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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Oct 11. 2018

#130. 돌멩이

여기는부산입니다_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04


*저는 지금 부산영화제에 와 있습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Press Guest로 참가 중입니다. 영화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겠으나, 영화가 하고자 하는 지점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전달해볼까 합니다. 모든 자료는 전문 혹은 부분 발췌의 형태로 작성과 동시에 기사 자료 혹은 지면 에세이, 관련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01.


지적장애인 석구(김대명 역)는 순박한 청년이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낸다. 마을 성당의 신부(김의성 역)는 그런 석구를 제 자식처럼 챙긴다. 지능은 조금 떨어지지만 마음만큼은 착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14살 소녀 은지(전채은 역)가 이 마을에 찾아온다.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 왔다고 한다. 마을의 쉼터에 머물며 석구와 친구가 되어가던 어느 날, 석구의 정미소에서 석구와 은지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김정식 감독의 영화 <돌멩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수 많은 문제들을 속에 담고 있는 작품이다. 지적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과거 유사한 작품들 <오아시스>, <맨발의 기봉이>, <그것만이 내 세상>과 같은 작품들을 떠올릴 법 하지만, 영화가 갖고 있는 결은 완전히 다르다. 전반적으로 밝게 그려지는 오프닝의 장면들은 모두 후반부에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표현하면 그 차이가 조금은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02.


조용하고 행복한 작은 마을에 외지인의 등장이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오는 플롯은 다양한 작품에서 종종 활용되고 있다. 그 파장이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경우가 많기에 주로 어두운 영화, 스릴러나 호러와 같은 장르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작품의 경우도 마찬가지. 외부인인 은지와 내지인인 석구는 성추행을 의심받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이 사건은 마을 전체에, 특히 석구를 아끼는 신부와 은지가 머물던 쉼터의 김 선생(송윤아 역)의 첨예한 대립으로 이어진다.



03.


그 이후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사건의 당사자인 석구와 은지는 정작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데, 주변 인물들, 특히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진행되는 모습이다. 오히려 석구와 은지는 서로에 대한 굳건한 우정과 믿음을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 선생과 신부를 비롯한 어른들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점이 바로 이 작품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딜레마다. 자신의 믿음만을 맹목하는 듯 보이지만, 그 믿음에 대한 나름의 타당성이 모두 주어지고 있다. 누구나가 이 작품 속 인물들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행동해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석구는 모든 비난과 억울함을 뒤집어쓰게 된다.


04.


영화의 전반부에서 석구에게 살갑게 대하던 마을 사람들이 사건 이후 그에게서 모두 등을 돌리는 모습은 서늘한 감정이 되어 관객들의 마음에 스며든다.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석구는 원래 정해져 있던 자신의 삶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자신을 제대로 변호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그는 마지막에 이르러 단 한 마디만 내뱉을 뿐이다. ‘신부님은 나 믿어요?” 라고.


감독 역시 굳이 특별한 장치를 만들거나 상황을 끼워 넣어 석구를 변호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장면들을 통해 석구의 인간성에 대한 근거들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지적장애인이기에 많은 말을 하지 못하는 석구이지만, 그의 행동을 통해 관객들이 그에 대한 믿음을 쌓을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마련해 두었다는 뜻이다. 은지가 처음 마을로 들어와 도둑으로 의심받을 때, 그 의심의 화살을 던진 것은 누구였으며, 또 그런 은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것은 누구였는지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충분하다.



05.


이 영화 속에 현실을 관통하는 수 많은 문제들이 표현되고 있다고 앞서 말했지만, 그 모든 문제들에는 ‘믿음의 문제’라는 공통된 지점이 존재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 중심을 두고 판단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가장 먼저 믿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이 영화의 기저에도 깔려있는 것이다. 신부와 김 선생의 대립 역시 여기에서 기인하고,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부와 김 선생, 누구의 믿음이 옳은 것인가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김 선생에게는 김 선생 나름대로 석구를 의심할만한 이유가 분명히 제시되고 있고, 신부에게는 또 신부대로 석구를 믿을만한 이유가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런 믿음 이전에 한 사람을 무조건적인 죄인으로 몰아가는 가혹한 선입견을 비판한다. 은지의 엄마와 은지의 새 아빠에게는 아동 학대의 숱한 근거들이 제시되지만, 그 누구도 의심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무겁게 느껴질 뿐이다.


06.


이 영화 <돌멩이>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따로 있는 것 같다. 계속되는 석구에 대한 오해와 비난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충분한데도 어떤 게 진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과 무서울 때마다 좋은 기억이 아닌 나쁜 기억들을 선택적으로 지워나가는데도 은지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 던진 돌멩이로 인해 번진 파장 하나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파장 하나쯤은 모두에게, 아니 이 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파장들이 뒤섞여 서로를 아프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영화 속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관객들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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