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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Dec 19. 2015

무제 <1>

나도 내가 뭘 쓰는지 모르는 단편 소설.




1. 드르륵. 적막을 깨고 머리 맡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불 아래 파묻힌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드르륵. 또 한 번. 점점 더 묵직해지는 진동음에 잠시 뒤척이던 여자가 베게 위로 가느다란 팔을 뻗는다. 머리는 여전히 침대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새를 못 참고 또 한 번. 드르륵. 아 진짜. 짜증이 묻어나는 텁텁한 목소리와 함께 무거운 눈꺼풀을 떼고 여자는 전화를 들었다. 010으로 시작되는 누군가의 핸드폰이었지만 알 수는 없는 번호였다. 여자는 그제야 덮고 있던 이불을 제껴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그 번호를 뚫어져라 한참을 쳐다본 뒤에야 액정 위에서 빛나고 있던 푸른 동그라미를 오른쪽으로 밀어냈다.


"여보세요?"

"예, 저 혹시 S씨 핸드폰이 맞나요?"

"네 맞는데, 누구시죠?"

"아. 소개받고 전화 드렸습니다. 시간을 파신다고..."

"네 맞아요. 언제 얼마나 필요하시죠?"

"이번 주 일요일 오전 12시부터 오후 12시까지 괜찮은가요?"

"네 괜찮을 것 같네요. 성함이 어떻.."

"아 저기 그 전에.. 혹시 열두시간에 10만원도 가능한가요? 적은 건 알지만.. 대신 나머지 비용은 전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여자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 일을 시작하고 적어도 시간 당 이만 원 이상씩은 받아 온 그녀였다. 최근 이 일을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값이 조금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받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를 걸어 온 이 남자는 다짜고짜 가격부터 깎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어 한참을 머리를 굴리다가 그냥 그가 하자는대로 거래를 마무리 지었다. 평소에 비해 좀 적은 액수이기는 하지만 요즘 일거리가 많이 줄어들기도 했었으니까. 어차피 별 다른 약속도 없었으니 그냥 나가서 기분이나 좀 맞춰주고 시간이나 떼우다 들어올 작정이었다.


"그러면 어디서 만나면 될까요?"

"홍대입구역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네 그 날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별 다른 이야기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이런 경우 남자들은 드레스 코드라던가 좋아하는 향이라던가 여러 가지 요구들을 해 오는 게 보통이었다.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일 따위는 결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비용을 지불하는 입장에서는 대개 자신의 판타지를 채우려고 하는 욕구가 없지 않았다. 비슷한 일을 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시간을 사는 여자들 역시 별반 다를 건 없어 보였지만. 어쨌든 그는 그런 점에 있어서는 깔끔하고 명료했으며 예의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아침부터 잠을 깨우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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