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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Nov 06. 2019

추상 기록

본질을 꿰뚫는 추상화의 매력


추상 작업을 10년이 넘도록 지속해 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대상의 외형에 얽매이지 않고 직관적으로 탐구함으로써 보다 대상의 본질에 가까운 표현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형태를 풀어헤침으로써 오히려 직관을 정교히 기록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Nightscape in the Universe, 캔버스에 아크릴, 72.7×90.9cm, 2010


'Nightscape in the Universe'에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도시의 야경을 우주로 가져다 놓았다. 도시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과 시간의 흐름이 도시의 내면에 기록된다고 가정하고, 그 내면적 이미지는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변화할까, 추론해 본 것이다. 여러 전시를 거치며 몇 번, 판매의 유혹이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중요한 작품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소장할 예정이다. 


이 추상 작업은 2012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GIAF 청년작가 시선전으로 선보였던 작품이기도 하다. (간략한 공간 스케치 링크를 첨부한다.)



또한 이 작품을 계기로 독일의 한 아티스트 레지던시 공모에 선정되어 독일 최북단 국경지역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Mecklenburg-Vorpommern) 주 퀼룽스본(Kühlungsborn)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비롯, 지역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그곳의 잿빛 바다, 폭풍우와 눈보라가 녹아들어 의도치 않게 어두운 작업들로 귀결되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황량한 발트해 연안, 퀼룽스본
퀼룽스본 메클렌부르크 인스피리엇 (KMI) 레지던시 기간 중 진행한 2회 차 전시



도시의 이면이나 괴로운 한 사람의 심연, 혹은 사랑 같은 보이지 않는 개념을 비롯, 겉으로 드러나는 형체는 있으나 아무도 명확히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내면의 성질 같은 것들은 이를 나타내기 위해 짜인 언어로도, 또 그림으로도, 영상으로도, 음악으로도 100% 포착될 수는 없다. 다만 이를 표현하려는 다양한 시도의 결과물들이 모여 하나의 숲을 이루면 그 시대에 통용되던 이 개념은 이런 성질의 것이었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료화면에는 남겨지지 못할, 꼭 담아야만 하는 어떤 것들을 찾고 또 기록하는 것이 즐겁고, 그에 형언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 


요즘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작품 활동에 매진하지 못하고 있지만 삶을 일구면서 켜켜이 쌓인 소재들을 재해석하고 그에 몰입할 수 있는 기간이 다시 주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런 취미 하나쯤 있으면 좋죠. 


우선은 이런 말들에 동요하지 않아야 할 것이고, 굳이 이해를 구하려는 불필요한 설명도 배제해야 할 것이다. 회사에 다닐 능력이 없어서, 혹은 게을러서 직장 생활을 못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무언의 압박은 이미 지난 7년으로 충분히 불식시킨 것 같다. 내가 할 일을 하고, 앞으로 할 것들을 구상하며 남은 생채기를 떨구고 나면 다시 한 바탕 뛸 여력이 생길 것이다. 


나 자신에 관한 제삼자적 성찰과 함께 현실의 문제와 관념의 문제를 분리하려는 노력을 지속한다면 삶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서 한결 수월한 단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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