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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18. 2015

버텨내는 일의 가치에 대하여..

방송인 '홍석천'이 버텨 온 시간들의 무게를 상상해 보다.



**이 글은 방송인 "홍석천" 씨에 대한 주관적인 시선이 포함되어 있으며, 개인적인 친분은 없는 바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이미지에 대한 주관적 판단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지난 2000년, "홍석천" 씨는 오랜 고민 끝에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느껴왔던 옷을 입고 대중 앞에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던 적이 있었다. 분명히 그 옷은 같은 시대의 대중적인 모습과 조금 다른 모양을 하고 있기는 했으나, 사실 지금 다시 돌이켜 보면 언젠가 무대 위에서 가수 "박진영"씨가 입고 춤을 추었던 비닐 바지만큼 선정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홍석천" 씨가 그 어떤 때보다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이고자 했던 그 날, 그는 모두가 지켜보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수 많은 미디어와 대중들의 날카로운 가위질에 입고 나갔던 옷을 전부  난도질당하다시피 했고, 그 후로 오랜 시간을 우리로썬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시간을 외로움 속에 보내야만 했다.

그 일이 있던 당시의 나는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어린 코딱지였다.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올바로 지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라곤  Beautiful이라는 영어 단어에 모음인 'eau'가 한꺼번에 연달아 쓰인다는 뭐 그런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의 내가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할 정도로 어렸다는 사실과 별개로) 주변 어른들의 의견이 이끄는 대로 대부분의 미디어들이 손가락질을 했던 대로, 아무 생각 없이 그의 솔직함을  수치스러워했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체성에 대하여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남들과 같이 장난처럼 손가락질을 하고 더러운 침을 뱉곤 했었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지금의 나는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떠나 "홍석천"이라는 사람이 견뎌온 세월에 대해. 또 그 시간을 넘어 세상이 손을 내밀 때까지 자신의 심지를 잃지 않았던 그의 우직한 발걸음들에 존경스러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이러한 마음은 결코 더 이상 혼자만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얼마 전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된 <힐링 캠프> "홍석천" 편을 통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가장 놀라웠던 건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연령층이었다. 기존의 젊은 세대를 뛰어 넘어 40대, 50대가 그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미소 짓고 웃음을 띄우며 박수를 보내는 장면들은 브라운관 밖에 앉아 있는 내게도 커다란 감동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분명히 타인의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회의 모습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때까지 "홍석천"이라는 인물이 묵묵히 버텨 온 시간들에 대한 감동이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나는 동성애라는 정체성에 대해 매우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고, 그렇다고 내가 먼저 나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 지지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 동안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왔지만, 동성애와 이성애가 동등한 선 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다른 이성 연인들의 모습처럼 그들은 그들의 사랑을, 나는 나의 사랑을 서로의 존중 속에서 키워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홍석천"이라는 인물에게 그가 버텨온 시간들에 대한 경외심과 더불어 존경심까지 느끼는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그 동안 쏟아졌던 세상의 편견에 그가 대응해 온 모습이 굉장히 이성적이라는 점이었다. 표현이 좋아 '이성적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가 보여주었던 모습, 자신에게 쏟아지는 편견과 모욕, 어쩌면 목적 없는 저주,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하면서도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대해 온 그의 행동들에는 언제나 명분이 담겨 있었다. 그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는 동안 실제로 본인의 속은 어땠을 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오래 걸릴지는 모르지만 유난스럽지 않으면서 자신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여 조금씩 사회에 스며들기를 바랬던 그의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격한 잣대를 갖고 방송인들을 평가하는 대중들의 눈에는 그게 당연해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서울과 대구에서 열린 퀴어 페스티벌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동성애자들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지만 일부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을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의 시선에 맞서 다소 과격한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화로 가득 차 보였다. 이런 구분을 하는 것은 조금 미안하지만 이성애자들도 공공장소에서 과도한 스킨십을 하고 옷을 벗으면 손가락질을 받는데, (실제로 페스티벌을 통해 그런 모습을 보여주셨다.)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편견을 받고 있는 분들이 그런 행동을 하면 더욱 미움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자. 시대가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현실적으로 아직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홍석천"씨가 버텨온 시간들이, 그리고 조금씩 서서히 대중과 사회의 일원으로 다가온 모습들이 더욱 가치 있게 비추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이 심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또 빠른 것들만이 추앙받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버텨내고 또 지켜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고자 하는 사람들은 가끔 우둔한 인물 혹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물론 한 자리에서 견디고자 하는 일이 혼자만의 매너리즘에 빠지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신념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두드리고 뒹굴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의 진심을 세상도 알아주는 날이 온다는 것을 "홍석천"이라는 사람이 보여준 것만 같다.


오랜 시간동안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간절히 꿈꾸어 왔기에 지금 그의 삶이 조금씩 평범해져 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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