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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by YoungJun Jamie Jo Oct 28. 2018

#136. 창궐

인물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크리쳐 무비.


**넘버링 무비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01.


김성훈 감독이 자신의 첫 장편 영화인 <마이 리틀 히어로>(2013)의 다음 작품으로 <공조>(2017)를 선택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작품의 만듦새를 떠나서 그의 선택은 의외인 부분이 있었다. 뮤지컬 오디션 프로그램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성 짙은 작품에서 남북 공조 수사를 다룬 액션물로의 갑작스런 전환. 그런 선택을 하는 감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니, 이렇게 유난을 떨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 두 번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래서일까? 이 작품 <창궐>이 그의 다음 작품이 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과연 그가 좀비를 소재로 한 한국형 크리쳐 무비를 제대로 완성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동일한 감독이 소재나 장르의 전환을 시도할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판에 뛰어든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예외가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의 감독들은 자신이 강점으로 취할 수 있는 부분을 작품의 핵심에 그대로 배치해 둔 채로 변화를 시도한다. 최근 헐리우드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바로 그렇다. <위플래쉬>(2015), <라라랜드>(2016), 가장 최근의 <퍼스트맨>(2018)까지, 그는 새로운 작품을 연출할 때마다 장르도 소재도 모두 다른 설정을 활용하고 있다. 다만, 그의 작품 속에는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날 것 그대로의 감정과 심리, 관계에서 비롯되는 드라마가 언제나 중심이 되어 놓여있다. 달을 향해 첫 발을 내딛었던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를 담은 <퍼스트맨>을 보고 실망한 관객들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연출한 우주 드라마에 <그래비티>(2013)나 <인터스텔라>(2014)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김성훈 감독이 시도하는 변화 속에는 어떤 것들이 놓여있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인물의 성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02.


그 전에, ‘좀비’를 활용한 작품은 국내에서도 더 이상 그 소재만으로는 신선함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 말해야겠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이후 50여년 간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좀비를 가져다 썼나. 그 시절까지 갈 것도 없다. 이제는 그 변용도 엄청나게 다양해져서, <웜 바디스>(2013)와 같은 로맨스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것이 좀비다. 드라마 <워킹 데드>는 소재 하나로 시즌 9까지 내달리며 좀비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선보이고 있다. B급 장르를 대표하는 상징물 중에 빠지지 않는 것 또한 좀비라고 하니, 알게 모르게 우리는 수 많은 작품에서 좀비와 마주했던 것이다. –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백귀 역시 좀비의 변용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작품 <창궐>에서 일컬어지는 야귀 또한 동일한 변용의 다른 예시라 할 것이다. – 이제 중요한 것은, 좀비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와 어떤 역할을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1차원적이고 단순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서의 활용만으로는 큰 매력을 불러일으키기 힘들다.



03.


크리쳐 무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존재들 가운데 좀비를 소재로 선택 한만큼 이 작품은 외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2016)과 닮아 있다. 물론 이것은 누가 먼저 제작되었는가 하는 차원의 문제일 뿐 현재 좀비물에서 일반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범위를 벗어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 <월드 워 Z>(2013) 역시 그 범위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어마 무시한 수의 ‘떼’를 선택했을 뿐 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다. – 좀비의 특성이나 움직임, 행동의 표현법 등은 물론, 장소의 선택을 통한 장면의 활용 역시 마찬가지다. <부산행>의 열차 내 긴박한 장면들은 이 작품의 감옥 신으로 대체되고, 마찬가지로 차량기지의 ‘떼’ 장면 역시 연회장 신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다만 딱 한 가지. 다른 부분이 있다. <부산행> 연상호 감독이 좀비들로부터 살아남는, ‘생존’에 그 의미를 담아냈다면 <창궐>의 김성훈 감독은 좀비들로부터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사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작품 속 이청 대군(현빈 역)의 성장 드라마를 완성시킬 시작점과 끝점을 이어내는 고리가 되며 단순한 크리쳐 무비로 끝날 법 했던 이 영화 속 또 다른 이야기, 김성훈 감독이 지난 작품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이끌어내고자 했던 인물의 성장 스토리를 이번 작품에서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1) 위급한 상황에서 생존과 사수의 개념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모든 인류가 위협에 처한 상황이었던 <부산행>의 배경과 달리, 이 작품 <창궐>에서는 이청 대군이 마음만 먹으면 조선을 버리고 청으로 떠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생존이 아닌 사수의 개념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고 해석 가능하다.


04.


이 작품에서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성장의 핵심은 어린 시절 떠나온 조국에 지킬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그렇지 않음을 깨닫고, 그 무게를 이해해 나가는 지점에 있다. 더구나, 그 인물이 왕의 적자에게 주어지는 직위인 ‘대군’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은 자 아닌가. 처음에 그는 자신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김자준(장동건 역)에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자신의 형과는 달리 자신에게는 이 땅에 지킬 것이 없다는 것을 주지시킨다. 실제로 조선에서는 태어나기만 했을 뿐, 오롯이 청나라에서 자란 것이나 다름없는 그다. 갑자기 죽은 형의 유지를 받들고 유언을 따르는 일만 아니었다면 애초에 돌아올 일 따위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이청은 자신에게도 이 땅에 지켜야 할 것들이 있음을, 자신이 꼭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대군이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난 자신의 태생만으로도 지켜야 할 것이 있음을 깨달아 나간다. 그것은 곧, 군주로서의 역할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가 스스로 자각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어두운 시대를 끊고 새 나라의 군주가 될 자질이 있음을 넌지시 보여주는 장면들은 영화의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자신의 아버지, 왕의 앞에서 직언을 고하는 강직함은 물론, 결정적인 순간마다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내민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잡아내는 모습에서는 따뜻함과 박애정신, 애민정신까지도 모두 함께 느낄 수 있다. 아버지는 갖고 있지 못했던 것들을 자신들인 세자와 대군은 – 영화 속에서 세자(김태우 역)는 수하들은 물론 수하들의 가족들까지 김자준 무리의 모략에 휘말려 고초를 당하자 임금 앞에서 할복을 하고 만다. - 모두 나눠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릇은 이미 완성된 상태, 영화는 그 그릇에 재료를 채워넣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05.


단순히 ‘야귀’만으로 악의 세력을 구축하지 않고, 김자준이 좀비를 이용해 자신의 야욕을 도모한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설정이지만, 이 또한 이청 대군의 성장을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김자준이 흑화하여 야귀로 변하기까지, 그 지점의 고리가 다소 약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다만, 결국에는 인간이 도모할 수 없는 일을 도모하면서까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그가 왕좌를 향해 드러냈던 야욕의 갈구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 수 있게 만든다. 성장의 중심이 되는 이청의 입장에서도 단순히 존재로서의 위협뿐인 ‘야귀’를 막아내는 것보다는 체제의 전복을 시도하고자 했던 자의 욕망을 꺾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부분이 더 클 것이다. 왕인 아버지의 죽음을 야귀들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김자준을 막음으로서 그 정통성을 지켜내는 편이 더 큰 책임감을 지니게 만드는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06.


도성의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제물포로 돌아오는 대군의 모습을 통해 이 작품의 러닝타임 전체에 걸쳐 진행되어 온 성장 내러티브는 완성이 된다. 꼭 자신이 무언가 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 지켜야 하는 것들을 지킬 줄 알게 되는 것.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이제 더 이상 형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조선에 첫 발을 내딛던 그 유약한 인물이 아니다. 


대군을 중심으로 한 성장 플롯이 꼭 아니더라도, 이 작품은 균형감이 상당히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얼마 전 개봉한 <물괴>를 비롯해 최근 몇 년간 시도된 국내 크리쳐 무비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소재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매력과 연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매력이 적절히 잘 표현되고 있다. 소재와 장르의 특성 상 피할 도리가 없는 몇몇 장면의 클리셰와 한국 영화 특유의 후반부 감동 유발 구역은 어쩔 수 없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종사관의 마지막 대사는 가슴을 울리는 부분이 있다. – 이조차도 충분히 이겨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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