득 채웠을 만큼 예술을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이었다. 그녀 역시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지만, 굶주림과 질병, 잔인함으로 둘러싸인 공포의 환경 속 아이들을 마주하며 예술을 통한 내면적 구원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콜라주, 수채화, 종이짜기,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아이들이 겪는 고통, 공포, 상실, 희망 같은 감정을 표현하게 했다. 아이들에게 특정한 ‘정답’이나 기술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창의적 자유를 드러내도록 격려했다. 이것이 그녀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그림은 너희가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게 해줄 수 있다”고 말하며, 예술이 단순한 표현 도구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힘임을 강조했다. 아이들이 예술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극한 고통 가운데서도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고, 내면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격려했다. 그녀는 1944년 아우슈비츠로 이송되기 직전, 언젠가 누군가가 이 자료를 발견해주기를 바라며, 아이들의 그림과 글을 두 개의 여행 가방에 담아 수용소에 남겨두었다. 그녀는 결국 학살되었지만, 그녀가 남긴 약 4500점의 작품을 살아남았다. 이 가방은 1945년 8월 말 발견되어 프라하 유대인 공동체에 전달했지만, 그 당시에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 가방은 10년 동안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이는 아이들의 글과 그림이 담긴 의미를 알고자 하는 이가 없었으며, 아이들이 역사적 연구나 관심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10년 후에 이 작품들은 이스라엘 야드 바셈과 프라하 유대인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이로서 홀로코스트 시대를 겪은 아이들의 글과 그림은 총이 아닌 붓과 종이의 저항으로, 아픔의 현실을 증언하는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게 되었다.
3. 『I Never Saw Another Butterfly』 책에서 발견하는 어린이
3-1. 『I Never Saw Another Butterfly』 책 소개
『I Never Saw Another Butterfly』는 1942년부터 1944년 사이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유대인 아이들이 남긴 시와 그림을 엮은 작품집으로, 프라하 유대인 박물관의 큐레이터였던 하나 볼라프코바(Hana Volavková)와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USHMM)이 공동으로 편집하여 1959년에 출간했다. 책의 서문에서 프리델 디커-브란다이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녀 덕분에 감옥과도 같은 환경에서도 예술이 아이들에게 감정 표현과 자기 인식의 도구가 되어 기록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종이 판지, 포장지, 연필, 붓 등 구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모아 아이들에게 제공했고, 아이들은 그 재료들을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의 고통을 표현하고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는 법을 배워갔다. 그녀의 예술 수업은 아이들로 하여금 단지 감정을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게 해주었다. 그녀의 제자였던 생존자 라야 잉그레로바(Raja Engladerová)는 “그녀는 매우 다정한 분이었고, 매주 몇 시간이라도 우리를 위해 동화 같은 세계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너무 어린 나이에 고통을 피할 수 없었던 그때, 그녀는 우리의 영혼을 보살펴주셨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이러한 기억은 단지 한 예술가에 대한 헌사를 넘어서, 예술이 극한의 조건 속에서 어떻게 인간성과 존엄성을 지켜낼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이다. 『I Never Saw Another Butterfly』는 아이들이 남긴 말 없는 증언이며, 역사를 견뎌낸 감정의 기록이자, 존재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수용소 기록에는 대개 출생일, 수용소 도착일, 출발지와 운명(final solution)에 대한 정보가 있을 뿐이었다. 프리델 디커-브란다이스는 아이들의 글과 그림에 서명 대신 이름과 나이를 기록하게 했다. 이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이스라엘 소설가 아하론 아펠펠드(Aharon Appelfeld)의 말처럼 “예술은 끊임없이, 개인이 익명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저항.”하게 하는 것으로 예술이 한 인격을 존중하고, 개인의 목소리를 표현함으로서 집단적 억압 속에서도 개인의 존재를 드러내는 힘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3-2. 작품 주제와 해석
『I Never Saw Another Butterfly』에 드러난 대표적인 주제는 죽음과 자아의식,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현실적 고통, 그리고 자연(빛, 나비, 새, 나무 등)을 통한 희망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삶에 대한 애정과 인간에 대한 존엄을 지키려 애썼던 아이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 주제의 반복은 집단적 경험 속에서 공유된 감정과 상징적인 메세지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수용소는 죽음과 아주 가까이 닿아있던 곳이다. 수용소 속 아이들은 자신에게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죽음을 목격하며, 자신의 운명 역시 불확실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들은 자기 죽음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시를 통해 자아에 대한 사유, 생존에 관한 질문,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노력하며 가까운 이들의 죽음 앞에서의 침묵과 두려움을 표현했다. 이 책의 제목이 된 파벨 프리드만 (Pavel Friedmann)의 시 I Never Saw Another Butterfly를 살펴보자.
THE BUTTERFLY
The last, the very last,
So richly, brightly, dazzlingly yellow.
Perhaps if the sun’s tears would sing
against a white stone…
Such, such a yellow
Is carried lightly ’way up high.
It went away I’m sure because it wished to
kiss the world good-bye.
For seven weeks I’ve lived in here,
Penned up inside this ghetto.
But I have found what I love here.
The dandelions call to me
And the white chestnut branches in the court.
Only I never saw another butterfly.
That butterfly was the last one.
Butterflies don’t live in here,
in the ghetto.
나비
마지막, 진정 마지막,
그토록 풍부하고, 밝고, 눈부신 노란색.
아마 태양의 눈물이
하얀 돌 위에서 노래할 수 있다면…
그토록 선명한 노란색—
가볍게 높이 높이 날아올라,
세상에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서
멀리 날아갔음이 틀림없어요.
나는 이곳에서 7주 동안 살아왔어요,
이 게토 안에 갇힌 채.
하지만 여기서 내가 사랑하는 것을 찾았어요.
민들레가 나를 부르고,
안뜰의 하얀 밤나무 가지들도 나를 향해 있어요.
단지, 다시는 다른 나비를 보지 못했어요.
그 나비는 마지막이었어요.
나비는 이곳에 살지 않아요,
이 게토에는요.
Pavel Friedmann, 4 June 1942
이 시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필자는 7주 동안 게토에서 지내며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아이의 입장으로 해석하려 한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세 번 등장한다. 마지막이라는 말의 반복은 마지막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 수용소에서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고, 같이 지내는 친구들과의 이별이 잦았다. 상실의 감정을 자주 느끼면서 나무와 민들레 등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부터 안정감을 누리고자 하는 한다.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될까? 아이는 마구 살아 움직이는 나비는 한 번만 보고 보지 못했다. 아이에게 그 나비의 존재는 이별의 대상이면서 다시 만나고 싶은 그리움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나비처럼 자유롭고 싶기도 하고, 나비와 같은 이들을 다시 만나 삶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자신 역시 이곳의 민들레와 나무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처지다. 나비조차 떠나는 삭막한 게토에서 아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괴로워하며, 또 어떻게든 적응하고자 애쓰며 지냈을 것이다. 아이의 시에서 볼 수 있는 그리움과 두려움을 통해 그 시대 어린이들의 삶을 헤아려보는 과정은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다. 우리 곁의 어린이들과 자연스럽게 맞대어 생각해보며, 가장 약한 자들에게 미치는 전쟁의 끔찍함을 마주한다.
다음 그림은 하나 그륀펠트(Hana Grünfeld)가 1944년 그린 것이다. 왼쪽에 세 줄의 이층 침대에는 숫자 14, 15, 16이 적혀 있어 실제 수감자 번호 또는 침대 번호로 보인다. 중앙엔 탁자와 의자, 그
리고 그 위에 있는 꽃병이 보이고 전체적인 색은 노랑이다. 실제 수용소는 한 방에 30~100명이 함께 지내야 하는 참혹한 현실이었고, 실제 수용소에는 책상과 의자, 꽃병은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붉은 바닥과 이불은 죽음과 맞닿아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따뜻한 색조인 것은 아이들이 바라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꽃병은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소박한 아름다움과 일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희망으로 표현되었으며, 색의 층이 반복되는 구조는 감금된 공간 안에서도 끊임없이 꿈틀대는 감정과 결을 보여주는 듯하다. 아이는 비극적인 현실을 지나 자신이 바라는 따뜻한 가정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이 그림의 제목은 Garden이고, Ruth Cech가 그렸다. 가운데 서로 마주 누운 두 사람은 같은 옷을 입고 있고, 주위에는 꽃과 나무가 있다. 실제로 아이가 이런 경험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두 소녀를 둘러싼 나무와 꽃들로부터 보호받고 생명의 풍성함을 경험하고 싶은 아이의 소망을 찾을 수 있다. 비록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언젠가 서로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두 아이의 표정에서 드러나며, 활짝 편 꽃들을 보면 행복한 마음을 꿈꾸는 것 같다. 보통 수용소 내 아이들의 그림이 무척 어둡고 절망적일 것으라 예상되지만, 실제는 노란색을 띠며, 자유롭게 나는 새와 동물들, 구름과 해, 열매를 맺고 있는 나무 등이 비교적 많았다. 극한 고통을 직면하여 그대로 표현하기보다 과거의 기억, 또는 이 시간이 끝난 다음의 희망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다시 햇살 아래 들판을 달릴 수 있을까”라는 시 속에는 과거(기억), 현재(수용소의 삶), 미래(희망 혹은 죽음)가 나타나는데, 복합적인 시간 감각과 정서적 인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아이들의 표현은 종종 침묵 속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여백, 짧은 글을 읽으며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고통의 소리를 만나게 된다. 그 침묵은 표현조차 할 수 없는 고통과 공포 속에서 비롯된 것으로 도무지 말할 수 없음의 고통이며, 동시에 타자에게 말을 걸기 위한 침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이들은 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그들의 그림과 시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것은 미학적 침묵이며, 존재의 증언이다. 말 없는 증언자들이 남긴 작품은 우리가 역사를 읽고 해석하는 방식에 도전하며, 단절된 과거와 오늘의 우리를 연결한다. 우리가 그것을 읽는 순간, 침묵은 소리가 되고, 잊힌 목소리는 다시 들리게 된다. 어린이들의 표현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역사 문서이며, 침묵의 언어로 남은 가장 진실한 고백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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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어린이들이 인식한 홀로코스트
어떤 아이들의 시와 그림은 수용소의 가시적인 폭력과 그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다. 그들은 예술을 통해 억압적인 현실에 저항하며,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려 했다. 이러한 표현은 단순한 감정 발산을 넘어, 체제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자 인간성의 선언으로 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모니그(Elizabeth Monnig)의 논문에 의하면 수용소 내 아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먼저 놀이를 스스로 창조하거나, 판타지 세계를 만들어 현실을 탈출하고자 했다. 그리고 현실의 공포 대신 자연과 고향, 가족, 좋았던 기억을 떠오르며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고자 했다. 특히 시와 일기 쓰기를 통해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며, “가시 철조망 안에서도 꽃이 핀다면, 나도 피어날 수 있어. 나는 죽지 않아!”라고 또한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으려 했다. �모든 것은 관점에 따라 다르다(It Depends How You Look at It)�’라는 제목의 시 “테레지엔슈타트는 아름다운 곳이야. 죽음은 결국 모든 사람을 데려가. 나치조차도.”에서 아이는 “죽음은 결국 모두를 데려간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았다. 심지어 나치들조차 죽음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기에, 죽음은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자들에게 정의를 가져다줄 것을 희망했다. 다른 아이의 시 �화창한 저녁에(On a Sunny Evening)�에서는 “가시철조망 안에서도 꽃이 필 수 있다면, 왜 나는 안 되겠는가? 나는 죽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시를 통해 죽음에 대한 괴로움, 절망, 두려움, 고통, 그리고 희망을 표현했다. 아이들은 죽음과 폭력을 넘어 수용소 안팎의 자연과 세상 속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고통 속에서도 삶의 긍정성과 목적을 찾으려 애쓴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은 수용소 안에서 스스로 물리적 해결책은 찾지 못했지만,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생존을 위한 전략을 고민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단지 피해자가 아니라 삶의 의미와 목적을 스스로 찾아간 증언자, 주체적 자아를 가진 자들이다. 아래의 시는 단순한 공포가 아닌, 게토에서 매일 경험하던 죽음, 질병, 상실, 생존 본능의 충돌을 그린다. 12세 소녀가 죽음을 마주할 때 느끼는 절망감과 두려움, 그리고 생에 대한 의지가 직접적으로 표현되었다. 아버지의 심장 소리는 두려움을 드러내고, 어머니의 울음은 절망적이다. 부모를 보는 아이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지만, 죽을 수 없다고, 더 나은 세상이 반드시 올 것이라 선언한다. 게토의 삶을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으로 표현하며, 하나님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절박한 기도라 할 수 있다. 절망할 수 없어서 희망하는 상태, 상황에 적응하면서 생존하고자 하는 복잡한 심경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은 짧은 생애 동안 겪은 극한의 경험을 통해 삶과 죽음, 인간성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아이들의 시 속에는 “아빠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라는 구절처럼 상실에 대한 절절한 고백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단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 사랑하는 이와의 단절, 가족 공동체의 해체라는 보다 깊은 정서적 상실감을 드러낸다.
〈FEAR〉
Today the ghetto knows a different fear,
Close in its grip, Death wields an icy scythe.
An evil sickness spreads a terror in its wake,
The victims of its shadow, weep and writhe.
Today a father’s heartbeat tells his fright
And mothers bend their heads into their hands.
Now children choke and die with typhus here,
A bitter tax is taken from their bands.
My heart still beats inside my breast
While friends depart for other worlds.
Perhaps it’s better—who can say?—
Than watching this, to die today?
No, no, my God, we want to live!
Not watch our numbers melt away.
We want to have a better world,
We want to work—we must not die!
두려움
오늘, 게토는 또 다른 두려움을 안다.
손아귀 가까이에서, 죽음은 얼음 같은 낫을 휘두른다.
악한 병이 공포를 퍼뜨리며 퍼지고,
그 그림자 아래 놓인 희생자들은 울부짖고 몸부림친다.
오늘 아버지의 심장박동은 그의 공포를 말해주고,
어머니들은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
이제 아이들은 장티푸스로 숨이 막혀 죽어가고,
그들의 손목에서 쓰라린 대가가 떼어간다.
내 가슴 속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어요,
친구들이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동안에도.
어쩌면 그게 더 나은 걸까요—누가 알 수 있겠어요?—
이걸 보는 것보다는, 오늘 죽는 게 더 나을까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하나님, 우리는 살고 싶어요!
우리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요.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원해요,
우리는 일하고 싶어요—우리는 죽어선 안 돼요!
Eva Picková, 12 years old, Nymburk
Novakk의 『Labor Brigades』 그림은 아이가 보는 수용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기차로 이송된 사람들은 끌려가서 강제 노동하거나 학살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건물과 철조물 구조물은 감금된 상태이며 사람들은 경직되고 불안하고 두려운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림 옆 『Terezin』은 Mif라는 서명을 쓴 아이가 쓴 시로, 그 수용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우리의 이마 위로 가장 무거운 바퀴가 굴러간다. 그것은 기억 속 어딘가에 깊이 파묻히려 한다. 우리는 여기서 충분히 고통받았다. 이 슬픔과 수치심 덩어리 안에서, 눈먼 증표라도 원한다—그들 자식에게 남길 증거로. (중략) 대포는 울부짖지도, 총은 짖지도 않는다. 피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조용한 굶주림뿐. 아이들은 빵을 훔치고, 또 묻고, 또 묻는다. 모두는 자고 싶고, 조용히 있고 싶고, 다시 그냥 잠들고 싶을 뿐이다…” 굶주림 속에 아이들이 빵을 훔치고, 자고 싶어 한다. 자기가 겪는 고통을 글로 표현하며 이 삶이 끝나길, 이 고통의 시간을 지나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날로 삼겠다는 결심은 깊은 슬픔과 괴로움으로부터 나온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삶은 계속 되고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일 것이라는 인식이 드러난다.
아이들의 기록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홀로코스트 시대의 인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이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매우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여러 시와 글에서는 “나는 언제 기차에 실려 갈지 모른다.”, “다음에는 내 친구 차례일 것이다.”라는 문구를 통해 자신이 언제 죽음으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표현한다. 이는 단순한 공포의 감정을 넘어서, 체계적 박해와 말살 속에서 자기 삶이 처한 조건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아이들은 자신들이 겪는 차별과 잔혹함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유리 없는 창문 안에서 얼어붙고 있다”와 같은 표현 등으로 인간으로서 존엄을 박탈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으며, 물리적 고통과 함께 외로움을 토로했다.
셋째, 아이들은 공통된 집단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일부 시에서는 “우리 유대인 아이들”, “유대인으로서 삶” 등으로 표현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역사적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욕구조차 허락되지 않았으며, 물건처럼 쉽게 버려지는 상황이었지만, 아이들은 자신과 서로의 존재감을 지키려고 했으며, 곁의 사람들을 돌보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력했고, 상황은 더욱 더 절망스러웠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아이들은 홀로코스트를 단지 현재의 고통으로만 인식한 것이 아니라, 기억되어야 할 역사적 사건으로도 인식했다. 수 많은 학살의 현장에서 자신들의 기억과 관계가 잊혀지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기억해 줘”, “이것을 잊지 말아줘”라는 표현이 여러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그들의 고통이 기록되고 남겨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주체성을 보였다. 직접적인 반항이나 투쟁은 하지 못했으나, 예술적 표현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드러냈다. “나는 아직 삶을 끝내지 않았다”라며 자기 존재와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들은 그림과 글을 통해 이 시간에 자신이 겪는 괴로움과 외로움을 직면하여 거침없이 표현했다.
4. 말 없는 증언자들: 역사 속 어린이의 목소리 듣기
이 책에 기록된 어린이들 대부분은 학살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그림과 글로만 존재하는 말 없는 증언자들이다. 테레지엔슈타트라는 공간은 단순한 감금과 박해의 장소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엄을 철저히 부정당한 공간이었다. 그때 그림과 시의 표현은 공포와 불안, 이별과 상실을 표현하고,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방식이 되었다. 아이들이 남긴 그림 속에 등장하는 무표정한 얼굴을 지닌 자화상, 거친 붓질 속의 추상적 풍경, 그리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나비와 새, 햇살, 울타리 등은 단지 어린이의 상상력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적 갈망과 내면의 목소리를 반영한다. 그들이 남긴 시는 짧고 단순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언어로 세상을 붙들려는 진지한 시도이자, 타인과의 소통을 갈망하는 외침이었다. 수용소 안에서의 예술은 아이들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저항이었으며,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선언이었다. 희생자 아이들의 삶은 예술을 통해 표현되어 남겨졌고, 전쟁 후 생존자들은 그 시간을 마주하고 기록하게 함으로서 상처를 극복하고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또한 그들의 기억과 증언이 공동체적 기억으로 전환되며 역사를 재해석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아이들의 글과 그림은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건으로 공유되고 공동체의 기억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 어린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전쟁의 영향을 역사적으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시와 그림은 생존자나 2세, 혹은 완전히 타자의 입장에 선 현대 독자에게까지 깊은 감정적 울림을 주는 힘이 있다. 아이들이 남긴 표현은 그 시대의 잔혹함과 비극을 넘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인류 역사의 일부로 다시 태어날 때 의미가 있다. 실제 이 책을 바탕으로 연극을 했던 학교의 학생들의 경험은 이를 잘 보여준다. 마이클 밀레치(Michael Milech,당시 Bialik 고등학교 9학년)는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새로울 게 없었거든요. 숫자와 날짜는 쉽게 기억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사람들이 느낀 감정이에요. 이 연극은 바로 그걸 되살려줘요.”라고 말한다. 또한 아르만다 스미스-바렛(Armanda Smith-Barrett, 당시 수용소 아이의 역할을 맡았던 세이크리드 하트 11학년)은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아야 해요. 인종이 다르거나, 성별이 다르거나,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상처 주면 안 돼요. 역사를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반복하게 될 거예요.”라 고백한다. 개인의 경험이 공동체적으로 해석될 때 더 깊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5. 결론
이스라엘 역사학자인 이츠하크 바우어(Itskhak Bauehr)는 “어린이들은 전쟁 당시 성인들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잔학 행위를 경험했다. 그들의 증언은 필터를 거치지 않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억이다. 후대의 연구자들은 이 증언들이 가진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라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성인의 기억은 흐려지고 과거의 경험이 재구성되는 반면, 어린이들은 전후 즉시 기록된 것은 당시 감정과 현실을 생생하게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쟁 후에 미시사적 접근을 통해 홀로코스트 희생자 어린이들의 기록을 수집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고, 생존자들의 증언이 중요한 사료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하지만, 다양한 단체에서 어린이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기록은 역사적 해석의 자료이면서 생존자들의 상처를 극복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재활의 방법으로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등의 예술 활동을 활용했다. 특히, 테넨바움은 전후 아이들의 아픔을 감싸며 그들이 기록하며 트라우마를 해결하도록 도왔다. 그는 아이들에게 다가갈수록 ‘손대지 마’라고 경고하는 듯 가시를 내밀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밤마다 기차를 타고 폴란드 전역의 어린이 보호소를 방문하여 어린이들에게 공책을 나누어 주고, 색연필 같은 선물을 건네며 전쟁 시절의 경험을 기록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그 시간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꿈이 그들 안에서 피어나고 있음을 보았다고 “그 몇 주 동안 우리는 글을 쓰고, 기록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마치 상처를 째고 고름을 빼내는 과정과 같았다. 아이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토해내며 마음의 짐을 덜어냈다.”라고 증언했다. 홀로코스트의 집단적 경험을 넘어서 개인이 겪은 심리적, 감정적 경험을 기록하고 경청할 때 비로소 회복이 일어날 수 있었다.
이 책 『I Never Saw Another Butterfly』을 통해 우리는 홀로코스트 시대를 살아낸 아이들의 감정과 삶의 흔적을 마주했다. 아이들의 글과 그림은 사건이 아닌 감정과 생각을 읽으며 비정형적이고 주관적인 층위를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공포와 절망 가운데 두렵고 불안한 감정을 표현했고, 도움을 요청하고 기다렸으며, 공동체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버티려 했다. 아이들은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다가오는 죽음을 애써 부정하고 희망하고자 하는 생존 의지를 보였다. 소리 없는 증언자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아이들이 남긴 종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단지 과거에 대한 이해를 넘어 오늘날 역사가 감당해야 할 윤리적 책무와도 연결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우리가 물려받은 이야기들에 의해 항상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그들의 고통과 목소리를 잊지 않으며, 다시는 비참한 전쟁과 민족 우월주의와 전체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아야 함을 기억의 실천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 윤리적 질문과 연결된다.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의사소통 행위 이론』에서 공론장이란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합리적 대화를 통해 상호이해를 이루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이 맥락에서 보면, 어린이들의 표현은 역사 속 공론장에 참여하지 못한 목소리였다. 그들의 목소리를 발굴하고 해석하는 것은, 과거의 공론장에 초대받지 못했던 자들을 역사적 대화에 포함하는 일이다. 이는 역사학이 감당해야 할 민주적이고 윤리적인 사회적 책임이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을 말할 수 있는 존재(homo loques)로 정의하며 말하기와 기억하기가 인간 존엄성과 공적 세계를 구성하는 핵심이라 강조한다. 비록 수용소의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없었지만, 그림과 글을 통해 표현할 수 있었다. 그들의 기록에는 침묵이 있었고, 저항이 있었다. 이들에게 기록은 인간성을 회복하는 작업이었다. 오늘날에도 끔찍한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그 안에 여전히 아이들이 있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침묵 속에 버티고 있는 아이들, 어떻게든 희망을 찾고 싶은 아이들은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비록 물리적 상황을 극적으로 바꿀 수 없더 하더라도, 그들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해주고, 펜을 들어 표현하게 해줘야 한다. 말하기와 기억하기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존재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게 해줘야 한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글과 말이 고통의 담벼락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계속 들려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I Never Saw Another Butterfly』는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에 응답할 것인가를 묻는 텍스트로서 가치를 가진다. 아이들의 기록은 사라진 존재들의 목소리를 우리 앞에 다시 불러오며, 역사의 깊은 이해와 사회적 책임을 새롭게 일깨워준다.
[참고 문헌 및 사이트] :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는 chatgpt로 번역하여 읽음
∎ 나치즘, 홀로코스트, 테레지엔슈타트, 미시사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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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테넨바움(1914–1999)은 폴란드어에서 히브리어로 문학을 번역하는 작가이자 번역가로, 1937년 바르샤바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민을 갔다. 전후에 폴란드에 머물다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어린이들에게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바쳤다. Boaz Cohen, The Children’s Voice: Postwar Collection of Testimonies from Child Survivors of the Holocaust, Holocaust and Genocide Studies 21, no. 1 (Spring 2007): 74-75p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의사소통 행위 이론』(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장춘익 옮김, 나남출판, 2006, 제1권, 3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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