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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순 Feb 14. 2021

"해피 클리너스", 식구에 대하여  

한국계 미국 가족 이야기

    어제는 처음으로 방영을 시작한 해피 클리너스Happy Cleaners를 보고, 오늘은 넷플릭스에서 제니 한Jenny Han의 원작 소설 To All the Boys: Always and Forever를 봤다. 두 편 다 한시간 삼십분짜리 영화다. 이같은 최근의 문화적 산물들이 마치 '퐁퐁 솟는 아시안 아메리칸 문화의 샘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한국계 미국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미나리가 그러하고, 어제 상영을 시작한 이 영화 '해피 클리너스Happy Cleaners'가 그러하다.  

전반적인 느낌

    리얼하다 못해 약간은 설익은 느낌이 들고, 그래서 생경하면서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생경하다고 쓴 이유는, 이 영화가 어떤 배경과 예산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산업에 대해서 아는 게 없지만, 한 사람의 관객으로 이 영화를 보고 든 느낌은 뭔가 설익은 사과를 먹는 기분, 그러면서도 또 뭔가 이것이 이들만의 힘으로 만들어낸 영화이기에 더욱 '장하다' 하는 기분이 들었다. 미국에 사는 한인으로서 나는 이런 영화가 만들어져 영화로 유통되는 것 자체가 대단하고 장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마도 이같은 소재를 다룬 이야기 자체는 많을 것인데, 그 이야기가 영화로 상영이 되고, 관객에게 전달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조금씩, 자주 발생한다는 느낌이 든다. 미나리가 그러하고, 이 영화가 그러하고, 또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이민진 작가가 쓴 빠친코 Pachinko 가 영화화 된다는 소식도 들은 것 같다. 여기 저기에서 자꾸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아시안, 한인의 목소리여서 그닥 주목을 받지 못한것 같은데, 뭔가 그 통로가 탁 트인 기분이 든다. 이것은 넷플렉스나 아마존 티비와 같은 플랫폼 변화의 덕분일까? 참고로 미국에서 아마존 무비를 통해 해피 클리너를 10불에 구매해서 봤다. 한국 드라마도 넷플렉스에서 몇번의 클릭이면 보는 세상이다. 세상도 바뀌었고, 그 흐름을 따라 이야기들도 가공 처리가 되어 여기 저기에서 스크린을 통해 마구 마구 솟아나고 있다. 

    해외에 사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그 숫자만큼 고유하고 다르겠지만, 또 어느 정도의 공통 분모들이 있다. 그런 공통점들이 인물들의 말과 대사와 행동과 눈빛으로 화면에 전달이 될 때, 나는 눈물이 나고, 생각에 잠기고, 그를 닮은 누군가를 떠 올리고, 아, 그리고 나도 언젠가 내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꿈을 꾼다. 


 행복 세탁소에서 일하는 그다지 행복하진 않지만, 조금씩 소소하게 행복을 찾아가는 이민 가족 이야기  

    뉴욕 플러싱에 사는 평범해 보이는, 정말로 그러한 가정이 있을법한, 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소재다. 오육십대 어디 쯤에 있을것 같은 한인 부부. 이들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온지 거의 이삼십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부부 슬하에 큰 딸과 작은 아들이 있고, 그 부부 위에 남편의 어머니가 근처에 따로 살고 계신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함께 세탁소를 운영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자영업자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건물주인가보다. 이들의 세탁소 역시 새 건물주로 인해 사업장에서 내쫒음 당한다. 이 식구 넷은 아파트 월세 살이를 하는데, 가끔 그 월세 마저 간호사이자 '기둥'같은 큰딸이 내기도 한다. 

    무능력해 보이고, 무기력해 보이며, 구닥다리 같아 보이는 아버지. 그는 한국에서 일하던 습관: 직속 상사에게 허리를 조아려 굽신거리며 인사를 하는 듯한 모습을 미국에서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사실 한국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극존칭에 가까운 존경의 표시이자, 예의 바른 사회인의 모습이었을 테지만, 미국에서 그 모습은 조금 다른 색을 띤다. 외국인의 모습이다. 미국 사회의 풍습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더라도 당당하고, 지나치리만큼 허리를 꼿꼿이 펴고, 과장되었다고 생각될만큼 크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온 몸에 자신감을 뿜뿜 내미는 것이 '덩치 큰 백인 남자'가 주류로 인식되는 미국에서 '자연스러운' 사회인의 모습 같다. 그래야 '아, 저 사람에게는 믿음과 신뢰가 간다'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 미국'물'이 들지 않은 이 한인 아저씨의 모습이 자녀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한번은 이 세탁소에 갑질을 하는 진상 손님이 찾아온다. 그녀는 '이 드레스는 수천달러짜리, 이름있는 명품 드레스인데, 너희들이 세탁을 잘 못해서 망쳐놨다. 그러니 어서 내게 500불 정도 보상비를 물려내라. 나는 수표도 안 받겠다. 그 수표가 제대로 안되서 여기 다시 와야 하는 수고로움을 하고 싶지 않으니, 당장 같이 은행가서 돈으로 달라.' 이렇게 말하는데, 세탁소 부부는 그냥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갑질 고객의 말을 들어준다. 다만 이를 지켜보는 아들의 눈에 부모는 뭔가 '당하는' 모습이라 억울하다. 이민 2세대인 아들의 눈에 부모가 일하는 방식조차 업데이트가 안되고 비효율적이다. 부모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앙앙대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하는 대사에는 이민 30년 자영업자들이 할법한 말들이 제법있다. 

(아들아) 니가 직접 사업을 해 보면 알 것이다. 여기에서 진짜 우리편이 있는 줄 아냐. 없어~. 

참 씁쓸하고 차가운 말이다. 그만큼 맨땅에 헤딩하듯 타국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 

    그런데 부모에 비해 더 많이 미국화가 된 아들과 딸의 속내도 마냥 말이 아니다. 좋게 말해서 그들은 코리안-어메리칸이라는 두 단어 사이에 있는 하이픈과 같은 존재라고 스스로를 말한다. Korean-American. 한국인에 가까운 부모 (사실 엄밀히 말하면, 부모도 30년 한국에서 생활, 30년 미국에서 생활했다면, 그들도 상당히 미국화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에 비해, 자녀 세대는 더 미국인에 가깝고, 그래서 부모와 미국 사이를 다리로 이어주는 역할이 자신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리가 되어 준다는 건 어떤 걸까? 영화에 나오는 큰 딸은 실용적인 간호학과를 나오고, 때때로 부모가 필요하다고 하면 재정적으로 튼튼한 뒷배가 되어주기도 하며,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가 투정을 부리듯이 '내겐 너 밖에 없다. 우리 딸이 최고다.' 하는 말을 듣는 큰딸의 속마음은 어떨까? 

    이 영화는 한국인의 기질들을 여기 저기에서 많이 보여준다. 한국 사람들은 속에 있는 진짜 말을 있는 그대로 직접 말하지 않고, 괜히 엄한 '밥'이야기만 주구장창한다. 그러니까 2세대의 눈에 보인 1세대들이 이러하다는 말 아닐까. 그냥 속에 있는 이야기를 직접, 툭, 꺼내 놓으면 되는데, 왜 우리 한인들은 엄한 밥타령만 저렇게 하나? 작가의 이런 시선이 들어가 있지 않나 싶다. 

    큰 딸이 새벽 6시에 일을 하러 나갈 때에도, (재정적으로 무기력해서) 존재감마저도 무기력하게 느끼는 아버지는 딸보다 일찍 일어나 흰쌀밥과 스팸햄과 계란으로 아침을 한가득 해 주고, 딸은 몇 입만 오물거리다 출근 한다. 아버지는 딸이 남긴 그 밥을 먹는다. 그런 딸의 남자 친구 역시 한인 2세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아프신 어머니. 그래서 짊어져야 할 무게가 많은 남친은 대학 공부를 휴학으로 미루고 허드렛일로 돈을 번다. 그런 남자와 수년동안이나 데이트를 하는 딸이 못마땅하지만 결국 어머니는 딸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딸의 남친을 우연히 만나 빵과 우유를 사 준다. 한국어가 서툰 한인 2세인 남친은 '어머니, 어머니가 저를 못마땅해하시는것 알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지만, 엄마는 또 그에 대하여 별 말이 없고, 대신 "빵 먹어. 일하려면 든든하게 먹어 둬야지." 이 말만 한다. 그러니까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하고 싶은 말, 속말을 하기 보다 빵을 사 주고, 밥을 해 주고, 그러면서 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눈다. 많은 말을 겉으로 드러내놓기보다, 음식으로 표현하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한식을 차리는 모습. 특히나 할머니가 손자에게 묵밥을 해 주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요새 묵밥을 먹는 한국인 20대들은 얼마나 될까? 그래서 이민인들의 이야기는 조금 낡아 보이기도 한데, 그래서 그만큼 독특하게 느껴지는것 같기도 하다.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한국에서 가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와 조금은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음식과 관련해 이 영화에서 가장 맘이 쓰렸던 부분은 어머니가 오이지를 만드는 장면이었다. 손목이 아파 아들에게 오이지를 좀 면보에 대신 짜 달라고 부탁하면서 '오이지 먹으면 우리 엄마 생각나. 나 이민오고 나서, 친정에 거의 못갔지. 오이지 먹으면서 우리 엄마 생각해야지.' 하는데 눈물이 펑펑났다. 자녀가 있고, 자영업이 안된다면, 그 험한 일상을 사는데 태평양 건너에 있는 친정 엄마보러 갈 마음 먹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래서 사실 해피 클리너를 보다보면 참으로 리얼해서, 생생하고 진짜 이야기, 혹은 정말로 누군가의 실제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심지어 배우들의 조금은 어색한 연기마저 역설적이게 진짜 같다. 뭔가 진짜 그러한 인물들이 현실 세계에서 그렇게 살다가, '자 우리 이제 이걸 영화로 찍을 테니까 여기에 와서 잠깐 연기만 해줘.' 라고 해서 찍은것같다. 그리고 '식구'라는 단어를 이 영화처럼, 조금은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그것이 진짜로 그러할 것 같았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머니는 네일아트를 시작하고, 아버지는 배달일을 하다가 우연히 다시 아는 누군가의 세탁소 일을 자영업이 아닌 시급을 받으면서 일하게 되고, 큰딸은 번듯하게 간호사 일을 하고, 작은 아들은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램과는 굿바이. 대신 퓨전 한식 푸드 트럭의 길을 간다. 그래. 미국은 장사의 나라이니까. 또 누가 알까. 푸드 트럭으로 대박이 날지. 사람일은 모르는거 아닌가. 인생에 답이 있나. 지금은 힘들어 보여도, 그래도 이 이야기는 그다지 신파도 아니며, 바닥 인생의 이야기도 아니다. 정말로 어쩌면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60대만 넘어도 할 일이 없는 한국에 비해 어쩌면 더 많은 경제적 가능성을 담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식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기도 했지만, 조금은 담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했다. 앞으로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도 쓸 수 있겠지! 

트레일러: 출처 https://youtu.be/WsvipA_QFd0

이미지 출처: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750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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