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며 자기기만에 빠진 적이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업무지시에 대해, 위에서 시켰으니 어쩔 수 없이 잘해야 한다 여기고 후배들과 타 부서 관계자를 설득했다. 그 행위 자체는 월급쟁이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하게 나를 합리화시켰으며 10년 차 즈음부터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느끼고 행동했다.
영화 '어퓨 굿맨(A few good men)'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자신을 지킬 능력이 없는 사람을 위해 싸워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불명예,
그것이 우리들의 죄다.
미 해군기지에서 사병 한 명이 죽은 채 발견된다. 군에 적응하지 못한 고문관 사병 산티아고에게 대령은 얼차려를 명령하고 선임병들이 그 명령에 따르는 과정에서 사고가 생겼다. 대령은 자신이 내린 명령을 부인하고 선임병들만 기소되나, 재판 과정에서 대령의 잘못이 밝혀지고 죗값을 치르게 된다. 그런데 기소되었던 선임병들에게 상관의 잘못된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이유로 불명예제대 처분이 내려진다. 처분을 받은 일병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냐며 억울해한다. 위의 대사는 그때 또 다른 피고인인 상병이 일병에게 한 말이다.
과거 이 영화를 보며,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 그 선임병과는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 다짐했다. 직장에서 나는 누군가의 산티아고가 되었고 연차가 싸이고 선임이 되어 또 다른 산티아고들을 상대했다. 납득이 되지 않아 못하겠다거나 자기 능력 밖이라는 산티아고를 몰아갔다. 나는 나의 선임을 설득하거나, 산티아고에게 다르게 표현하고 격려할 수 있음에도 그러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를 주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더 많은 상황 속에 산티아고들이 있었을 것이다.
창피한 이야기이나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내게 상처 준 상사, 동료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덜어내주었다. 소위 잘 나갈 때 부끄러운 마음이 점점 작아지면서 자기기만이 강해지는 것 같다. 범인인 나는 그랬던 것 같다.
가슴 뜨겁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끄집어내어 중간점검을 하는 중이다. 마흔에 병을 얻어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린 덕분에 얻은 것이리라.
부끄러움을 알고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는 나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