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Sep 30. 2015

공중파 방송은 왜 더빙을 사랑하는가?

<무한도전> 팀의 <비긴 어게인> 더빙 아이템을 들여다보다.


정확히 일주일 전, 기사를 하나 접하게 되었다.


'무한도전', 영화 <비긴 어게인> 직접 더빙…추석연휴 방영.


예능 프로그램을 손꼽아 기다리며 챙겨보는 타입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국내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을 넘어서 하나의 플랫폼(Platform)의 형태를 구축했다는 점과 10년이라는 세월을 버텨낸 꾸준함을 높이 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특집들을 통해서는 진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고, 깊은 여운을 전달받기도 했던 프로그램이 바로 <무한도전>이었다. 그런데 이번 소식은 그리 반갑지가 않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오래 전부터 의문을 갖고 있던 일을 하나  이야기하려고 한다. 왜 공중파 방송에서는 외화를 상영할 때 굳이 '더빙'이라는 작업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영화 전문 채널, 케이블 TV 모든 다른 채널들에서는 원작 그대로의 화면에 자막을 보여주는데, 유독 공중파 방송은 '더빙' 작업에 목숨을 걸고자 한다. 물론 나 역시 아무것도 몰랐던 어릴 적에는 방송을 통해 나오는 영화들은 '더빙'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공중파만 그랬다. 공중파만. 물론 영화를 방영하는데 있어 '더빙' 작업이 어떤 문제가 있냐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좋을 작품에 '더빙'을 입히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더빙' 작업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원작의 분위기와 느낌, 전체적인 흐름 자체가 변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늘 이야기 하고 있지만 같은 작품을 두고서도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기분으로 접하게 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영화'이고 '예술'이라는 분야다. 그런데 이렇게 예민한 작품들의 한 부분을 인위적으로 수정한다? 같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 느낌이 완전히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작품 전체를 '더빙' 할 수 없다는 부분에 있다.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발생하는 '더빙' 작업들은 작품 속 배우들의 일상 대화에만 국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이번 <비긴 어게인>에서는 "데이브"(애덤 리바인 역)가 한국인 성우의 발음을 통해 한국말로 대화하는 장면을 듣게 되다가 노래를 하는 장면에서는 "애덤 리바인"의 목소리가 튀어나올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자연스럽게 소화한다고 한들 그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대체 '더빙'은 왜 하는 것일까?


단순히 '더빙' 작업을 하는 것도 이런 문제들을 수반하는데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문가도 아닌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연예인 멤버들이 그 작업을  도맡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 이해하기가 어렵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더빙"이라는 것은 수 년을 연습해 온 전문가들이 맡더라도 위화감이 느껴지는 작업인데, 더구나 오락성이 짙은 영화나 액션 장르도 아닌 이런 정통 멜로 작품에 연예인들의 목소리를 얹는다? 너무나 실망스럽다.


기사를 접했기 때문에 어떤 과정을 통해 영화가 더빙이 되는 지를 꼭 확인하여야만 했고, 지난 주 토요일에 방영된 분량을 지켜보았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비참한 기분이다. 그들이 "성우"라는 직업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는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주연 타이틀을 정하는 건 결국 그 6명의 연예인들 중 누가 더 목소리가 괜찮게 들리느냐에 근거한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이번 소재는 급하게 다가오는 추석 연휴에 MBC라는 방송국이 애초에 방영할 계획이 있던 영화 <비긴 어게인>을 위해 <무한도전>을 홍보 대상으로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 우리는 그 동안 무한도전을 10년이나 지켜봐 오지 않았나? 만약 애초에 그들이 "성우"라는 직업에 도전하고, 정말 영화를 제대로 더빙하려고 마음을 먹었었다면 과연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한 회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끝내고 말았을까? 나는 의문스럽다.


한 가지 더. 백 번 양보해서 그들의 '더빙' 도전이 괜찮은 시도였다는 생각을 해 보자. 그렇다면 그 시도는 <무한도전> 프로그램 내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끝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굳이 그들이 더빙한 작품을 추석 연휴 특선 영화라는 타이틀로 공중파 방송을 내보내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차라리 <무한도전>의 방송을 통해서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성장하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보여주고, 특선 영화 타이틀로는 실제 영화 <비긴 어게인>의 원작을 상영해 주는 게 두 가지 매력을 동시에 어필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나 역시 두 방송분 모두를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즐겼을 것이다.


아마 이 글이 쓰여지는 동안, MBC를 통해 실시간으로 그들이 '더빙'한 <비긴 어게인>이 방영되고 있을 것이다. 그 말인즉, 나는 이 작품을 너무나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더빙 버전 <비긴 어게인>을 포기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이 글을 통해 그들의 도전이나 <무한도전> 프로그램의 기획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이번 아이템에는 그들이 그 동안 보여준 아이덴티티도 담겨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영화를 두고 보더라도 원작의 매력을 오롯이 전달할 수 없는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기에 무한도전  팀뿐만 아니라 이 과정 자체에 포함되는 모든 관련자들의 결정이 아쉽습니다.


물론 어떤 과정들을 통해 이런 기획을 하게 되었는 지, 왜 이 작품이 선정되었는 지, 방송국은 왜 예능 프로그램의 한 부분을 굳이 정규 방송으로 편성해 방영하고자 하는 지에 대해 나는 방송국 내부자가 아니기에 잘 모른다. 다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들이 처음의 아이덴티티와 정당성을 잃지 않는 마음으로, 또한 모든 작품들이 원작 그대로의 느낌을 오롯이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음을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더빙판 <비긴 어게인>이 방영된 후, 연예인들의 목소리가 담긴, 소위 움짤이라고 불리는 영상들로 이 작품에 후폭풍이 생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Copyright ⓒ 2015.

joyjun7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 이전글 희미해진 조각들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