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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17. 2015

당신의 별은 어느 곳에서 빛나고 있나요?

내가 영화에 평점을 남기지 않는 이유.



제가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이레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작품에 대한 평가를 자주 물어옵니다. 그리고 그 물음들은 대부분 숫자들, 우리가 흔히 "평점"이라고 부르고 있는 형태의 답변을 기대되어지곤 합니다. 현실적으로 그렇습니다. 인터넷 상의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가, 영화 잡지들이 "평점" 혹은 "별점"으로 영화의 재미나 작품성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요즘 인기가 있다는 어플리케이션 왓챠(Watcha) 역시 그렇다고 하더군요. 사실 이 쯤되면 궁금해집니다. 영화를 두고 "평점"이라는 걸 매기기 시작한 건 과연 언제부터일까요? 그리고 이 "평점"은 정말로 하나의 작품을 평가하는 잣대로서  인정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죄송하지만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제가 쓴 글들에 단 한 번도 "평점" 따위를 남기지 않았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제 글에 대해 다른 부분을 수정해 달라고 이야기를 하시면 충분히 고려해 볼 의사가 있지만, 적어도 "평점"과 관련해서는 저는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 하고 나니 참 유별나 보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 전부 그렇게 하는 걸 왜 굳이 이렇게까지 히스테릭하게 굴면서 억지를 부리는지 말이죠.


하지만 여기에는 제 나름대로 이유가 다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온, 오프라인을 통해 영화를 봐 온 입장에서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 내린 결정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입장입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한 친구들이 주변에  하나둘씩 생기고 있고 그들의 행동이 바뀌고 있는 모습을 조금씩 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점"을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거나, 자신의 감흥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배척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제가 갖고 있는 시각에서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지 건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모든 예술 작품들이 그렇듯이 영화라는 매체 자체도 '유동성'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작품이라 할 지라도 이 작품을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시기에, 어떤 감정으로 만나게 되느냐에 따라 느끼게 되는 감정이 매우 다양하게 바뀌어 느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영화 자체의 특성이기도 합니다만 시간이라는 기준선을 놓고 본다면, 작품을 수용하는 수용자(관객)의 경험 역시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작품을 대하는 스탠스 자체가 변화할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관람한 작품에 7/10 점의 "평점"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1년 후에 다시 같은 작품을 만나게 되었을 때 같은 평점을 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반드시 고정적이라고  이야기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수용자(관객)의 감정이라는 것은 높은 '휘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순간적인 감정으로 작품을 평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합니다. 영화관 안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며 나왔는데, 복도를 걸어나와 화장실을 다녀오자마자 특정 장면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경험들, 아마 많은 분들이 느껴보셨을 겁니다. 이 문제가 "평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이러한 평가를 여러 작품에 걸쳐 진행하게 될 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1년 동안 약 100편의 영화를 수용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볼 때마다 "평점"을 통해 개별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한 상태.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평점을 가려놓고 묻습니다. 한 해 동안 본 작품들 중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어떤  것이었을까?라고 말입니다. 과연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작품과 내가 실제로 남겨 놓은 "평점"에는 조금의 차이도 없을 수가 있을까요? 만약 질문이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 아니라 5위나 10위의 작품을 물었다면 어떨까요? 내 기억 속에 가장 진하게 남은 작품과 내가 남겨놓은 평점 1위의 작품이 항상 같은 것이 아니라면, 과연 "평점"이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이 실험은 실제로 진행한 적이 있었고, 결과는 항상 다르게 도출된 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위와 같이 작품의 평가를 위한 도구로서의 "평점"이 아닌 어떤 대상이 단순히 숫자로 줄이 세워지는 상황에 대한 "평점"의 이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관객들 역시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아주 다양한 상황들에서 수치화되어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숫자가 아닌 내면의 가치들로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죠. 최근 취업도 힘들고, 사회에 나가면 연봉으로 등급을 매기는 등 개인의 많은 부분들이 "수"로 평가되면서 다들 자신만큼은 어떤 내적 기준으로 평가받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면적 평가 같은 기법도 개발이 되고 있죠. 그런데 왜 감독들의 혹은 수 많은 스태프들의 노고로 만들어진 영화 작품은 그 빛바랜 별 몇 개 혹은 10점 척도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서 평가되어야 하나요? 그게 직관적이고 감상을 표현하기에 편해서 그런 건가요? 만약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우리들의 인생 역시 엑셀(Excel) 차트 위에서 스펙 별로 줄이 세워지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영화를 "평점"으로 평가한다는 것에는 은연 중에 적정 수준 이하의 평점을 받은 작품은 걸러낸 뒤에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주홍글씨부터 매기겠다는 심리가 반영되어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바쁜 시간을 쪼개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모든 영화들을 고려군에 놓고 작품을 고를 수는 없다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직접 관람하지도 않은 작품에 대해서 타인의 "평점"만 믿고 작품성을 논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며, "평점"에 기대어 작품을 고르는 버릇은 개인에게도 결코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작품을 수용할 줄 아는 건강한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작품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데, "평점"에만 기댄 선택은 그러한 경험들을 사전에 차단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평점"이 아니더라도 작품을 설명하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습니다. 천천히 깊게 알아가는 인간 관계가 더욱 진한 향기를 남기듯,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손가락 몇 개만 펼쳐 드는 방식 대신에 글이나 이야기 등을 통해 천천히 자신의 감정을 되새기는 시간들을 가져보시는 기회를 만들어 보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들의 별이 조금 더 소중한 곳에서 빛날 수 있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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