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시도 고양이와 그의 옆 모습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천박한 거리에서 턱시도 고양이를 스쳤다. 늦가을 어느 조용한 언덕 산책로에서 만났던 같은 모습의 고양이는 인연의 불씨가 되어 주기도 했었다.
오늘 만난 녀석은, 먹고 사느라 바빴던 오늘 하루의 피로를 채 덜어내지 못한 채로, 불법 주차된 승용차 아래를 관통하며 느린 걸음으로 어슬렁거렸다.
척박한 환경에서 하루를 연명하는 꼬질꼬질한 턱시도 고양이나, 9시 1분도 아닌 9시 00분 33초에 도착했다고 반차를 강제로 까인 나나, 이 거리에 우리를 놓은 망할 신의 언어를 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단 한 마디도 반문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회사 앞을 쌩쌩 지나는 덤프 트럭 앞에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단 1초라도 들었다면 나는 아직 괜찮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는 괜찮은 것은, 아무리 눈물이 나도 그의 옆 모습 뒤로 굳게 잠긴 대화창을 해제하거나 통화 버튼을 누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는 것, 그 정도 아닐까.
우리나라에도 정신과 응급실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으면서도, 그래 거기에 있었다면 나란 인간은 벌써 총기 사고로 죽었겠지,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데 위안을 삼으며.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이 지경이 되어서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