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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an 21. 2019

#141. 쿠르스크

평범한 구조 속 의외의 탄탄함을 가진 작품.


**넘버링 무비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01.


2000년 8월 12일, 러시아 해군 북방함대 소속 오스카급 핵잠수함 쿠르스크 함이 노르웨이 바렌츠 해에서 군사 훈련을 진행하던 도중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 발의 모의 어뢰를 발사할 예정이었던 이 잠수함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선체 내부로 초당 9만 리터의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후 추가적인 폭발과 함께 통제력을 잃은 채 108미터 해저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당시 잠수함 속에는 118명의 승조원이 탑승 중이었는데, 푸틴 대통령 예하 당시의 러시아 정부는 국방 기밀을 보호한다는 목적 아래 사고 발생 직후 48시간 동안 사고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침몰 사실이 러시아 정부나 언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의 언론을 통해 먼저 세계에 알려진 것도 그 때문. 사고 이틀 만에야 침몰 사실에 대해 인정한 러시아 정부였지만, 수 차례 인양 시도에도 생존자는 없었던 비극적인 역사가 되고 말았다. 이후 노르웨이 해군 구조대에 의해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가라앉은 잠수함의 승조원들이 사망한 원인이 질식이었으며 사고 이후 상당 시간을 생존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한다.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영화 <쿠르스크>는 앞서 설명한 쿠르스크 잠수함 사고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무어가 침몰한 잠수함 쿠르스크 호 안에서 생존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승조원들의 마지막 순간을 서술한 저서 <어 타임 투 다이, A Time To Die : The Untold Story Of The Kursk Tragedy>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02.


영화의 시작은 다른 재난 혹은 전쟁 영화의 구조적 흐름과 거의 유사하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영유하고 있는 단란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후 상황의 비극적 요소를 더욱 강화하려는 시도가 이 작품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진다. 사고에 직접 휘말리는 인물이 처하게 되는 상황의 위기와 긴박함만큼이나 그의 무사기환을 빌며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의 불안과 안타까움 또한 극의 서스펜스를 획득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영화의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미하일(마티아스 쇼에나에츠 역)의 아들 미샤와 그의 아내 타냐(레아 세이두 역)가 잉태하고 있는 아이, 결혼식 장면에서 등장하는 모든 해군 장병의 아내들이 해당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 <쿠르스크>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실제 쿠르스크 호 사건이 그려지는 중심 구간의 이야기와 그 구간 이전과 이후, 바깥에서 그려지는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기술적으로는 독립적으로 떨어뜨리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음과 동시에, 내용적으로는 이어가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의 연출은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마미>(2014)의 화면비 전환과 유사해 보이면서도 차이가 있다. <마미>의 화면비 전환이 인물의 심리를 증폭시키며 전환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면, 이 작품에서의 화면비 전환은 중심 내러티브의 경계를 화면 바깥의 기술적 요소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03.


영화의 시작과 함께 보여지는 화면비는 1.66 : 1의 비율이며, 이는 현재 영화 제작 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화면 비율 가운데 하나다. 쿠르스크 호의 출항과 함께 이 화면 비율은 아나몰픽 렌즈를 활용해 스코프 포맷(Scope Format)의 형태로 화면을 가로로 크게 넓히며 쿠르스크 호에 담긴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꺼내기 시작한다. 한편, 이 작품에서 1.66 : 1의 화면비가 의미하는 것은 쿠르스크 호의 바깥에 존재하는 인물들, 바다로 향한 이들의 생환을 기다려야 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잠수함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이 모두 종결된 후 육지로 돌아온 카메라가 다시 한 번 1.66 : 1의 비율로 그 후의 이야기를 비춰내는 까닭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와 같은 기술적인 분절적 시도가 이야기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는 두 가지 설정과 결합하며 더욱 선명한 체험적 요소를 – 화면의 전환과 함께 관객들은 각각의 상황에 따른 다른 심리를 설정할 기회를 갖게 된다. – 부여 받을 수 있게 만든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두 가지 설정은 아들 미샤의 존재와 미하일을 비롯한 해군 장병들이 갖고 있던 시계. 아들 미샤는 미하일을 각성하게 하는 존재이자 앞으로 국가를 이끌어 나갈 미래 세대의 상징으로, 술 몇 병을 구하기 위해 담보로 삼은 해군 장병들의 시계는 바다 사나이들의 의리와 결속력을 상징하는 요소로 여겨지게 된다.


04.


쿠르스크 호의 이야기로 넘어간 이후의 영화는 잠수함 내에서의 두 발의 어뢰 폭발 이후 살아남아 구조를 기다리는 23명의 생존자들의 내러티브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해저 108미터 아래에 유일하게 물이 차지 않은 폐쇄된 격실이 주는 공간적 제약과 또 한번의 사고 이후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하는 바닷물과 고갈되어가는 산소와 식량으로 인한 시간적 제약, 그리고 외부의 상황을 조금도 알 수 없는 단절된 상황의 제약이 재난 영화의 서스펜스를 이 작품 속에 그대로 이식해낸다. 정황적으로는 잠수함이라는 동일한 소재를 바탕으로 제작된 <U-571>(2000)의 분위기를 따르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칠레 산호세에서 발생한 탄광 사고를 그려낸 영화 <33>(2016)과 더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의 기로 바로 앞에서 어떻게든 생존해 내리라는 장병들의 모습은 끊임없는 좌절과 무력한 현실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데, 특히 미하일과 레오(조엘 바스만 역)가 탄약을 찾기 위해 8섹션으로 향하는 모습을 담은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미 바닷물이 가득 찬 8섹션을 숨을 참은 채 쉬지 않고 잠수해 목적을 달성해 내는 그 장면은 단순히 스크린 속 상황과 동일한 시간의 숨을 참아내는 것만으로도 주어진 상황의 압박감을 전달하기에 모자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처음과 함께 나온 아들 미샤의 잠수 능력을 측정하던 장면이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떠오르게 될 테니 말이다. 미하일 또한 그의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냈을 것이 자명하고, 그 시대의 러시아 해군 장병 가족들은 거의 대부분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대를 이어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05.


이 작품 <쿠르스크>에서 ‘대(代)를 이어 나간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생각보다 훨씬 더 상징적이며 거대하다. 현실에서도 그러하듯이, 현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영화 속에서도 현재를 안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현재의 세대만도 아니며, 과거의 세대만도 아니며, 미래의 세대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코 분절될 수 없는 세대의 모든 구성원들이 현재의 가치를 공유하고 서로 보듬을 때에야 지속적으로 안정된 현재를 영유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고, 자식이 부모를 존경하고 우러를 수 있는 가정과 사회를 이상적이라고 하는 까닭 또한 여기에 있다.


작품 속 미샤의 행동과 시선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형성되어 있다. 엄마 타냐를 따라 사고 대책 위원회를 따라다니게 되는 미샤는 국가의 기밀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잠수함 속 생존자들의 안전과 현재의 사실을 전복시키고 감추려는 군 관계자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을 감추고 의혹을 축소하려는 이들과 사실을 밝혀 자식과 남편을 살리려는 생존자 가족들의 충돌을 지켜보는 아이의 시선을 몇 번이나 주목하는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 영화의 말미에서, 그렇게 거짓을 일삼고 결국 모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과거 세대의 사과를 거절하는 미샤의 모습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세대 간의 갈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대(代)를 이어 나간다’는 말이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 상황을 직접 목격한 미샤의 미래뿐만이 아니다. 미하일의 아내인 타냐의 뱃속에 있는 아가의 미래 또한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을만한 사회적 경험이 아닌가.


06.


간략한 구조화를 위해 단순하게 세대의 차이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고를 대하는 이들의 모습은 충분히 다를 수 있고, 또 실제로도 다르게 행동되었다. 서방 국가에 자국의 핵잠수함과 관련된 자료 혹은 기술 정보를 노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생존자들을 외면하려던 국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생존만을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로 놓고 영국 해군 준장 러셀(콜린 퍼스 역)에게 구조 요청을 보냈던 그루친스키(페테르 시모니슈에크 역) 제독. 아직 끝나지 않은 냉전 시대의 상황 속에서도 적국으로 분류되던 러시아 해군 장병들을 살리기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영국 해군을 비롯한 많은 서방 국가들. – 이들은 사고 초기 도움을 거절하는 러시아 정부의 입장으로 인해 개입하지 못했으나 이후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진실을 밝히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항의의 의미로 페트렌코 제독(막스 폰 시도우 역)의 악수를 거절한 미샤의 행동을 칭찬하며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의 유품 대신 자신의 시계를 내어주는 다른 해군 장교들의 모습까지도 모두 말이다.



07.


영화의 초반부에서 결혼식 장면이 진행되던 마을의 작은 교회는 이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이들의 마지막을 기리기 위한 장소가 된다. 동일한 장소에서 어떤 삶의 새로운 시작과 마지막을 함께 겪는 일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만, 동일한 선택과 결정이 어떤 순간에는 축복이 될 수도, 또 다른 순간에는 슬픔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어떤 선택과 결정에 앞서 무엇을 그 근거로 삼을 것인가 하는 일을 정하는 것은 분명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다만, 그 가치를 정하는 일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지켜내는 일 앞에서조차 흔들린다는 것이 슬프고 또 애석할 뿐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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