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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Nov 21. 2015

핸드폰.

첫사랑은 한 번 뿐인 것일까.



1. 최근에 핸드폰을 바꿨다. 살면서 네 번째 핸드폰이 마련된 순간이다. 물건들을 의외로 깔끔하게 쓰는 성격인 나는 이번에도 이전에 쓰던 '갤럭시 4'를 2년 6개월만에 보냈다. 사실 더 써도 될 정도로 기능엔 문제가 없었는데 충전한 지 5시간만에 밥을 달라던 배터리를 이길 수는 없었다. 새로운 핸드폰에 대한(혹은 새로운 물건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기란 어렵다. 이것 저것 검색도 해 보고, 오랜만의 교체라 대리점도 몇 군데 둘러봤다. 그리고 선택된 것은 '갤럭시 노트 5'. 그런데 기분이 묘하다. 막상 값을 치루고 나니 의외로 기쁘지가 않다. 아니 기쁜데 별로 안 기쁘다. 생애 첫 핸드폰을 샀을 때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건 기분이 나쁜거나 다름이 없다. 내가 이상해졌다.


2. 첫 핸드폰도 삼성에서 만든 종류였다. 벌써 10년도 넘어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6400' 뭐 이런 기종이었던 것 같은데 게임폰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던 슬라이드 폰이었다. 정작 그 핸드폰에 내장되어 있던 게임폰 특유의 슈팅게임보다는 붕어빵타이쿤을 더 열심히 했던 건 같지만. 처음 핸드폰을 시기 전에 내가 얼마나 애가 달아 있었는지는 모두 한 번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내 주변에 핸드폰이 없는 사람은 나 혼자라는 유서깊고 스케일 큰 뻥부터 시작해서, 괜히 TV에 핸드폰 광고만 나오면 소리를 크게 틀기도 하고. 엄마의 핸드폰을 빼앗아 만지작 거리면서 귀찮게 해보기도 하고. 그런 핸드폰이 손에 들어왔을 때! 그래 그 기분이 어땠을까. 집에 돌아오는 길로 평소엔 잘 읽지도 않는 기기 설명서를 거의 완독을 했던 것 같다. 어차피 다 쓸 기능도 아니면서. 처음이었으니까.


3. 대학에 들어가서 두 번째로 마련한 핸드폰인 '갤럭시 S1' 때까지도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다는 경험은 큰 충격을 줬었던 것 같다. 이건 횟수로 보면 두 번째지만, 슬라이드폰을 쓰고 지내던 촌뜨기 앞에 놓은 스마트폰은 더 이상 그냥 핸드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보면 그게 얼마나 대단할까? 하지만 모든 게 그렇듯이 당시의 스마트폰은 지금의 로봇 청소기 이상으로 신기한 물건이었다. 처음 전원버튼을 누르는데 찬란히 들려오는 음악과 화면 속에 짤랑거리며 퍼지는 은하수 모양의 쨍한 이미지. 그리고 Galaxy S 라는 로고는 며칠을 두고두고 감상할만큼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평생을 삼성 핸드폰만 썼구나. 어쨌든. 그런데 왜 나의 '갤럭시 노트 5'는 그 때의 그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걸까.


4. 이 모습을 두고 '익숙함'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정의 내리고 싶지는 않다. '상대적이다'라는 표현으로 어물쩡하게 넘어가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느끼는 감정의 양은 분명히 어디에선가 조금씩 새어나가고 있고, 이 감정이 더 이상 소실되지 않을 수 있게끔 뭔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감정의 손실은 단순히 앞서 이야기했던 어떤 물건이나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살아가며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감정들까지 잠식해가려 한다. 사랑이라는 두근거림까지도.


5. 사람들은 흔히 '첫사랑'을 이야기 할 때 단순히 '처음'이라는 횟수에 매몰되어 생애 처음 느꼈던 누군가에 대한 관심을 언급하곤 한다. 그게 초등학교의 일이었는지, 혹은 중학교 때의 일이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마치 지금은 세상 모든 여자들의 마음을 꾀어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는 듯 그 시간을 미화시키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해버린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시각을 '첫사랑'의 합성어에서 '처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옮겨놓게 된다면. 어쩌면 우리들의 '첫사랑'은 그 코흘리개 시절에 느꼈던 이성에 대한 소소한 감정, 그 단순한 한 번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6.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 나는 4살 때부터 대구 지산동의 H 아파트에서 7년 정도를 살다가 이사를 갔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다시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호수의 집으로 되돌아 왔는데 이 때 역시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분명히 같은 집인데 내 기억 속에 있던 집에 비해 너무 작아져 버린 느낌. 어릴 때 쓰던 같은 방을 내 방으로 쓰고 있는데 그 방이 주는 느낌은 결코 같지 않았다. 물론 그 아파트의 집과 방에는 변화가 없었더라도 사용자인 내가 물리적으로 성장해 있었기에 단순하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분 혹은 감정이란 건 그렇게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어쩌면 이 때부터 나는 스스로의 감정들을 깊숙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이 때의 이야기를 꺼낸 건 바로 그런 것이다. 사랑의 감정이 매번 전혀 같을 리도 없겠지만, 만약 같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과 사용자인 나의 마음이 달라질 터인데 과연 우리들에게 '첫사랑'이 정말 한 번 밖에 찾아오지 않겠느냐는 것. 정말 한 번 뿐일 것일까.


7. '첫사랑'. 문득 이 단어야말로 우리들이 느끼며 살아갈 섬세한 감정들을 두루뭉실한 단어 하나로 뭉개버리는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겪을 때 흔히 보이는 어리숙함과 깊은 감정의 과잉된 표현들을 묵살하여 마치 스스로가 성숙한 존재로 거듭났다고 설명하는 듯한 단어.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 시도하는 나의 사랑이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당신이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지. 처음을 이겨낸 나의 사랑이 잘못되었을 리가 없는. 그리고 그렇게 우리들의 사랑은 점차 뜨거워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익숙함이 되어가는 것을 용인하며. 횟수로 설명되는 나의 '첫사랑'에만 순수함이 묻어 있을 수 있는. 그런 것.


8. 이야기를 하다보니 한 쪽으로 너무 매몰되어 버린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두근거린다. 어설프기는 하나 두근거리는 나의 사랑이 앞으로도 새어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평생을 두고 단순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첫사랑'과 같은 단어 하나로 설명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당신을 궁금해하는 동안에 당신도 나를 궁금해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서로가 익숙해지지는 않기를 바란다.


나의 핸드폰을 사랑하지 않는 이가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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