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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Sep 26. 2021

스마트폰

이게 현실에서 가능한 일인 줄은 모르겠다. 현실은 뭐고, 비현실은 뭔지. 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다. 삶은 현실이고, 죽음은 비현실인지. 할머니가 곁에 계셨던 과거는 정말 현실이었는지. 그럼 지금 할머니가 계신 그곳은, 천국은, 비현실의 공간인지. 아무튼. 내가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우리 할머니. 현실에서 뵈올까요. 꿈속에서나 만날까요.      


할머니가 계신 그곳에 가는 그날까지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잘 모르겠는 기이한 이 시간을 나는 덤덤히 매일 누구 앞에 엎드리는 것을 조건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매일 실패하지만 매일 살아가야 한다.      


십 년 전이다.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한 때가. 남자 친구가 아이폰을 써서 나도 아이폰을 샀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때가 아니라서. 스마트하지 않은 내가 스마트폰을 샀다고 하니 친구들이 놀려댔다. ‘그냥 너는 전화나 잘 받으라고’. 다 나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      


몇 년 후 스마트폰이 좀 더 대중화되었을 때, 할머니가 내 스마트폰을 이리 만져 보고, 저리 만져보셨다. 아마 할머니 친구분이 스마트폰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언제나 나의 할머니 었지만. 당시에는 마지막 할머니 모습보다 더 젊은 할머니였는데. 그때는 몰랐다. 할머니도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 한다는 걸. 할머니도 스마트폰이 갖고 싶을 수 있다는 걸. [정말] 몰랐다. 아마 그때는 돈도 없고 어린 학생이어서 그 마음을 알았다고 해도 사드릴 수 없었겠지만. [정말] 몰랐다. 그땐 [정말] 몰랐던 것이. 왜 지금은 [정말] 알 것 같을까.      


아무튼 나는, 슬프고 힘이 들 때, 나에게 조건 없는 사랑이 필요할 때, 한 상 크게 차려서 뜨뜻한 방으로 영차영차이고 지고 들어오셨던 할머니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보고 싶다. 할머니 집에 가서 잠만 처자고 오는데도 ‘자라고. 자라고’. 공부할 때는 ‘얼마나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냐고’. 일할 때는 ‘일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냐고’. 매일 잠만 자는 나에게 늘 자라고만하셨던 할머니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      






내 핸드폰 뒤에 달린 그립톡을 보고선, 엄마가 당신도 하나 달라고 하셨다. 핸드폰을 세워놓고 편안히 영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엄마는 깜놀.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설교도 듣고, 새롭게 하소서도 보고, 무용 영상도 보며 따라 하신단다. 젊은이들만 유튜브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가 된 엄마도 유튜브가 즐겁다. 잊지 않고 있다가 며칠 뒤 엄마 핸드폰 뒤에 그립톡을 붙여 드렸다. 엄마는 이제 물티슈를 뒤에 세워놓지 않고도 화면을 잘 볼 수 있다며 너무 좋아하셨다. 그리고 나는 오늘 엄마에게 선물할 큰 화면의 태블릿 피씨를 주문했다.     


정말 몰랐던 것을 정말 알게 될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갑자기 알게 된 이 마음을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마음의 크기에 비해 정말 작은, 몇 십만 원짜리 태블릿 피씨를 구입하고 스스로의 행복에 취한 내 마음으로 그냥 할머니를 한 번 더 생각했다. 엄마 드리려고 태블릿 피씨를 주문했다니. 막내 동생이 더 신났다. 엄마가 정말 좋아하겠다며. 도착할 때까지 비밀로 하자고. 자기가 엄마에게 블루투스 이어폰을 선물하겠단다. 천국 갈 때 스마트폰이나 사 가지고 갈까. 우리 할머니 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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