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두 달이 우리에게 남긴 것

에필로그

by 아시시

"어머님은 왜 이렇게 아쉬워하세요?"


막내를 데리러 태권도에 갔을 때, 사범님이 웃으며 물었다. 다른 부모들은 개학을 반기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거다. 내 마음이 다 비치나 보다. 물론, 아이들이 있으면 일 처리 속도가 더디다. 때 되면 밥을 차리고, 치우고, 잘 놀다가 싸우고.. 그럼에도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게다가 이번 방학에는 특히 그랬다.




달라진 모습 #1


"이거, 아동학대 아니야?!"

방학 초, 아이가 던진 말이다. 저녁 설거지를 하기로 해놓고선, 미루고 미루다가 졸음이 쏟아질 시간이 되어 버린 거다. 잠이 오는 아이에게 책임감 문제를 운운하니, 반색했다.

방학 전에도 가끔 설거지를 시키긴 했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 가끔 '돕는 일'은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지만, 어떤 역할을 고정적으로 '책임지는 일'은 부담이 따른다. 아이들은 방학이 되어 놀 생각이 가득하다. 설거지 당번을, 그것도 매일 저녁해야하니, 시작이 쉽지는 않았다. 그랬던 아이가 방학이 끝나가니

"엄마, 이것만 마치고 설거지 꼭 할게요."

라고 말하고 이내 맡은 일을 해낸다. 변화는 거창하지 않다. 말 한마디로 드러난다.



달라진 모습 #2


집 안 곳곳에 물건이 널브러져 있다. 가만 보면, 내 물건은 없었다. 모두, 아이들과 남편 것이다. 치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서 매일같이 부아가 치밀었다.

'왜 나 혼자 정리를 반복하는 거지.'

한 명이 5인분의 몫을 치우려니, 매일 해도 티가 안 나는 집안일은 한없이 쌓여만 갔다. 너무 지친 날은 포기상태로 있기도 했는데, 지저분한 집안을 걷는 기분이 영 불편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집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인 찬스를 쓸 수도 있고, 돈 들여 업체에 정리정돈을 맡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 같은 습관으로 산다면 집은 금세 되돌아가고 만다.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집정리 잘하는 다른 가족으로 교체할 수가 없으니, 아이들 스스로 정리하는 구조를 만드는 수밖에. 쏟아지는 즉시 흩어지는 잔소리가 아니라, 책임감과 역할분담을 명확하게 해야 했다. 이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봄비가 내리면 세상에 온기가 돌기 시작하듯, 아이들의 입에서 집을 대하는 언어의 온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집 아닌 것 같아'

'왜 이렇게 깨끗해!'

현관도, 각자의 방도 마찬가지다. 빨래 개는 일도, 아이들에겐 별 거 아닌 일이 되었다.

공간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아이들의 마음가짐, 태도가 달라졌다.



달라진 모습 #3


나는 늘 지쳐있었다. 오전 내내 일하랴, 아이들 밥 삼시세끼 챙기랴, 밀리고 쌓인 수많은 집안일을 하랴. 40대가 되어 체력은 달리는데 집안일이 곱절이니, 저녁 설거지를 하며 숨이 차기도 여러 번 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아이들은 집안일을 '돕는' 게 아니라 가족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인다. 덕분에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고, 약간의 쉴 시간도 확보할 수 있었다. 대신, 삼시 세 끼는 여전히 내가 한다. 그게 우리 집 약속이다. 물론, 식탁 닦기, 수저 놓기, 반찬 꺼내기부터 식탁 정리는 '모두 함께' 한다. 가끔 아이들이 라면을 서비스로 내어주기도 한다.




긴 겨울방학이 끝났다. 아이들은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했다. 나도 출근준비를 하며 생각했다. 방학은 아이를 바꾸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이 서로 배우는 시간이라는 것을. 책임은 일방적인 관계에서 오지 않는다. 서로 대화로 정한 '약속'이 이행될 때 따라온다.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삶의 태도가 드러나는 공간이다. 이번 겨울, 별 거 아닌 것 같은 이 일들. 결코 쉽지 않았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고 실천했으니까.



방학 마무리 한 주는.. 매일 지락실보기+요리+친구들 초대하기




<덧붙이는 말: 이번 방학 아이들의 평가>


3호

1.점수: 백만 점!

2.가장 좋은 세 가지

: 함께 매일 도서관 간 것, 게임에 입문한 것, 맛있는 빵 먹은 것


2호

1.점수: 80점

2.가장 좋은 세 가지

: 동생과 게임을 시작한 것(30점), 가족이 함께 있던 기간(50점)

20점을 뺀 이유-1월 게임정지 당해서

3.다음 방학 땐: 학원, 공부 다 쉬고 놀 거야!


1호

1.점수: 50점

-논 걸로 치면 100점이지만 아쉬워서(농땡이를 너무 많이ㅠㅠ)

2.다음 방학 때엔?

-세세한 계획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틀(지켜야 할 것) 짜기

예) 요일별로 '이거(매일 아침 운동 등)'라도 하자!



- 이것으로 겨울방학 기록을 마칩니다.

그동안 관심주신 작가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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