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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Dec 31. 2015

여기 그 자리에.

2015년을 보내며.



1. 혼자만의 세상을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글을 교류하기 시작한 게 불과 2년 전의 일입니다. 아직은 이 공간 [브런치]가 생겨나기 전의 이야기죠. 항상 마음에만 갖고 있다가 차일피일 미루던 일이었습니다. 옆 동네 N사의 블로그도 한 번 운영해 보려다 포기했었습니다. 영상도 들어가고 사진도 들어가고, 심지어는 직접 그린 만화들이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는 블로그란 공간에 글만 몇 줄 덜렁 남겨 놓는 게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블로그를 사용하는 지인들을 둘러보니 글만 장황하게 있는 블로그들은 귀찮아하더라구요. 뭔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지루하기도 하다구요. 하다못해 중간중간 사진이라도 몇 장 들어 가 있으면 덜한데, 애초에 저는 그런 '꾸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 하나를 통해 [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간을 소개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2. 아시다시피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SNS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 공간을 소개해 준 친구를 따라 영화 포스터를 몇 장 올리고 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인상 깊게 봤던 영화 포스터 하나와 그 감상을 짤막하게 50자 정도로 남겨 놓았는데, 그걸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겁니다. 그게 하루 이틀 쌓이게 되고, 더 많은 이야길 나누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사진 공유를 위해 태어난 그 공간 [인스타그램]에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야 평소에도 혼자 정리를 해 오던 부분들이었으니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그 공간은 "넘버링 무비"라는 이름을 달고 본격적으로 연재를 하게 되었고, 그런 제 글을 정기적으로 좋아해주는 분들도 생기게 됩니다. 어떤 분은 그런 저를 두고 '활자중독자'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죠. 행복했습니다.


3. 그런데 [인스타그램]에는 그런 '활자중독자'가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치명적인 구조적 단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의 사진에 2,000자 이상의 글을 써 넣을 수가 없다는 것이죠.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보통 10,000-15,000자 정도의 글을 두서 없이 쓰게 되는데, 그걸 정리하더라도 2,000자 이내로 뭔가를 압축하여 전달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정말 줄이고 줄여 2,000자 정도로 정리를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글들의 경우에는 Part를 나누어 같은 사진을 여러 장 올리더라도 글을 써 두곤 했었어요. 실제로 영화 <마마>의 경우에는 Part.5까지 글이 올라가 있습니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정말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게.


4. 그리고 지난 여름.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봄부터 준비해오던 출간 작업에 실패하고 약간의 방황을 겪고 있던 시기에 이 공간 [브런치]를 소개받게 됩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서비스였지만 이 공간이 추구하고 있는 지향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실제로 몇 번 쓰다보니 확실히 다른 플랫폼들에 비해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 역시 알게 되었죠. 참 반가웠습니다. 며칠 고민도 해 보지 않고 바로 작가 입주 신청을 했습니다. 3일 정도만에 계정이 만들어졌을 때의 행복. 아마 이 곳에서 글을 쓰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모두 느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플랫폼의 형태도 좋았지만 그런 물리적인 부분들을 떠나 [브런치 북 프로젝트]라는 프로젝트는 당시 고대하던 출간 작업에 실패하고 무너져 있던 제게는 개인적으로 커다란 동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타이밍이 어찌나 딱 맞아 떨어졌는지 큰 욕심이 저도 모르게 생기더라구요. 수수밭에 떨어진 심정이었기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손에 채이는 동아줄을 낚아챈 느낌이었어요. 실제로 저는 그 때부터 한 달여 정도를 열심히 활동했던 것 같습니다. 딱 한 달 정도..


5. 결과적으로 저는 [브런치 북 프로젝트]가 끝나기도 전에 제 스스로가 [브런치]를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브런치]를 만나기 전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2년 이상 마음을 주고 받았던 사람들에게 등을 돌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 한 번 만나지도 못한 사람들 때문에 그 기회를 놓쳤다고?'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그 공간에서 글을 쓰는 것을 멈추고 여기에서 쓴 글을 그 곳에 링크하는 형태를 시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인스타그램]이 하이퍼 링크 허용을 하지 않는 상태였고 중간에서 애매해져 버린 저도 아쉬움이, 그 곳의 사람들에게도 아쉬움이 생겨버렸죠. 그래서 또 한 번은 이 쪽도, 저 쪽도 모두 글을 쓰려고도 해 봤는데 그것까지는 차마 현실의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 때문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업로드 되는 글은 두 번이지만, 그 두 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개인적인 글을 써내야 했기 때문이죠.


6. 위의 이유도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제게 있었습니다. 욕심이 너무 과했어요. 이 곳 [브런치]가 처음 접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그 이전에 [인스타그램]에서는 2,000자 이하로 요약하는 작업에 익숙해져 있었으니 일정 기간 동안은 글에 힘을 빼고 익숙해지는 과정을 겪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그 때 조금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해서라도 꼭 올해가 지나기 전에 책을 출간하고 말겠다는 생각에 미쳐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글 내용보다는 형식적인 부분에 욕심을 부리게 되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글을 써 두고도 지우고 또 지우기를 몇 번씩이나 반복하는 절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욕심은 양적인 부분에까지 미치게 되어 하루에 한 개의 글도 제대로 써내지 못하면서 매거진(Magazine)은 세 개나 동시에 열어놓았죠. 지나고 생각해 보니 저도 평소에 보지 못한 제 모습을 그 때 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를 기점으로 미련없이 떠났습니다.


7. 사실 제가 좀 그렇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첫 시작이 굉장히 투박한 사람이고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 사람이 처음부터 온 몸에 힘이 꽉 들어간 채 본질적인 부분은 뒤로하고 다른 목적으로 글을 쓰려고 했으니 그 결과가 좋을 리가 없었을 겁니다. 아마 지금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가게 되더라도 저는 미련없이 그 시기의 [브런치]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 그리고 이 글을 통해 [브런치] 플랫폼에게는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시에 이 공간을 떠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조금 했었습니다. 생각보다 [브런치]라는 곳이 폐쇄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으며, 메인에 공개되는 특정 인물들에게 관심이 쏠리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그 때의 저는 단기간의 결과물에 눈이 돌아가 있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아니 비겁한 변명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8.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쩌면 [브런치]라는 공간은 글쟁이들이 글을 써 가는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느리지만 꾸준하게.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자신만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곳. 그리고 내가 나를 만날 수 있는 그런 모습..


9. 며칠 전부터 여기 이 공간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곳을 떠나면서 [브런치 북 프로젝트]가 끝이 나면 언젠가 다시 제 공간을 만들어 보리라 생각했었는데, 여러 작가분들의 책이 가시적인 성과를 알려오고 있는 이 시점이 바로 그 때가 아닌가 싶네요. 솔직히 2016년 새해부터 시작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만, 그 동안 '내일부터', '월요일부터' 같은 변명을 많이 했으니까요. 일단 기존에 있던 매거진들 중 [넘버링 무비]와 [에세이] 파트를 제외한 나머지 글들을 모두 분해시켜버리고, 새로운 매거진 [산문집 보통날]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10. 어제 일 때문에 전주를 다녀와서 여러가지 일을 정리하다보니 새벽에 두 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1231이라는 숫자가 0101이 된다고 해서 크게 바뀌는 것도 없을텐데 마음만큼은 그 어떤 순간보다 바빠져 버려서 그 동안 고개를 돌려 놓은 일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글도 바로 그런 일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쪼록 앞으로는 긴 호흡으로 차분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셨기를 바래요. 그리고 또 행복하시기를.

먼 길을 돌아 "여기 이 자리에" 다시 돌아 온 영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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