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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시시 Jun 21. 2022

불량학교

과거와 현재의 만남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기억한다. 강남의 땅값이 오를 것을 예상한 어머니가 서둘러 이사를 하게 되며, 그녀의 아들이 강남 정문고로 전학을 오게 된다. 그 학교는, 선생님뿐만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 폭력으로 인해 악명 높다. 요즘 시대로는 문제 되지 않을 일로, 교사는 학생을 개 패듯 패며 학생들 간의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1978년을 배경으로 했다.


출처, 나무 위키


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던 때는 1988년이다. 영화에서의 배경보다 10년은 더 흘러간 상황에서 학교를 다녔다. 물론 <말죽거리 잔혹사> 에서만큼의 폭력은 볼 수 없었다. 그 학교는 영화 속 학교이기도 했고, 문제 학교였기에 더 극대화된 부분이 있다. 우리 시대는, 단체 기합을 받기는 했다.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아 너무 소란스러울 때, 시험을 봤는데 꼴찌를 해서 반 전체 성적이 안 좋을 때와 같은 상황에서 말이다. 정육점에서 볼 법한 수제 소시지 두께에, 어른 팔 길이보다 짧은 길이의 몽둥이는 선생님의 필수품이었다. 그 무기로 우리는 손바닥을 맞거나, 단체로 책상 위에 올라가 앉아 허벅지 위를 맞곤 했다. 선생님이 너무 화가 나면, 학생들 스스로 교무실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손을 드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훗날, 내 학창 시절의 이 같은 상황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지인 P군은 고3 학기가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그날따라 지각을 몇 분 했더란다. 아무래도 고 3이라, 학생들에게 긴장감을 조성하고 싶던 담임 선생님은 P군을 교단 위로 불러내어 말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아무 도구 없이, 인정사정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때렸고 "너 같은 놈은 대학도 못 갈 줄 알아!"라는 협박을 했다. P의 고3 생활은 말 안 해도 상상이 간다. 그는 담임의 악담대로 4년제 대학이 아닌 지방 전문대에 원서를 내야 했다.

담임은 학생들이 긴장할 만한 표본이 필요했고, 19살이지만 아직은 어린 P군은 원치 않게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이번엔 O양이다.

그녀가 중학생 때 그림 그리기에 흥미가 있었다. 마침 미술시간에 소묘를 한다기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4B연필과 스케치북을 준비해 갔다. 그날의 수업 주제는 '손-소묘'였고, O양은 자신의 손을 관찰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유난히 길고 매끈한 손가락을 소유한 O양은 열심히 소묘를 했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그림을 완성했다. 수업이 마칠 시간이 되어 선생님은 학생들의 그림을 훑어보았고 선생님은 O양의 그림을 평가했다. "넌 지렁이를 그려놨냐!" 자신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의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O양은 선생님 손을 몰래 훔쳐보았고, 선생님의 손이 꽤나 짧고 두툼하더란다.

그날 이후 O양은 '미술'하면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만약 지각한 P군에게 그날의 폭력과 협박이 없었더라면? O양에게 비난이 아닌 격려와 다른 방향의 피드백이 있었다면, 그들은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았을까? 물론, 그래도 그들에게 각자의 목표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면 스스로 다른 피할 길을 찾았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나, 중요한 건 '그들은 너무 어렸다'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며, 혼자 상처로 꽁꽁 끌어안고 지내왔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이렇게 투욱 하고 내뱉었다. 요즘 시대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기에,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하게 되었다.




지금은 2022년이다. 세 명의 자녀 중 두 명이 초등학생이다.  강산이 수차례 바뀌었다. 요즘엔 좋은 선생님들이 참 많다. 아이들 하나하나 헤아려주고, 사랑으로 또 교사의 사명감으로 지도해 주시는 좋은 선생님이 있어 참 다행이다. 오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며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자신을 받아줄 곳이 있고, 가르쳐줄 곳이 있으며 때때로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참 감사하다.




***'함께'의 힘을 빌려보세요,

<매일 15분 읽기 인증방>에서 책읽기 습관을 들이며,

함께 꿈을 꾸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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