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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Dec 21. 2020

2015년 12월 6일

5년 묵은 작가 노트 - 작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


나는 이미 널리 알려지고 각광받는 대상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다.

강제성을 띤 평론이라든가 추앙에 가까운 행위들로 단단히 둘러싸인 대상이라면 더더욱.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라면 어떠한 수식 없이도 스스로 빛을 낼 것이며 모든 시대적 무대장치가 낡아 사그라진 시점에도 동일하게 작용할 것이다. 애초에 조명은 필요치 않으므로.

넘치는 스포트라이트는 본래의 색을 알아보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어떤 예술이든 철학이든 그 만들어진 결과물, 혹은 그로 인한 업적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일말의 허영심도 없이 순수하게 살다 간 인생 그 자체가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산 인생이 빚은 보석이라면, 그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내 삶의 절실한 순간, 내 안에 흘러들어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필연이라 생각한다.


위대하다, 천재적이다 라는 말은 저들을 나타내기에 얼마나 비루하기 짝이 없는 표현인가.

그 본연의 가치에 비한다면 단조롭고 식상하며 성의 없는 미사여구에 불과한 것을.

게다가 이러한 말들을 숱하게 던지는 사람들의 심리 저변에는 저들의 이름을 발판으로 삼아 스스로를 지성인으로 분류하고픈 욕망이 있지는 않은지. 물론 이미 중독된 사람들은 자기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불과 몇 주 전까지 나는 완성되지 않은 채로 부풀려져 종횡무진하는 주체들에 분개하며 제발 내 눈과 귀에 부딪혀오지 않기를 바라고 바랐다.


그러나 실로 사랑스러운 현자와의 차 한 잔으로, 나의 분노가 얼마나 쓰잘머리 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또한 그와 같은 20세기를 나누었다는 것에—때로는 대중영화를 보며 답답함을 삭이기도 하는 일상을 공유했다는 것에—안도하기도 하였다.

나는 결국 나 자신으로 완성형이 되어 삶을 마무리하면 되는 것이다.

이목에 상관없이 완성된 가치를 남기면 되는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허영이며, 그것은 실제의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는 것이다.



그가 말해 주었다.



적지 않은 사람이 타인에게 칭찬받으려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기특하게 생각해주길 바란다.
더 한심하게는 심지어 위대한 인물이거나 존경해야 할 사람으로 보이길 바란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 비트겐슈타인 <문화와 가치> 中-



철강 재벌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음에도 모든 것을 양도하고 수도원의 정원사로, 시골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로 젊은 날을 보낸 사람. 그토록 소박한 일상을 살다 마지막 날엔 친구들을 기다리며, '모두에게 전해주세요. 나는 멋진 인생을 살았다고요.'라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람.  


존경이 아니라 사랑받도록.

이 말이 내내 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당신을 정복의 대상, 혹은 지성인의 치트키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산재한 21세기에도 그는 꿋꿋이 빛을 잃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절과 시대를 따라 떠올라 좌중을 압도할 것이다.



거장의 모든 고전 작품은 별이나 태양과 같다.
떠올라 우리를 비췄다가 다시 저물어 모습을 감춘다.
그러나 진정 위대한 작품이라면 사라진 채 끝나지 않는다.
계절이나 시대가 돌아오면 다시 우리 눈앞에 나타나 환한 빛을 발하며 압도한다.   

   - 비트겐슈타인 <문화와 가치> 中-



그리고, 알았다.

내가 말로 다 할 수 없어 답답했던 것들, 아무리 설명을 하려 해도 그것을 일종의 상상으로 치부하여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내던 사람들, 작업 방식에 있어서의 괴리감,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빨리 이뤄 내야 한다는 압박 등, 그 모든 것들은 애당초 걱정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뛰어난 재능만이 예술을 낳는 건 아니다.
재능 있는 사람은 이미 있는 것을 연마해 배치를 바꾸거나, 연구하고, 세련되게 다듬어 한층 아름답게 완성한다.
그 결과물은 마치 예술 작품처럼 우리를 황홀하게 매료시킨다.
그러나 예술 작품은 아니다.
예술은 온전히 새로 태어난 것이다.
예술가 자신이 그대로 표현된다.
따라서 예술 작품은 우리를 황홀하게 매료시키기보다, 감동시킨다.

- 비트겐슈타인 <문화와 가치> 中-  



내가 오늘로부터 걸어 나가 주어진 시간 안에 온전히 내 할 일을 이룬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그와 그에게 영감을 준 많은 존재들 덕분일 것이다.


당신만큼 사랑받아 마땅한 인생이 되어, 모쪼록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랐던 당신의 바람이 오늘 나로 이루어진 것처럼 훗날 영문 모를 고통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을 어느 맑은 사람에게 한 없는 위안을 안겨 주고 싶다.


이제 이루고 싶은 것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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