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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25. 2015

희미해진 조각들의 이야기

초콜릿에 담긴 작은 이야기 하나.



대학 시절 전국을 발 아래에 놓고 여행을 다닐 적의 일이니 한참 오래 전의 일이다. 한 번은 담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여행은 대부분 혼자인 경우가 많았고, 담양으로 향했던 발자국 역시 한 사람  몫뿐이었다. 1박 2일 여정의 짧은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담양 시내 쪽의 작은 버스정류장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심하던 차에 발 밑으로 작은 돌멩이가 헤짚고 있는데 조그마한 여자 아이 하나가 엄마 손을 잡고 들어왔다.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먼저 인사를 했더니 아이는 엄마 등 뒤로 숨어 버렸고 왜 그러냐며 채근하시는 아이의 엄마와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엄마 뒤에서도 나를 흘깃거리며 쳐다보는 그 모습이 또 한 번 귀여워 가방 속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 준다. 이번에는 분명히 먹고 싶은 눈치인데 바로 받지를 못하고 엄마 눈만 빤히 쳐다보더라. 순간 그 모습에 나와 아이의 엄마는 웃음이 터져 버렸고, 엄마가 날 보고 대신 고맙다고 하면서 그 여자 아이에게 가서 받으라고 하자 그제야 와서는 '고맙습니다.' 하며 초콜릿을 받아 들었다. 그런 그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버스가 올 때까지 한참을 눈에서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참 많은 것들을 각자의 속 안에 담으며 살아간다. 우리의 몸이 넝마주이의 등에 걸린 헤진 바구니일 리는 없을 텐데 하루하루 바쁜 삶을 살면서도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우리 안에 주워 담는다. 그렇게  하나둘씩 정신없이 주워 담다 더 이상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내 속이 가득 차게 되면 세월이 지나도 결코 버릴 수 없는 것들만 내 속에 남겨두는 것이다. 아쉽지만 나머지 기억의 넝마들은 다시 꺼내 훗날에 내가 가장 떠올리기 쉬운 물건과 장소들에 하나하나 쪽지를 달아 놓는다. 따뜻했던 핫 초콜릿에는 텀블러 안에 녹아버린 초콜릿처럼 달콤했던 한 겨울날의 아름다움이, 소소한 경적만이 남은 새벽녘 한강 다리 위의 내 카메라 렌즈에는 암실 속의 어름한 백열등 같은 보름달의 추억들이. 마치 온 세상, 모든 물건들이 내 방 안 책상 위라도 되는 듯 남들은 알아보지도 못하는 글들을 소소히 적어 매달아 놓는다. 그 시간을 함께 흐르던 멜로디에도, 폐 속을 찌르던 차가운 공기에도, 우리의 그 작은 몸짓에도 빼곡히 말이다.  언젠가 다시 찾아 그 때를 회상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처럼.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그 때의 행동들에 조금 후회가 남는다. 그 때 그 순간에 한껏 취해 적어 놓았던 그 기억의 순간들이 이제는 빛이 바라고 헤어져 버려서 전부를 오롯이 가질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더란 말이다. 꺼내어 놓은 기억이라고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그 뜨겁고 진했던 시간의 냄새가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하더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정말 없는 걸까? 별 볼일 없던 나의 하루 하루가 나를 조금씩 흩어내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은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지금 내가 펼친 이 기억은 누구의 것일까.


하지만 나는 그 기억의 조각들을 떼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내 안에 더 이상 담아둘 곳이 없었음을 미안해하면서. 몰랐었다는 핑계로 붙잡아주지 못했던 것을  미안해하면서. 그리고 영원히 안을 줄도 모르면서 쉬이 보내지 못하고 그 곳에 매어둔 것을 미안하다 하면서..


얼마 전 우연히 들린 편의점에서 그 때 그 아이에게 건넸던 것과 똑같은 초콜렛을 발견했다. 초콜렛은 작아졌고 가격은 500원이나 올랐지만 나는 그 꼬마 숙녀를 떠올릴 수 있어 행복했다. 물론 지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건 그녀의 표정 뿐이었다.


나는 지금 매달아 두었던 쪽지들찾아 다닌다.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들을 매달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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