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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Oct 13. 2018

#131. 블레이즈

여기는부산입니다_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05

*저는 지금 부산영화제에 와 있습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Press Guest로 참가 중입니다. 영화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겠으나, 영화가 하고자 하는 지점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전달해볼까 합니다. 모든 자료는 전문 혹은 부분 발췌의 형태로 작성과 동시에 기사 자료 혹은 지면 에세이, 관련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01.


많은 사람들이 <비포 시리즈>의 주연 배우로 알고 있는 에단 호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연기는 물론, 책을 쓰기도 하고 시나리오 작업도 한다. 무대 연출가로 활동한 적도 있었고, 음악가이자 작곡가로도 재능을 보였다. 그런 그가 연출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리 없다. <첼시 호텔>(2001)과 <이토록 뜨거운 순간>(2007)을 통해 극장편 연출을 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이토록 뜨거운 순간>은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의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의외의 연출력을 선보이는 작품이다.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그의 재능이 엿보인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통해서는 다큐멘터리 작업에도 참여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영화 <블레이즈>는 에단 호크의 세 번째 연출작으로 한층 더 농익은 그의 섬세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컨트리 포크 음악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미국 텍사스 지역의 전설적인 작곡가 블레이즈 폴리(벤 딕키 역)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그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생전에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는지, 또 어떤 음악들을 만들어 남겼는지 되짚어 나간다.


02.


전체적으로 그가 출연했었던 <본 투 비 블루>(2015)와 유사한 모습이다. 그가 자신의 출연작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예술가 기질이 넘쳤던 두 사람, 쳇 베이커와 블레이즈 폴리의 닮아있는 삶의 과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작품이 주목하고 있는 삶의 어떤 지점, 그리고 성격, 분위기와 같은 부분들에는 분명 오버랩되는 지점이 있다. 쳇 베이커의 블루스와 플레이즈 폴리의 컨트리 음악에 같지만 다른 듯, 슬픔을 자아내는 감성이 깃들어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영화 속에서 만나게 되는 블레이즈 폴리 음악의 몇몇 곡들은 분명히 컨트리 음악의 잔잔하지만 흥겨운 리듬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도 삶의 무게와 아픔들이 스며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의 플롯과 하나의 곡이 번갈아 등장하는 구조 또한 과거 실존했던 뮤지션을 소재로 하는 전기물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양새다. 에단 호크 감독은 이 작품 <블레이즈>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방식으로 인물의 삶을 해석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스크린 위에 투영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함께 소화하고 나면, 블레이즈 폴리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관객들도 그의 삶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고, 그의 음악을 찾아서 다시 듣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게끔 말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지향점이 아닐까.



03.


내러티브로 구분할 때 영화는 크게 세 지점으로 나뉘어진다. 오랫동안 그의 곁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연인 시빌 로젠(앨리아 쇼캣 역)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 부분 부분 토막 난 형태도 등장하기는 하나, 그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근원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또 하나. 마지막으로는 그의 삶과 그의 죽음이 주변에 미친 영향과 그가 요절하기 직전 마지막 밤에 대한 대한 이야기다. 세 내러티브 모두 블레이즈 폴리라는 뮤지션의 삶 전체에 녹아있는 요소들이기에 어느 지점에서 어느 지점까지라고 딱 구분할 수는 없겠으나,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쌓아나간다.


그의 성격을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아버지와 커피에 대한 일화를 언급하는 장면이다. 술과 커피를 좋아하던 자신의 아버지가 턱이 부서진 채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커피를 너무 마시고 싶어 관장을 하면서까지 카페인을 느끼고 좋아했었다고.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마다 겉으로는 호탕하게 웃지만 어쩐지 그 모습이 썩 유쾌해 보이지 않는다. 다른 장면들을 보더라도 그는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기 보다는 다른 이야기나 음악을 통해 에둘러 표현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시빌 로젠에게도 마찬가지. 넉넉치 못한 사정 때문에 함께 있을 수 없는 순간에도 그는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기다려 달라고 말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좋으니 나를 잊지만 말아달라는 모호한 표현을 전한다.


04.


그의 재능을 방해했던 단 한가지 문제는 성실하지 못했다는 것. 그는 자신이 그렇게 미워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며 술에 빠져 허송 세월을 보낸다. 앞서 이야기 했던 <본 투 비 블루>의 쳇 베이커와는 이 지점 또한 일정 부분 닮은 부분이 있다. 술을 마시고 폭력성을 드러내고,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이들의 믿음을 저버린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숱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진가를 다시 한번 드러내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쳇 베이커와 달리, 블레이즈 폴리의 삶은 그 모습 그대로 요절이라는 안타까운 비극을 맞이하고 말았다는 점일까. 그런 그의 곁에서 아낌없는 사랑을 보내는 시빌 로젠의 모습 또한 쳇 베이커 곁의 제인의 슬픔과 다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모든 것을 감내해내는 사랑. 양 쪽 모두가 아니라 어느 한 쪽만이.


05.


에단 호크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블레이즈 폴리의 삶을 영화화 하기로 한 이유가 자신에게는 분명히 있었다고 말한다. 예술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른 모든 작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셀럽이라 불리는 이들의 삶만이 스크린에 투영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생전에 거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 모를 음악가의 삶도 알려질 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작품 <블레이즈>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줬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가 이 작품을 연출하는 기간 동안, 이 작업과 동시에 제시 페레츠 감독의 <줄리엣, 네이키드>(2018)라는 작품에 주연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이야기 했던 그의 다재다능함과 동시에 동시 다발적으로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멀티 능력까지 갖춘 에단 호크. 앞으로 그가 보여줄 더 다양한 모습들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는 <비포 시리즈>, <보이후드>에서 에단 호크와 함께 했던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등장한다. 두 사람의 돈독한 관계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그의 등장은 매우 짧은 순간 이루어지지만, 그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이 작품의 재미를 더하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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