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Dec 21. 2015

무제 <2>

나도 내가 뭘 쓰는지 모르는 단편 소설.




2. 일요일 아침. 여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평소보다 더 부어보이는 기분에 괜히 얼굴을 거울에 바짝 붙이고는 턱 아래에서부터 양 볼을 밀어 올린다. 그런다고 이 얼굴이 변할 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몇 번을 밀어 올리던 여자는 이내 곧 포기한 듯 멈추고 샤워기를 틀었다. 이른 아침 냉기가 돌던 욕실에 뜨거운 김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유리에 하얀 김이 달라붙기 시작하자 여자는 좋은 향이 나는 샴푸로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지만 오늘 같이 고객을 만나는 날이면 늘 잊지 않았던 일이다. 너무 진하지 않은 색조 화장을 하고 머리도 빗었다. 커튼을 살짝 걷어 화창한 날씨가 될 것을 예감한 여자는 기분이 좋은 듯 현관문을 나섰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 뒤로 달콤한 향기가 남았다.


여자는 서구형 미인의 외모를 갖고 있었다. 키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얼굴이 작고 옷맵시가 매끈하게 떨어져 길거리를 돌아다닐 때면 남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남자들에게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었다. 거리 위를 지나다니는 여자들을 향해 그 음흉한 눈길만 날리는 녀석들 따위 어디 한 구석 제대로 쓸만한 구석이 없다는 걸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그녀다. 그리고 오늘은 일요일 아침부터 고객을 만나기로 되어 있는 하루일 뿐이었다. 별 볼 일 없는 남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꾸미고 나온 마음은 정말 조금도 없었다. 조금 일찍 나오기는 했지만 홍대입구역을 나와 K 매장이 보이자 여자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는 지금 도착했어요. 어디세요?"

"아 저도 이제 곧 도착합니다."

"어떤 옷을 입고 계시죠?"

"쥐색 면바지에 회색 니트. 구두를 신고 있어요."

"아. 저기 보이네요. 계단 올라오시는 분."


남자도 여자의 외모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날카로운 콧대를 가진 미남형 얼굴을 갖고 있었다. 남자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보수는 정확히 오후 12시에 주겠다며 오늘 하루 여자가 지켜야 할 것 세 가지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첫째. 어떤 질문도 하지 말 것.

둘째. 먼저 말 걸지 말 것.

셋째. 항상 곁에 머물러 있을 것.


여자는 그의 말을 들으며 조금씩 표정이 굳어졌다. 잘생긴 놈들은 얼굴값을 한다더니 이 놈이 딱 그 짝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전화로 이미 오늘 시간을 내어주기로 했고, 아침 내내 단장을 하고 나와 이 일을 굳이 파토낼 생각은 아니지만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뭐. 깔끔하고 명료한 인상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 쯤되니 예의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첫인상은 틀린 게 아닐까 싶다. 그가 보이지 않게 짧은 한 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이 남자 나한테 바라는 게 뭘까?'



작가의 이전글 무제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