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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Oct 10. 2018

#129. 뷰티풀 데이즈

여기는부산입니다_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03


*저는 지금 부산영화제에 와 있습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Press Guest로 참가 중입니다. 영화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겠으나, 영화가 하고자 하는 지점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전달해볼까 합니다. 모든 자료는 전문 혹은 부분 발췌의 형태로 작성과 동시에 기사 자료 혹은 지면 에세이, 관련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01.


제 2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뷰티풀 데이즈>의 윤재호 감독은 이번 작품이 극 장편 데뷔작이지만, 경계에 놓인 이들의 삶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 단편부문 초청작인 <히치하이커>(2016) 속의 중년남자도, 프랑스와의 공동 제작으로 호평 받은 바 있는 다큐멘터리 <마담 B>(2016)의 여성도 모두 분단이라는 경계에 서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감독에게 있어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의 모습은 단순히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성을 갖고 자신의 삶을 이겨내는 존재임과 동시에 희망을 이끌어내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의 첫 번째 장편 영화 <뷰티풀 데이즈>는 자신의 지난 작품이었던 <마담 B>의 소재를 차용한 작품이다.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 다큐멘터리에서는 다룰 수 없었던 지점의 이야기들과 자신이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질문과 의미들을 극 영화 속에서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기자 회견을 통해 밝힌 바 있다. 그 동안 감독이 관심을 가져왔던 지점의 이야기들이 극 영화 속으로도 모두 함께 이식되어 온 것이다.


02.


영화는 중국의 조선족 대학생 젠첸(장동윤 역)이 죽음을 앞둔 아버지(오광록 역)의 부탁으로 오래 전 집을 떠난 엄마(이나영 역)를 찾아 한국으로 떠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14년 만에 나타난 아들을 보고도 반가운 내색조차 없는 엄마는 한국에서 술집을 운영하며 어떤 남자(서현우 역)와 동거 중이고, 이 모습을 본 젠첸은 큰 실망에 빠진다. 하지만, 엄마가 건넨 일기장 속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삶을 감내해야 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탈북 여성으로써 그녀가 받아야 했던 고통에 대해 말이다.


영화 <뷰티풀 데이즈>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 두 지점의 이야기로 나뉜다. 한국에 도착한 젠첸이 엄마의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지점까지의 이야기가 전반부의 내용이며, 엄마의 일기장을 통해 그녀의 과거에 대해 찬찬히 되짚어 나가는 부분의 이야기가 후반부의 내용이다. 두 지점의 이야기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이질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상호 보완적이다. 전반부에서 채워지지 않았던 이야기 속의 여백들이 후반부 엄마의 일기장 속 기억들로 인해 채워지기 시작한다.



03.


영화의 전반부 내용은 대부분 아들 젠첸의 눈을 통해 그려지고 있지만 그 시선의 중심에는 엄마의 삶이 놓여있다. 제 3자의 눈을 통해 경계에 놓여있는 인물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때때로 효과적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잔혹하고 무력한 삶을 직접 이야기하는 것보다 조금 더 객관적이며 덜 감성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관객들을 울리게 할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엄마가 살아온 인생을 통해 그녀의 선택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작품 속 엄마의 모습은 극 영화 속 인물의 모습이기 이전에 아직도 누군가의 삶일 것이니 말이다.


작품 속 제 3자의 시선이 하는 역할은 하나 더 있다. 우리는 언제나 타인의 상황보다 자신의 상황에 더욱 깊게 몰입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일이다. 젠첸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더러운 년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어디에서부터 그 말이 튀어나왔는지는 자신도 모르는 듯 하다. 그녀가 다른 남자들에게 술을 파는 것으로부터인지, 혹은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사는 것으로부터인지 말이다. 근원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엄마가 아닌 그녀의 남자에게로 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일기장을 보기 전까지 젠첸의 시선과 행동은 엄마를 더욱 소외시키는 도구가 될 뿐이다.


04.


후반부의 내용을 통해 엄마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고, 그 내용이 전반부의 플롯들을 설명해내면서 엄마의 삶에 대한 내러티브는 더욱 강화되고, 더 나아가 아들과 엄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확장되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밝혀지는 젠첸의 아버지와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앞선 젠첸의 행위와 정확히 겹쳐지며 벗어날 수도 없이 끊임없이 반복되기만 하는 엄마의 삶을 암시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 그녀를 찾아 온 남편의 모습과 아들의 모습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 이는 탈북 브로커인 황 사장과의 끈질긴 악연과 더불어 그녀가 현실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더욱 옥죄어 오는 탈북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체득하는 계기가 되며, 엄마로서는 자신을 찾아온 젠첸을 다시 돌려보내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05.


영화는 전체적으로 건조한 편에 속한다. 극도로 자제한 것처럼 느껴지는 인물들의 대사와 간결하지만 무게감이 느껴지는 연출과 편집, 한번 시작한 플롯은 중간에 놓치는 법이 없이 확실이 끝맺음을 하는 감독의 정확한 구성은 마치 영화 속 경계에 놓인 이들의 모습을 영화 자체로 표현하고 있는 듯 보일 정도다. 영화의 전체적인 스타일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러한 설정을 스크린으로 옮겨다 놓는 것은 배우들의 몫이며, 작품 속 그들의 모습은 상당히 안정적이다. 신예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 장동윤의 연기는 물론, <하울링>(2011) 이후 6년만의 복귀작인 배우 이나영 역시 인상적인 모습. 영화의 전체적인 틀에서 조금도 벗어남이 없이 그 속을 가득 채워 몰입을 이끌어낸다.


06.


뷰티풀 데이즈. 이 영화의 타이틀은 종반에 가서야 그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동안 감독이 가슴 속에 품어왔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경계인들이 갖고 있는 삶의 태도들이 영화 속 인물들의 삶 속에도 그대로 묻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것은 이 영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 바깥 세상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러닝타임 속 장면들이 어둡고 무겁게만 느껴졌을 관객들도 그 어둠 속에 작은 희망과 같은 심지를 하나씩 안고 영화관을 떠날 수 있게 될 것만 같다.


자신의 삶을 오롯이 그릴 수 없었던 탈북 여성의 삶 이면에, 끊어진 줄만 알았던 뿌리를 다시 이어내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엄마라는 자신의 근원을 향해 끊임없이 갈구했던 아들의 마음일까? 그렇지 않으면, 그림자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제 뿌리라도 성히 자라기만을 바라는 어미의 마음일까? 얼마나 단단한 마음을 가지면, 그 베어진 뿌리를 다시 이어낼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지독한, 간절한 그리움일까? 한 인간의 삶에 숨이 트인 무엇을 담는다는 것이 이리도 저린 일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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