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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an 04. 2019

#140. 미스터 스마일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마지막 모습을.


**넘버링 무비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01.


지금에야 배우가 연출을 하기도 하고 감독이 직접 연기를 하기도 하는 등 서로의 분야를 넘나드는 일이 빈번하지만, 과거에는 그 경계가 명확했던 때도 있었다. 재능의 문제라기 보다는 서로의 영역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탓이 컸다.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고 감독은 현장의 상황을 통제하는 역할로 말이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그 경계를 성공적으로 무너뜨린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첫 시작은 배우였다. 연극 무대와 브라운관을 통해 연기 경력을 시작한 레드포드는 1960년대 초반 영화 <워 헌트>의 작은 역할로 스크린 데뷔를 하게 된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 작품은 조이 로이 힐 감독의 <내일을 향해 쏴라>였으며, 그는 이 작품의 더 선댄스 키드 역으로 흥행의 성공을 맛보게 된다. 이후 그의 삶은 매우 순조로웠으며 <스팅>, <아웃 오브 아프리카>, <은밀한 유횩> 등의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또한 연기자의 삶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의 삶도 성공적으로 걸었다. 그 도전은 결코 쉽지 않았는데,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수상할 수 있게 해준 <보통 사람들>은 그가 양쪽 모두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해줬다. 영화를 가까이 하지 않는 이들 또한 한 번 정도는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흐르는 강물처럼> 역시 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며, <퀴즈 쇼>, <호스 위스퍼러> 등의 작품들로 찬사를 받는다.


02.


‘절대적인 것은 없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이것이 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영화 <미스터 스마일>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배우로 출연하는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화 산업 안팎에서 수많은 족적을 남겨온 그가 영화 팬들과 안녕을 고하기에 완벽한 작품이라고 언급하면서 관심이 커졌다. 최근 <고스트 스토리>를 통해 사랑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매혹적으로 풀어낸 데이빗 로워리 감독이 연출을 맡게 된 것 또한 인상적. 6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경계와 한계를 무너뜨리며 커리어를 쌓아온 거장의 마지막 걸음을 이제 막 걸음을 걷기 시작한 재능 있는 감독이 배웅한다는 것 역시 작품에 대한 또 다른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 역시, 대부분 사실이다(This Story, also, is mostly true)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이 영화 <미스터 스마일>은 18번이나 탈옥에 성공하며 70대가 넘어서까지 은행을 털었다는 포레스트 터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강도 행각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1980년대의 이야기가 이 작품의 주된 내용. ‘은행을 털 때는 우아하고 품위 있게 그녀를 만날 때는 젠틀하고 스윗하게’ 라는 포스터의 문구가 보여주듯이 언제나 웃으며 은행을 털어갔다는 그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그려진다.



03.


어떤 복잡한 장치도 없이 스토리를 풀어내는 것에 집중하며 단순하게 진행되는 이 작품의 핵심은 그 속에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어떻게 녹여내는가 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전에 없이 젠틀한 방식으로 은행을 털어가는 주인공 포레스트 터커(로버트 레드퍼드 역)의 이율배반적인 설정. 영화 <타운>의 오프닝이나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루크(라이언 고슬링 역)의 모습과 같은, 그 동안 관객들이 봐왔던 은행 강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오프닝부터 은행을 터는 포레스트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그 장면이 이렇게 안온하고 편안할 수가 없다. 정말 은행을 터는 장면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감독이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작품 속에 녹여내고자 하는 지점은 크게 세 지점이다. 포레스트가 쥬얼(시시 스페이스 역)을 만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털어놓는 지점 하나와 마지막으로 체포될 당시 포레스트를 신고한 인물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것. 결과적으로 전자의 문제는 스토리 내에서 자연스럽게 해설이 되고 후자의 문제는 그렇지 않은 채로 의뭉스럽게 잔존하게 되지만, 두 문제 모두 믿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쪽보다는 경계 위에 존재하는 문제의 경험을 통해 관객들이 긴장감과 즐거움을 얻도록 하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리고 남는 하나는 그가 왜 은행을 터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것에 대한 문제다.


04.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포레스트의 모습 뒤에는 강도 행각 및 절도, 탈옥 등의 수많은 범죄 행위의 경험과 그 경험들 속에서 획득하게 된 처벌에 대한 무감각함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자신감은 정량적 척도인 횟수로 드러나는 것이라기 보다 정성적 척도인 태도, 즉 자신이 결심하는 대로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으로 드러나는데, 마지막 수감 장면에서 쥬얼(시시 스페이식 역)의 뜻에 따라 그가 탈옥을 포기하는 모습은 쥬얼에 대한 그의 감정과 함께 그런 자신감의 정점을 보여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많은 경험만으로 그의 캐릭터가 범죄에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짧은 연출이지만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장면이 있는데, 다음 목표가 될 은행을 앞에 두고 치밀한 계획과 동선 및 시간 체크를 하는 그의 모습이다. 영화 속에는 단 한번 등장하는 장면이지만 쥬얼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그의 모든 범죄에 동일한 과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여유에는 앞서 설명한 다양한 경험과 함께 치밀한 계획이 함께했던 것이다. 미국 전역에 알려질 정도로 그렇게 많은 은행들이 털렸다는 걸 알고도 계속해서 은행들이 털린 것 역시 – 이 작품의 마지막에는 출소한 그가 하루에 네 곳의 은행을 더 털었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 그의 계획이 얼마나 치밀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05.


이 영화에서 가장 의문스러운 인물은 사실 존 헌트(케이시 애플렉 역)라고 볼 수 있다. 등장하는 비중에 비해 그 역할이 너무도 미미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에서처럼 직접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도 아니고, 포레스트를 쫓는 과정에서 어떤 결정적 기여를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더욱 포레스트의 마지막 체포 과정에 기여하는 인물의 범주에 그를 놓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FBI에 대한 헌트의 반감과 포레스트가 직접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마지막 털이를 시작하기 전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도 충분한 의심을 할 수 있다.


그 범주에 들어가는 두 인물 가운데 쥬얼 또한 유력한 인물이다. 어떤 부분을 믿어야 할 지 알 수 없던 포레스트의 진짜 모습을 보조석 글로브 박스에서 발견한 뒤에 고뇌하던 모습과 경찰에 쫓기던 헌트가 돌아왔을 때 인기척도 내지 않던 모습, 그리고 경찰들이 그녀의 집을 향해 줄이어 향하던 장면 등은 쥬얼이 포레스트를 신고했다고 여기기에 충분한 장면들이다. 심지어 그녀는 그의 면회를 가서 탈옥을 하지 못하도록 설득하지 않나. 팔찌를 사러 갔을 때도 그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하지만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선을 긋던 그녀였다.


두 사람 가운데 어떤 인물이 그를 신고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이해하는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두 경계의 모호함을 이 정도까지 이끌어낸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시작부터 포레스트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과정을 통해 은행털이범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등의 영화 위의 내용 전후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얼마 전 영화 <독전>이 그랬듯이 이 영화 역시 과거나 미래의 사건보다는 현재의 상황에만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설계 속에서 이 지점에 대한 모호함은 의외로 단순함을 탈피시키고 볼륨을 키우는데 일조한다.


06.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 그가 왜 은행을 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문제.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의 시선은 그 문제에 대해 조금도 향해있지 않다. 대신 이 또한 추측해 볼 수 있는 약간의 근거를 던져 줄 뿐이다. 그에게 있어 절도란 생계의 문제가 아니라 생의 문제라던 대사가 귀에 남는다. 그는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권총을 들고 다니면서도 직접 사격을 실시한 적이 없는 인물이었고, 이제는 쥬얼과 함께 안정적인 삶을 이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법한 마지막 순간에도 은행으로 향했다. 늘 함께했던 가방을 들고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그는 행위 그 자체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탈옥 혹은 털이. 그것도 아니라면 양쪽 모두.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은행털이범 선댄스 키드가 50여 년이 지나 이 작품 <미스터 스마일>의 포레스트를 통해 다시 한 번 은행털이범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배우로 가장 널리 알리게 해 준 작품과 연기 경력의 마지막을 고할 작품이 그렇게 이어진다는 사실이 말이다. 물론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 역시 시대를 대표하던 미남 배우에서 주름이 자글거리는 노년의 신사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아니, 그 또한 어쩌면 그 옛날 선댄스 키드가 포레스트라는 인물의 모습으로 안녕을 고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로버트 레드포드,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남은 모든 매력을 남기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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