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게 무슨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소리야." 싶으시죠? 말장난 같지만 사실이랍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매일 한국에서 LA (Los Angeles)로 출근할까요? <LA 갈빗집> 이런 데 아니고요, 진짜 미국에 있는 LA입니다. 힌트 하나 드릴게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이런 형태의 일이 많아졌습니다.
눈치채셨나요? 네, 재택근무. 매일 온라인으로 출근합니다. 미국 땅을 밟기는커녕 집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죠. 노트북과 와이파이만 있으면 되니까요. '재택근무만 해서 회사가 잘 굴러가나?' 궁금한 분들도 계실 거예요. 잘 굴러가더라고요. 신기하게도. 사실 미국 현지에서 고용된 직원들도 재택근무를 하는지, 아니면 출퇴근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회사와 저의 관계를 밝혀야겠네요. 저는 정직원이 아닙니다. 회사와 1:1로 전속 계약을 맺은 계약직으로,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일한 만큼의 보수를 받아요. 보통 저를 이렇게 소개하죠. 계약직 프리랜서. 하지만 가끔 속으로 덧붙여요. '앞에 '프리(free)하지 않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해'라고요. 전속 계약의 함정 때문인데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루게 될 거예요.
미국 회사와 일한다고 하면 종종 사람들이 묻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국 기업이냐고요. 말 그대로 미국에 있는 미국 회사라고 답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이어지죠. "그럼 영어로 일해?" "영어로 무슨 일을 하는 거야?" "미국에서 월급은 어떻게 받아?" "급여는 한국이랑 비교하면 어때?" 등. 궁금한 게 많을 거예요. 흔한 직업은 아니니까요.
이곳에서 일한 지 올해로 7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라요. 부모님까지도요. 여기에는 이유가 있어요. 제가 계약을 맺은 곳은 IT 회사로, 업계 특성상 업무 내용의 대부분은 기밀입니다. 그래서 비밀스러운 직업을 가진 것처럼 보이나 봐요. 한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말하더라고요. "물어보는 것마다 다 기밀이래. CIA (Central Intelligence Agency,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이라도 되는 거야?"
앞으로의 글에서도 업무 내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피하려고 합니다. 회사의 기밀정보를 지켜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프로젝트마다 일의 성격과 작업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일했던 프로젝트의 내용을 모두 언급했다가는 글을 쓰는 저부터 질려버릴 거예요.
무엇보다도 단순한 직업 소개서 같은 글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직장도 있어요'라고 별스러운 직업을 소개하면서도, '그런 일을 하며 사는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평범한 내가, 영어가 아주 유창하지도 않으면서, 어쩌다 미국 회사에 귀속된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 몸은 한국에, 머리는 미국에 두며 일하고 있는지. 그 과정은 순탄했는지, 그렇게 사는 삶은 어떤지, 아쉽거나 후회되는 게 있는지를요. 앞서 언급했던 자주 듣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과 함께요.
어때요? 한국에 살면서 미국으로, 아니 미국 회사의 기밀 웹사이트로 출근하는 삶, 궁금하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