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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18. 2015

#031. 와일드

인생이라는 길을 쉼 없이 걸어야 한다는 것의 의미.

Title : Wild
Director : Jean-Marc Vallee
Main Cast : Reese Witherspoon
Running Time : 115 min
Release Date : 2015.01.22. (국내)




01.

영화 <금발이 너무해>에서 정말 해맑게 웃기만 하던 그녀, "리즈 위더스푼". 그녀는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워가는 동안 다작(多作)을 통해 이름을 알리는 방법보다는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작업을 통해 스스로의 만족감을 채워나가는 종류의 배우처럼 보였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본인만의 활발한 캐릭터를 갖고 자연스럽게 인기까지 얻어가고 있었고, 이 분야에서 크게 성공하겠다거나 화려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솔직히 그녀가 이런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완전히 속고 말았다.


02.

이 영화 <와일드>는 어머니라는 존재의 부재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한 여인이 스스로를 되찾기 위해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트래킹(PCT)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해 나가는 내용을 그린 영화다. 러닝타임이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 "셰릴"의 현재의 모습과 기억 속 과거를 넘나들며,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동안 관객들에게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작품.


03.

사실 이 영화에서 스토리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넣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앞서 밝혔듯이 이 영화가 제대로 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영화 속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녀의 인생을 함께 따라가면서 그 모습에 투영되는 각자의 인생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들을 다시금 정리하는 과정들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모든 관객들이 "쉐릴"의 이야기 속 경험들과 같은 상황을 경험하거나 동일한 감정을 공유할 수는 없겠지만, 누구나 자신이 걸어 온 길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들은  마음속에 묻어둔 채로 살아가고 있기에 결코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04.

위 3번과 같이 이 영화 <와일드>를 설명했던 이유는 이 작품의 메가폰을 잡은 "장 마크 발레" 감독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작품을 통해 그가 자신의 작품들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확실히 전작인 <카페 드 플로르>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거치면서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정확한 메시지와 감정을 전달하고자 하는 감독 중 하나로 변모해왔다. 그리고 이 작품 역시 그가 가진 이런 성향의 동일선상 위에 놓인 작품일 것이다.


05.

다만 한 가지, 이 작품에서 주로 이용되고 있는 연출이 관객으로 하여금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주로 현재의 흐름 위에서 장면 속 특정 오브제(Objet, Object) 혹은 상황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연출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전환이 너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과거에서 대과거 사이를 오고 가는 장면에서는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큰 집중력이 필요했으리라. 차라리 현재의 장면을 기준으로 과거의 이야기들은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관객들이 내용에 집중하는 데 조금 더 용이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06.

그리고 내가 페미니스트까지는 아니지만 이 영화 속에서 여성의 상대적 연약함을 이용한 성적 코드를 통해 긴장감을 유발하려는 장면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부분이었다. 물론 이 장면들을 통해 "셰릴"이라는 인물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기 방어적 여성성을 표현함으로써 방황하던 시기의 개방적이었던 그녀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역시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비단 이 작품에서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공식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이런 플롯들은 그 표현 방법에 있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07.

영화 속 "셰릴"이 자신의 어머니를 잃고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내는 것 또한 이 영화에서는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일 것이다. 그녀의 독백들을 통해 그녀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고, 그를 대신해 그녀의 인생을 떠받쳐 준 인물은 바로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손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런 인물(어머니)에게 마지막까지 그 어떤 보답도 해 줄 수 없었다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자책이 그녀를 망가뜨린 것이 아닐까.(그래서 그녀는 마지막 유언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살아 계실 때 부모님께 잘해드려'와 상통하는 감정이랄까?


08.

영화는 앞서 설명한 다양한 이유들 때문에 좋은 영화로 분류될만한 모습들을 갖추고 있지만 관객에 따라서는 전체적으로 조금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을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역시 이 작품은 조목조목 따지고 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영화이고, 그 흥미로움을 유발하는 원동력은 "리즈 위더스푼"이 보여주는 의외의 깊은 연기였던 것 같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웃음기 없이 혼잣말만 일삼던 "셰릴"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 "What's up"이란 노래를 부르면서 웃기 시작했던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걸어 온 그 길고 외로웠던 시간들 뒤에 숨겨져 있던, (어쩌면 이것은 우리들 각자가 짊어지고 살아야 할 인생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만나 순간을 공유해 나가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09.

글쎄 사실 이렇게 저렇게 글을 쓰기는 했지만 마지막까지도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정리하기란 쉽지가 않다. 다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결국 이 영화의 타이틀인 <Wild>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그녀가 "걸어온 길(Trekking)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걸어온 길(Life)"을 함축적으로 설명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까지도 말이다.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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