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현의 <마음먹기>를 읽고 철학탐구
2026-4-22 마음을 요리하는 마마쿠쿠 98번째 모임
<마음먹기> ㅇㅇ님이 읽어주셨다.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이었다.
_자현 (지은이), 차영경 (그림) 달그림_
오늘 마음먹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은옥님이 건낸 마음을 졸인다 라는 표현으로 생각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가끔 마음을 졸인다. 예기치 못한 일에 대해 갑자기 찾아오는 긴장이나 불안, 그리고 더 깊은 곳에 숨겨져있던 마음이 터져올 때가 있다. 마음을 졸인다는 것은 어떤 사건이나 관계 앞에서 생각과 감정이 한곳으로 모여들고, 그 밀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결국 나 자신과 상황을 궁지로 몰아가는 경험이다.
이 표현이 유독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졸인다’는 말 자체가 지닌 물성 때문이다. 음식을 졸일 때 우리는 불 위에 올려놓고 오래 지켜본다. 수분은 날아가고, 맛은 농축되며, 점점 진해진다. 마음도 이와 비슷하다. 어떤 걱정이나 불안이 시작되면, 우리는 그것을 반복해서 생각하고 되새긴다. 그러는 사이 감정은 옅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짙어진다. 그렇게 마음은 점점 응축되고, 어느 순간에는 나 자신을 견디기 어려울 만큼 몰아붙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졸이는 경험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오늘 나눈 이야기 속에서도 드러나듯,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졸이며 살아가고 있다. 낯선 환경에서 언어의 한계를 느끼며,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책임과 기대 사이에서, 혹은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의 흐름 속에서 마음은 자연스럽게 긴장한다. 이런 점에서 마음의 졸임은 제거해야 할 결함이라기보다, 삶의 조건 속에서 발생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이다.
문제는 그 빈도와 강도에 있다. 마음을 자주, 그리고 오래 졸이다 보면 삶은 점점 ‘짜’진다. 필요 이상의 걱정이 생겨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미리 끌어와 스스로를 괴롭힌다. 감정은 나를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졸이는 일이 없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안다. 완전히 졸이지 않는 삶 역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조려야 맛있는 음식도 있다”는 말처럼, 어떤 마음의 졸임은 우리를 더 깊은 이해로 이끌기도 한다. 오래 붙들고 고민했던 문제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감정의 결을 알아차리며, 타인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여지를 얻는다. 졸임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때로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음을 졸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를 배우는 일일 것이다. 대화 속에서 드러난 여러 실천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해보려는 시도, 밀려오는 감정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는 노력,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는 경험. 이러한 방식들은 마음의 졸임을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나를 압도하지 않도록 돕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자신의 불안과 예민함마저도 “나의 일부”로 인정하려는 태도였다. 마음을 졸이는 나를 없애려 하기보다, 그런 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려는 시도. 그리고 더 넓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의 감정을 바라보려는 노력. 이러한 태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조금 더 성숙한 방식으로 감정을 견디고 지나갈 수 있게 된다.
결국 “마음을 졸인다”는 것은 피해야 할 상태라기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불 위에서 완전히 타버리지 않는 일이다. 때로는 불을 줄이고, 때로는 잠시 내려놓고,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그 냄비를 지켜보는 일. 그렇게 우리는 마음이 너무 짜지지 않도록, 그러나 완전히 무미건조해지지도 않도록, 삶의 온도를 조절해 가며 살아간다.
아마도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마음을 졸이게 될 것이다. 다만 그 경험 속에서 조금 더 자신을 이해하고, 조금 더 타인을 품을 수 있다면, 그 졸임은 단순한 고통을 넘어 하나의 깊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책으로 여러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일어났다. 과연 마음을 먹을 수 있는가? 마음을 먹었다고 그 마음을 어떻게 계속 지속할 수 있을까? 우리의 질문은, 우리의 마음을 더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나이가 들면서 드는 생각은 내 마음을 아는 것만큼 내 곁의 이들의 마음도 함께 헤아려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과정에서 꽃이 피어나고 기쁨과 슬픔이 오가면서 자랄 수 있을 거다.
*졸인 마음으로 시작했던 마마쿠쿠가 익어간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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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먹기」 이후 떠오른 질문들 정리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먹을 수 있는 것일까?
마음을 ‘먹는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할까?
마음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것일까?
마음먹기란 무엇인가?
마음은 의지로 선택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주어지는 것인가?
마음과 감정의 경험
우리는 오늘 어떤 마음을 먹고 살았는가?
마음의 상태는 왜 이렇게 다양하게 변할까?
나는 나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타인의 마음은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
마음을 느끼며 사는 것이 건강한 상태일까?
“마음을 졸인다”에 대한 질문
마음을 졸인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상태인가?
우리는 왜 마음을 졸이게 되는가?
자주 졸이는 것이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덜 졸이는 삶이 더 건강한가?
졸임은 피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긴장과 불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마음을 다루는 방법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감정이 몰려올 때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조절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
나의 기질(불안, 예민함 등)은 바꿀 수 있는가, 아니면 인정해야 하는가?
마음을 다독이는 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관계 속의 마음
나의 감정은 타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아이들은 혼날 때 어떤 마음을 경험하는가?
부모의 불안은 어떻게 아이에게 전달되는가?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존재는 왜 중요한가?
성장과 실천
마음먹은 일을 꾸준히 지속하는 것은 왜 어려운가?
성숙한 사람은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가?
마음의 훈련(호흡, 기도, 성찰 등)은 실제로 어떤 변화를 만드는가?
우리는 어떻게 ‘더 넓은 관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The 98th gathering of Mamakuku: Cooking the Heart unfolded around the theme of “making up one’s mind,” yet it was the phrase “to simmer one’s heart” that lingered. Like food reduced over heat, the heart gathers its thoughts and feelings, growing dense with worry, longing, and quiet tension.
The conversation moved between unease and understanding. To simmer the heart is not merely to suffer, but to live within the conditions of uncertainty—raising children, navigating unfamiliar worlds, carrying unspoken fears. At times it overwhelms; at times it deepens us.
Rather than seeking to extinguish this inner heat, participants reflected on how to live with it—pausing, breathing, discerning what can be held and what must be released, and sharing one’s heart with others. In this way, even restlessness becomes a path toward self-understanding and compassion.
In the end, to simmer the heart is not a failure to avoid, but a sign of life itself. The task is not to burn, but to endure the heat—together—until something within us rip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