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손, 그리고 발

by 젤라의 일기장

나는 사랑으로 자랐다. 엄마에게서 온 사랑과 외조부님께 받은 사랑은 그들의 손과 발을 통해 내게 전해졌다. 그분들은 손으로 날 키우고 발로 뛰며 돌봤다.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밤이면 내 엉덩이를 토닥이며 안심시켰던 할머니의 손을 지금도 기억한다. 눈을 감고 떠올리면 군침이 도는 엄마표 도넛과 만두는 바지런히 움직였던 엄마의 손에서 탄생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외조부님 댁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두 살 터울로 태어난 두 동생은 엄마에게 양보하고 나는 외조부님 댁에서 실컷 어리광 부리며 지내는 걸 좋아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첫 번째 손녀였던 내게 헌신하셨기에 나는 사랑을 독차지하는 호사를 누렸다. 정성스러운 간식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랑의 상징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호두를 까주시곤 했는데 노환으로 덜덜 떨리는 손을 다잡고 도구를 들고 힘을 줘 호두 껍데기를 까주셨다. 한껏 힘을 주면 떨리는 손이 더 요동치고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숨죽여 할아버지의 손에 눈을 떼지 않았다. 떨리는 손을 보면서 어린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쫙’ 호두 껍데기가 열리면 날름 호두를 입에 넣었다. 고소한 호두 맛과 함께 할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사랑으로 바뀐다. 덜덜 떨리던 손, 나는 ‘조건 없는 사랑’을 떠올리면 그 손을 떠올린다.


얼마 전부터 나는 종종 봉사활동을 한다. 집에서 가까운 기관으로 신청했는데 우연히 ‘노인 주간 보호 센터’였다. 그곳에서 나는 족욕 봉사를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발을 닦으며 어린 시절 받았던 ‘조건 없는 사랑’을 다시 떠올렸다. 날 키웠던 손과 발을 닦아 드리며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 드릴 수 있구나. 오히려 내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안에 외조부님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그 분들께 배운 것들 함께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무수한 시간에서 경험한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어 온 무형의 유산으로 이뤄졌다는 걸 중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니! 비록 만날 순 없어도 나는 그분들과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된 것이다.


이 끈은 세대와 세대를 잊는다. 이 끈으로 우리는 ‘우리’가 된다. 아무리 세대 간 갈등이니 차이니 해도 이 끈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형식 씨’와 ‘영숙씨’ 이야기는 우리 외조부님과 있었던 일 뿐만 아니라 봉사하면서 만난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이다. 내 안에 생생히 살아있는 내려 전해오는 사랑의 끈을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끈을 알아챈다면 우리는 결코 외롭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란 걸 알게 되니까. ‘조건 없는 사랑’이 우리 안에 있음을 알게 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