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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16. 2019

나도 해를 갖고 싶어

해처럼 빛나고 따뜻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세상이 처음 만들어질 때, 세상은 행복한 소리로 가득했어요.

뚝딱뚝딱. 모두가 한 쌍씩 손 붙잡고 태어났어요. 서로 눈을 마주치면 부끄러워서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졌어요.


 하루살이의 결혼식에는 많은 손님이 찾아왔어요. 기린들이 긴 목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었어요. 새들은 꽃이 내어준 꽃잎을 물어다가 꽃비를 내리고, 하마가 두 손을 꼭 모으고 우렁차게 축가를 부릅니다.

달팽이 부부는 결혼식 입장을 하는 데만 홀딱 아침이 지나가 버렸어요. 악어는 배가 고파서 꼬르륵 소리를 참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달팽이는 창피하면 얼굴을 달팽이집 속으로 숨깁니다.

호랑이도 결혼식에는 많이 떨렸나 봅니다. 신랑 신부 입장을 할 때 어슬렁어슬렁 걷는 바람에 신부의 들러리를 했던 거북이의 목이 뻣뻣하게 굽고 말았어요.

늑대는 따라쟁이입니다. 자기도 따라서 어슬렁어슬렁 걸어봅니다.

해 들은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의 모든 결혼식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 결혼식도 꼴찌로 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세상에는 아가들이 많아졌어요.

고슴도치는 털이 너무 뾰족해서 예쁜 아기를 안아줄 수가 없어요.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리는 아기에게 젖을 물려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약속을 했어요. 가족을 지켜야 할 순간 말고는 뾰족한 털을 곱게 빗어서 몸에 붙여놓기로 했어요.

참새는 태어날 아기를 위해 하늘을 정원 삼아서 커다란 나무 위에 집을 만들기로 했어요. 부지런히 입으로 작은 나뭇가지를 물어 나릅니다. 아기의 맨살이 찔리지 않도록 자신의 보드라운 깃털을 뽑아서 푹신푹신하게 깔아 놓았어요.

오리의 집에는 한꺼번에 열한 마리의 아기들이 태어났어요. 엄마 오리는 앞에서 “오리”, 아빠 오리는 뒤에서 “꽥꽥”, 뒤뚱뒤뚱 줄 맞추어 걷는 모습이 노래 악보를 닮았습니다.

별은 세 개의 아기별을 낳고 너무 기뻐서 서로 손을 붙잡고 춤을 춥니다. 카시오페이아 자리입니다. 그 큰 하늘에 이제야 겨우 다섯 개의 별이 뜨게 되었어요.

그런데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달은 이상합니다. 처음부터 둘이서 그림자놀이에 빠졌어요. 둘의 모습을 서로 겹쳐서 눈썹도 만들고, 쟁반도 만들고, 토끼, 계수나무, 절구도 만듭니다.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노느라고 눈이 빨갛게 되었어요.

해에게도 아기가 태어났어요. 온종일 싱글벙글합니다. 해만큼 구경거리가 많은 것은 없을 거예요. 해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혹시 잃어버린 것이 있으면 해에게 물어보세요. 가장 높은 곳에 있으니까요.


 텅 비었던 세상이 조금씩 채워졌어요. 꽃들이 모여서 꽃밭을 만들고, 나무들이 모여서 숲이 되었어요. 무지개 빛깔 열대어들이 눈 깜빡할 사이에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퍼즐놀이를 합니다. 물개 가족들은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산꼭대기에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어요. 기러기들은 바람을 타고 부메랑처럼 날아갑니다.

해 들도 별들만큼 점점 많아졌어요. 서로 얘기꽃을 피웠어요. 그때 마침 멍멍이가 길에서 쉬를 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해들이 깔깔거리며 웃었어요. 그 모습을 본 멍멍이는 챙피했어요. 다음부터 한쪽 발을 들고 오줌을 쌉니다. 해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어요. 모두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해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해와 가장 가까운 곳부터 뜨거워지기 시작했어요. 동물들은 좀 더 시원한 곳으로 살 곳을 옮겼어요.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꽃들은 뜨거움을 참느라 옷들을 하나씩 벗었어요. 땅은 점점 사막이 되고, 꽃들은 선인장이 되었어요. 물을 가장 적게 먹고도 살아가는 법을 배운거예요. 낙타들이 스스로 선인장들의 친구가 되기로 결정하고 사막으로 집을 옮겼어요. 북극과 남극에는 커다란 얼음들을 산처럼 높게 쌓았어요.


 해들은 자기들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미안했어요. 이러다가 세상이 전부 타버릴 것 같았어요. 해들이 싱글벙글 웃을 수 없었어요. 다같이 모여서 회의를 시작했어요. 세상을 가장 많이 보고, 많이 알고 있는 해들의 회의답게 좋은 생각들이 쫘르륵 쏟아져 나왔어요.  


 해 들은 이제 결혼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해가 너무 외로워서 울먹거릴 때는 구름이 살짝 그 모습을 숨겨주었어요. 해가 더는 눈물을 참을 수 없을 때, 세상에는 비가 옵니다. 모두가 같이 우울해요.

아쉽지만 하루의 반은 달과 별에게 하늘을 맡기기로 했어요. 낮 동안 뜨거워진 세상을 식히기 위해서예요. 캄캄한 밤에는 해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어요.

나머지 해들은 몸집이 큰 공룡들이 한 개씩 나누어 갖기로 했어요. 아무리 덩치가 큰 공룡이라도 뜨거운 해를 품고 살기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별로 옮겨가기로 해요. 지금도 저 하늘 어딘가에 해를 가슴에 품고 사는 공룡들이 살고 있는 별이 있답니다. 너무 뜨거워서 불을 토하고 살아요.



 이제 마지막 몇 개가 남았어요. 용감한 사람들이 나섰어요. 가끔 해처럼 빛나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이유입니다. 해의 뜨거움을 용감하게 견디고 보석처럼 반짝거리며 사는 사람들이예요. 그 사람이 죽으면 해를 품고 살 용감한 아이를 뽑아야 해요. 세상에는 다시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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