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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Nov 08. 2015

잠수함을 두드리는 사람들.

브런치의 펜을 놓은 솔직한 이야기.




1. 지금부터 나는 굉장히 솔직한 이야기들을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써 내려갈 생각이다. 이 정도 나이가 되니 사람을 만나는 것도 모두 포장이 되어야만 하고, 어떤 일을 하는 의도들 역시 받는 사람의 기분에 맞춰야 하는 일들 뿐이라 나도 그렇게 살아왔지만. 오늘 이 공간을 통해서만큼은 내가 왜 브런치의 연필을 지난 40여 일간 놓고 말았는지 가감없이 쏟아내 볼 참이다.


2. 어려서 글재주가 전혀 없는 편은 아니었다. 대구의 작은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학창 시절의 나는 운문과 산문을 가리지 않고 백일장에 나서 가짜 금테를 두른 종이쪼가리를 받아 들곤 했다. 글쎄 그게 내 글들의 어떤 지표를 측정한 댓가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가벼운 상장들은 누군가의 자랑이요, 또 누군가의 기대가 되기도 했다. 물론 전혀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글이라는 것을 좋아하다보면 그것은 곧 책이라는 사물로 길이 이어지기 마련이었고, 책을 좋아하기 시작한 소년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시간만 나면 책을 손에 쥐고 다니기 시작했다. 마침 그 소년은 아무리 읽어도 시력이 나빠지지 않는 튼튼한 눈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이는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길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3. 시험을 쳐도 그랬다. 아주 어릴 적부터 수능이라는 큰 시험은 볼 때까지 언어라고 불리는 과목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 그것은 고전시조라던가 현대문학의 내용을 많이 외우고 있었다는 의미보다는 자연스럽게 습득한 속독과 다양한 의미의 이해의 덕을 더욱 보았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야기가 조금 새기는 했지만, 결국 그런 내가 글쓰기라는 걸 따로 배워보고자 생각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실제로 나는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단 한 번도 글이라는 걸 배워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오만도 그런 오만이 없었고, 실수도 그런 실수가 없었다.


4. 무식이 용감이라고 했던가. 그러던 중 지난 2009년, 나는 처음으로 완성시킨 18,000자 짜리 소설을 들고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도전하게 된다. 무슨 깜냥이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스럽지만 신문에 실린 '신예 작가'라는 타이틀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다시 봐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듯한 그 괴팍한 글로 당선이 되었을 리는 만무했다. 대신 하나가 남았다. 앞으로 몇 십년이 걸리더라도 꼭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책을 세상에 내놓고 말리다. 이 마음이 간절하게 남고 말았다.


5. 이후로 나는 좋아 보이는 글들은 모두 필사를 해 제끼기 시작했다. 소설이고 에세이고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는 전공책들을 보다가도 어미가 마음에 드는 구석은 몇 번이고 휘갈겨 써냈다. 물론 그 짓거리를 하느라 내 성적이 고개를 바짝 드는 일 따위는 생길 겨를이 없었지만. 한 가지 이상한 건 이 때까지도 나는 단 한 번 글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이상한 놈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놈이 왜 공부를 하지는 않았을까?


6.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썼던 건 영화와 관련된 글들이었다. 이미 나는 20대를 시작하면서 영화와 사랑에 빠져 있었고, 당시 유명했던 많은 잡지사들의 서브 어시스턴트를 하기도 하고, 혼자 운영하던 블로그에 남기기도 하며 이리저리 많이도 방황을 했다. 서브 어시스턴트로 썼던 글들은 거의 모두 내 이름은 오르지도 못한 채 편집되어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좋았다. 결국 그 글들을 나는 알아 볼 것이며, 언젠가는 나의 책을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될 연습들이었기 때문이었다.


7.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인스타그램'이라는 이상한 SNS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그 전까지는 페이스북을 통해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는데, 이 새로운 건 전혀 몰랐던 이들과의 교류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전에 다른 곳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이 공간을 통해 영화의 간단한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간 자체가 사진을 업로드하는데 특화되어 있다보니 포스터 하나만 달랑 얹어 놓고 글자 몇 자 끄적이던게 모두였던 그 시절. 그런데 그런 이야기마저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 나의 이야기들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차 '인스타그램'의 이단아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일로 200번째 글을 쓰게 되는 연재글 <넘버링 무비> 역시 그 때 그렇게 시작되었다.


8. '인스타그램'의 특성상 사진 하나에 2,000자 남짓 밖에 글을 쓸 수 없었지만, 그렇게 <넘버링 무비>를 연재하면서 나름대로 스스로의 글 혹은 영화를 접하는 시선에 대해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올해 4월, 나의 20대가 끝나기 전에 오랫동안 꿈꿔왔던 꿈을 현실로 만들고자 도전했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는 무척이나 고무되어 있었고, 나의 다른 모든 것을 내려두고 글을 고민하고 책의 구성을 구상해 내느라 정신을 놓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이런 저런의 과정들을 거쳐 대략의 초안까지 나오고 꿈에 거의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낄 때였을까? <하늘을 걷는 남자>(2015)의 "펠리페 페팃"이 말했듯, 불과 세 걸음 정도가 남았을 때 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 버리고 말았다.


9.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솔직히 나는 많이 망가져 있었다. 그 시기의 '인스타그램'에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영화 이야기가 올라가 있는데, 그것 역시 내가 스스로를 버티기 위해 했던 하나의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내겐 기댈 곳이 없었다. 물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의 문제였다. 그 동안 사람들이 내게 그 때 써 둔 글들로 책을 다시 만들면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들을 했지만, 그 때 나는 그 글들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말았다. 꼴도 보기 싫었다. 내가 쓴 글들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완전히 털어내는 데까지는 다소의 시간이 걸렸다.


10. 그 즈음, 나는 이 공간 '브런치'를 소개받게 된다. 반 쯤의 기대와 반 쯤의 두려움.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릴 때 나의 마음은 그 즈음에 가 있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브런치'를 통해 내가, 그리고 나의 글들이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 정도로 나는 심리적인 바닥을 기고 있었다. 새로운 글 따위를 쓸 여력은 내게 없었기에, 대부분의 글들은 옛날에 써 두었던 글들을 재구성한 것들이었다.


11. 아마도 이 때의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타인의 시선과 관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나의 글이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 누가 내 글을 팔로우 해서 읽는지 매번 알람이 울릴 때마다 나는 반사적으로 확인을 하곤 했었고, 메인에 소개되는 글들에 굉장한 질투심을 느끼곤 했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12.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그 이유를 나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물론 같은 시기에 '인스타그램'에도 글을 쓰고는 있었으나, 그 곳에서의 나는 오랫동안 교류해 온 사람들과 함께였었기 때문이었는지, 이 곳의 내 모습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미련없이 이 곳을 떠났다. 이 곳에서 글을 쓰던 내 모습은 나 조차도 익숙하지 않았다.


13. 떠나고 얼마간 '브런치'의 알람이 뜨기는 했지만 조금 더 지나자 완전히 멈추고 말았고, 나는 온전히 눈팅족이 되어 있었다.


14. 그런데 어제부터 갑자기 또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최근 40여 일이 넘도록 나는 잠수만 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꾸 나의 잠수함 문을 두드린다. 예전에 써 두었던 나의 글 하나가 메인글에 올랐다. 참 이상하다. 그렇게 애가 닳아할 때는 단 한 번도 선정해 주질 않더니 완전히 손을 놓고 나니 이제서야... 이 글은 솔직한 글이니 이 말도 해야겠다.


"거.. 운영자가 누군진 모르지만 손발 참 안 맞네.."


15. 글쎄. 정말 오랜만에 이 긴 글을 써내고 있지만. 이 계기로 내가 브런치의 펜을 다시 들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때 보았던 스스로의 내면 깊숙한 바닥. 그 곳을 짚고 돌아온 건 분명히 내게 어떤 방식으로라도 하나의 치트키가 되어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 글이 누군가의 사랑을 혹은 선택을 받을 지 아닐 지는 잘 모르지만 어딘가 세상 한 구석에서 글을 쓰고 있을 것이라는 것도. 책을 쓰고 말리라는 꿈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6. 오랜만에 수면 위로 올라 공기를 마시니 속이 시원한 건 사실이다. 깊은 바닷속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려 준 이들에게. 그리고 나의 잠수함을 찾아 이 바다를 다녀 간 이들에게 작은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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