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Nov 14. 2015

어른스러운 아이.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




1. 어렸을 때 나는 천식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환절기가 되면 '쌕- 쌕-' 거리는 거친 소리를 토해내며 밤마다 괴로워 했단다. 차가운 음식을 함부로 먹지 못했던 건 물론이고, 겨울엔 콧구멍에 찬 바람 한 번을 쐴 수 없었다고. 대구에 있는 파티마 병원 소아과 병동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 분들도 모두 나를 알 정도였다고 하니 꽤 오랫동안 고생을 하긴 했나보다. 어머님은 그런 내게 몸에 좋다는 온갖 음식들을 구해다 먹이셨고, 지금은 손조차 갖다대고 싶지 않은 개구리, 뱀 같은 녀석들을 무엇인지도 모르고 잘 받아 먹었단다. 그리고 덕분에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천식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지금까지도 별 탈 없이 잘 살아오고 있다.


2. 내가 5살 때였던가? 한 번은 저녁 밥 시간이 되어 놀이터에 나를 데리러 오시던 엄마가 억장이 무너질 법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마침 그 땐 여름 즈음이었는데, 내가 놀이터 한 쪽 구석에 혼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또래들을 부러운 듯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고.. 밖에 나가서 차가운 음식을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는 이야길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나는 같이 먹지도 못하고 그렇게 있었다고 한다. 안쓰러운 마음에 엄마가 먹고 싶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 작은 애가 아무것도 아닌 척,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밤에 고생하지 않느냐고. 괜찮다고 했단다.


3. 초등학교 다닐 때 한 번은 부모님 친구 가족들과 동해 바다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참고로 나는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한다. 덕분에 공기를 넣으면 물 위에 뜨는 매트를 손에 쥐고 발이 닿는 곳들만 돌아다녔다. 수영을 못하면 모래사장 가까이서 놀면 되는데 애들이 어디 그런가.. 얼마쯤 지났을까, 물놀이를 하던 나는 꽤 지쳤던 모양인지 그 매트 위에 완전히 올라서서 하늘을 보고 눕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놀던 모래사장이 까마득하고, 매트 바로 아래 바닷물 색이 굉장히 진해져 있다. 바다가 썰물 때가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야금야금 떠내려 나와버린 것이다. 부모님과 어른들은 조금 떨어진 텐트에서 식사 준비 중이셔서 이 사실을 아실 리가 없으셨고. 사실 그 때 순간의 기분을 지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온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구해달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소리를 지르다 매트에서 떨어질까봐 그 조차도 무서웠다. 한참을 매트를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얼마 뒤 패트롤을 타고 온 안전요원들에게 구조가 되기는 했지만. 나보다 더 놀라보인 것 육지에서 날 기다리시던 부모님이었는데, 그 때도 나는 괜찮다며 수박을 집어 먹었다고 한다. 시퍼런 입술을 벌벌 떨면서.


4. 어릴 때 나는 어른스럽다는 이야길 많이 듣고 자랐다. 어른스럽다는 게 어떤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까불지 않고 얌전히 굴거나, 참기 어려운 감정들 혹은 상황들을 잘 참아낼 때 대체로 그런 이야길 듣곤 했다. 그리고 그 칭찬 아닌 칭찬은 나를 그런 아이로 만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말 잘 참는 사람이었다. 여기 이야기하지 못한 수 많은 일들을 포함해서. 처음엔 어린 마음에 어른들의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겠다고 그랬을 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나는 진짜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5.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나는 점점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어진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살아온 까닭에 아직도 여전히 처음엔 내색하지 않으려고 들지만, 마음 한 구석엔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어서 막상 겉으로 표현될 때는 내가 생각해도 어설픈 상황들이 생겨버리고 만다.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 부분들까지도 모두 거짓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원인일까.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못할 것 같았으면 차라리 처음대로 그대로 사는 게 더 나았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6. 이제는 아이스크림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있는데. 바다에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을 담아올 수 있는데. 어른이라고 모든 게 익숙하진 않은 모양이다.



작가의 이전글 잠수함을 두드리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