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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Mar 05. 2016

빗속, 회상과 현실

참았다 쏟아내듯

비를 맞던 그 항구에서.


쏟아지는 빗속에서 주행시험을 치른다.


미루고 미루던 20대의 과제들.

의사가 웬만하면 하지 말라던 운전부터 당장 업무 때문에 필요해졌고, 친구들이 아이와 배우자를 위해 애쓰는 지금에서야 정착에의 의지 같은 것을 겨우겨우 두부만치 굳혀본다.


내가 가장 자유로웠던 5년 전 그 항구에서, 나는 그 자유의 의미를 다 알지 못한 채 그곳에서의 생활 전반을 괴로워했던 것 같다. 재와 은이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발트해의 매서운 겨울 파도에, 강렬한 색도 형태도 포말로 부서져 내렸으니.

허나 그럼으로써 실은 나도 조금씩 깎이며 다듬어지고 있었던 것을.


발트해의 파도, 캔버스에 아크릴, 2011


오늘은 또 무엇일까.

요즘 들어 하루는 내게 일주일 같은, 또 일 년 같은 무게로 온몸을 관통하는데.


쉼조차 작가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기간이라 열변을 토하다가도 방구석에서 홀로 그림 그려 무엇하느냐 관조하는 선배의 말이 빗물 같다.


굳어가는 재료들을 다시 창가에 두고, 손짓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던 그때보다 의미 있는 오늘을 그리고 싶다.


붓과 펜을 놓은지 3년.


나는 이제 더 해체되었고,

해서, 더 따스해지고 싶고

그렇게, 또 다른 제형으로 단단해지고 싶다.


지금 시각 오후 2시 50분. 동승자들의 주행 시험까지 모두 끝이 났다.


합격이다.

이제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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