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큐레이션 상영 4 : 패잔병의 꿈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린 나는 믿었다. 염치없는 설렘으로 가득 찬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바라기만 하면 그 꿈이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게 되는 때가 있다. 그것의 무게는커녕, 자신이 꿈꾸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쉽게 이야기하고 갖고자 하는 때. 그런 모습을 나무라거나 말리는 사람도 그때는 없다. 정말로 무엇이든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 마음을 간직한 채로, 그 마음을 보살펴주는 이들 속에서 우리 모두는 자란다.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성장하는 말은 어떤 꿈으로부터는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꿈으로부터는 멀어지는 것이기도 해서다. 거대하기만 했던 꿈들은 그렇게 조금씩 깎이고 다듬어지며 혼자서도 간직할 수 있는 만큼의 크기로 모습을 바꿔간다. 그 과정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이탈한 모든 꿈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꿈도 있다. 이들은 대체로 스스로의 결심이나 포기로 인해 떨어져 나가지 않고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이탈하곤 한다. 개인이 가진 환경적인 부분이 그 꿈을 뒷받침할 수 없거나, 타고난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그 꿈을 버틸 정도로 강인하지 못하거나,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의지보다 더 큰 누군가의 의지로 인해 삼켜지기도 한다. 쉽게 납득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공통점. 그것이 꿈을, 꿈을 놓을 수밖에 없는 이를 슬프고 힘들게 만든다. 언제나 그렇다.
영화 <나는 피아노를 버렸다>에는 집안 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꿈을 좇을 수 없는 인물이 놓인다. 평생 피아니스트가 되기만을 꿈꾸며 살아온 수진(김별 분)이다. 가세가 기울어 내쫓기듯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는 그녀의 가족은 무엇이든 버려서라도 짐을 줄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덩치가 큰 수진의 피아노도 자유로울 수 없다. 꼭 부피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더 이상 뒷바라지를 해 줄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라도 피아노는 함께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좁은 골목 한편에 내던져진 피아노 곁을 쉽게 떠날 수 없는 수진의 등 뒤로 카메라의 안타까운 앵글 하나만이 맴돈다. 이제 떠나야 하는 부모와 함께 갈 수 없는 피아노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그녀의 마음이다.
수진은 이제 도서관 사서로 일한다. 책에 붙은 바코드를 읽는 ‘삐-‘ 하는 소리와 작은 키보드 소리만이 허락되는 장소다. 평생 음악을 해왔던, 소리가 울리는 공간에 존재하던 그녀에게는 낯선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여전히 복도의 안내판에 붙은 어느 피아니스트 연주회 포스터에 가 있지만, 지금 그녀가 있어야 하는 곳은 어쨌거나 이 장소다. ‘정숙’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써 붙은, 소음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엄격한 사서장(김시연 분)이 있는 도서관. 그나마 가족이 빌린 돈과 이자를 추심하기 위한 독촉 연락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것이 위안일까.
사실 이 작품에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수진의 심리가 반영되는 중요한 공간이다. 어떠한 소음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장소로서의 속성이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어 자신이 사랑했던 소리와 단절된 상태에 놓이게 된 수진의 상황과 유사성을 가진 것으로 표현되고 있어서다. 창문 틈 사이로 들려오는 외부의 피아노 소리가 창문을 닫는 것으로 차단되고, 꼬마 아이가 종이 위에 그려진 건반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소리는 사서장 선생님에 의해 제지를 당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수진은 이사를 떠나는 것으로 피아노와 멀어졌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 모든 것들이 피아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꿈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스스로 받아들이지는 못한 수진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고에 조금 튀어나온 책을 밀어 넣는 것만으로도 피아노 건반 소리가 들리는 듯하던 장면에서는 더욱 직접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아직 이루지 못한, 앞으로도 이룰 수 없을, 개인 연주회 무대를 떠올리는 수진의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도서관의 이름도 ‘꿈꾸는 도서관’이다.
“뭐야 너 잘리고 싶어? 오늘 안에 이거 다 치우고 가.”
상상만으로는 꿈에 닿을 수 없다.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한 잠깐의 상상은 금방 깨지고 만다.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데 현실은 조금의 양보도 없이 꿈과의 사이를 갈라서며 끼어든다. 손가락은 여전히 건반을 누르던 때를 잊지 못하는데, 꿈을 꾸던 소녀가 ‘정숙’의 공간에 갇히고만 것처럼 열 손가락 역시 허공을 맴도는 움직임밖에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빼앗기고 억압당할 때 막다른 곳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친다.
수진이 도서관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옛 동네로 향하는 것은 그래서다. 가슴 한쪽에 남은 꿈조각을 슬픔으로 감싼 채 두고 싶지 않으니까. 이때만큼은 현실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잠시나마 그 꿈의 근처에도 닿을 수가 없다. 버려두고 떠났던 골목의 피아노 앞에 앉은 그녀. 어떤 마음으로 그녀는 지금 자신의 꿈을 마주하고 있는 걸까.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마음일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이야길 하고 싶은 걸까. 내내 제자리를 찾지 못하던 그녀의 두 손이 여러 마음을 뒤로하고 건반 위에 놓이는 순간에 카메라는 눈을 감는다. 이 연주가 누구의 것도 아니라 오직 수진 하나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이.
아직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는 장면에서 어린아이가 책 한 권을 빌리는 모습이 하나 놓인다.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라는 제목의 책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본다면, 극 중 또래의 아이가 고를 법한 흔하고 흔한 아동 서적이다. (심지어 몇 권짜리 시리즈인지는 몰라도, 이 책에는 9권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손에 든 수진은 복잡한 표정으로 잠시 시선을 멈춘다. 아마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정확하게 알았음에도 지금 ‘무엇이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떠올렸으리라.
모두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딘가에 묻히는 꿈도 있고, 현실 앞에서 깨지고 무너지는 꿈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꿈의 잔해를 품 속에 안고 나아가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본 일이 있고, 그 모습으로부터 뜨겁게 불타오르지는 않지만 꺼지지 않는 열기를 느꼈다. 이 이야기 속 수진도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지금 당장은 잠시 내려놓아야 하지만 삶의 어느 마디에서 그 꿈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 골목에 수진의 피아노가 아직 놓여 있는 건, 언제든지 다시 되찾을 수 있는 꿈을 의미하는 것이라 믿어도 좋지 않을까.
한국 / 극영화 / 2023 / 17분 25초
감독 : 박건
출연 : 김별, 김시연, 신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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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리플레이 상영, 네 번째 큐레이션인 ‘패잔병의 꿈’의 한 작품입니다. 2024년 4월 1일부터 4월 15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 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