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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22. 2015

하루는 24시간이 아니야?

인생의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



초등학교를 다닐 땐 그랬던 적이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해 주시는 점심을 먹고 친구들 집에 전화를 한다. 아니 뭐 굳이 전화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가 1990년대 중반이었으니까 핸드폰 같은 것도 없었던 시절.  이것저것 챙겨서 아파트 밑으로 내려가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때부터 시작이다. 그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도 타고, 축구도 하고, 동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탈출하는 놀이 같은 것들을 신나게 하는 거다. 시간? 충분하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 5시 30분이 되면 전부 만화 영화를 보러 집에 들어간다. 30분 단위로 보통 2-3편 정도의 만화를 보고 끝날 때가 되면 7시. 만화를 보는 사이 엄마가 해 놓으신 저녁을 먹고 급하게 내일 학교에 가지고 갈 숙제를 하기 시작. 한참을 끄적거려봐도 9시가 넘질 않는다. 거실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뉴스를 보고 드라마까지 보고 나면 11시. 이제야 하루가 끝이 난다. 하루가 참 길다.

그런데 지금 내가 사는 하루는 조금 다르다. 새벽같이 눈을 뜨자마자 대충 손에 집히는 대로 주워 먹고 집을 나선다. 전날 집에 들어오는 길에 빵이라도 하나 사다 놨으면 그 날 아침은 진수성찬이다. 자 그리고 어딘가를 가겠지? 그 어딘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딜 가더라도 뭘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될 테니까. 밥을 먹고 나면? 하품 두어 번 하면 3시. 커피 한 잔 하고 돌아 서면 밖은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한다. 저녁을 먹고 오늘 계획한 일은 다 끝내지도 못, 아니 시작도 못 했는데 집에 갈 시간.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라 집에 도착하면 이미 12시. 나는 오늘 하루를 무얼 하며 보낸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누군가가 글로 명시해 놓은 건 아니지만 우리는 암묵적으로 사회의 기준에 의해 그 나이 때에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아니.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 나이대가 아니면 하기가 어려운 것들, 혹은 그 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감당해야 할 지도 모르는 일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일들은 우리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늘어난다.

나를 예로 들어보면 이렇다.


10대 때 나는 사실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일들이 있을 줄은 차마 알지도 못 했고, 무얼 해야 하는 지도 몰랐다. 기껏 생각한 것이라고는 좋은 대학이 가고 싶었고, (왜 그래야 되는지 진짜 이유도 모르면서..) 어른들이 마시는 술이 한 번 마셔보고 싶었을 뿐이다. 아 참, 하나 더. 아침에 학교 갈 때 교복은 벗어두고 사복 한 번 입어보는 게 소원이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소소하다.

그런데 20대가 되고 나니 더 많은 것들을 해내야 한다.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독립도 해야 하고, 사회에서 홀로 서는 연습도 해야 하고.. 대학 졸업, 취직 문제, 인간관계, 지난 10대 때와는 전혀 다른 문제들이 내 앞에 산적해 있고, 이 모든 것들을 지금 해야만 한다. 30대가 되면 이 일들이 줄어 들게 될까? 10대의 내가 해결하지 못한 일들을 지금 고스란히 떠 안은 채 20대의 새로운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듯이, 20대의 문제들(여전히 풀리지 않은 10대의 남은 과제들을 포함하여) 역시 똑같이  끌어안은 채 30대의 새로운 문제들을 풀어내야 할 것만 같다. 40대가 되어도.. 50대가 되어도...

이것만 해도 머리가 아프지만 우리들의 시간이 점점 더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는 또 다른 이유 하나가 더 있다. 우리가 지나 온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미련들이 쌓이고 있다는 것.

사실 10대 때의 학생들은 대부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성숙함을 폄하하고자 함이 아니라 경험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10대 학생들이 "아.. 나 8살 때 혼자 여행도 한 번 못 가봤어.. 그게 진짜 후회 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20대가 되고 나면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후회와 미련들이 점점 쌓이기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가 아니었으면 못할 것만 같은 일들인데 왜 하지 못했을까? 혹은, 그 때 이 일을 제쳐두고 한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는데 왜 그리 멍청하게 굴었을까? 등등의 생각들. 30대. 40대. 점점 더 많이.. 그리고 우리는 그 때마다 이런 다짐들을 하게 된다. '올해는 반드시 해 볼 거야.' 


그리고 현실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기에도 24시간이 모자라다.

우리는 인생의 어떤 순간을 지나고 있든, 언제나 하루는 24시간이라는 절대 변할 수 없는 명제 하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하루하루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앞으로 해 나가야 하는 일들에 대한 책임감은 커져만 가고, 그 시간에 하지 못하고 지나온 일들에 대한 후회들은 겹겹이 쌓이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지금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지 못하고 지나온 일들에 대한 마음들을 끊어내 버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결코 기다려주지 않을 시간들 속에 떠내려 가는 소중한 일들을 그저 지켜만 보면서 넋을 놓고 있지 말았으면.. 당장 지금부터라도 내게 중요한 것들은 스스로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과거를 후회하는 과거의 내 모습이 미래에 남지 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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