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1

'숫자 1. 하지만 내겐 사람이었습니다.'

by 감정 한 컵

그날은 별일 없었다.

딱히 속상한 일도 없었고,

누구한테 상처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조금 지쳤고,

조금 허전했을 뿐이다.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집에 돌아와 TV에 연결된 컴퓨터를 켰다.

브런치에 들어가 봤다.


구독자

1


처음 보는 숫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한자리가 오래도록 눈에 남았다.


구독이라는 건

말없이 누를 수 있는 버튼인데

그날따라 누군가가 나에게

"계속 써요"라고 이야기해 준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써온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공책이나 메모장 구석에

내 말들을 숨기듯 적어왔다.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그저 버티기 위해 써온 말들.


브런치 작가 신청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냥,

'혹시' 하는 마음으로 눌렀고

'안되면 말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승인이 났다.

기뻤다.

정말 기뻤는데

기쁨은 금방 낯선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뭔가를 계속 써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나를 조급하게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책상이 없다.

소파에 기대어

TV에 연결된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쓴다.

타자를 치다 보면 자세가 뒤틀리고

글보다 허리가 먼저 완성되는 날도 있다.


그래도 그 자리에 앉으면

어딘가 마음이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불편한 공간인데

이상하게 글은 그곳에서만 써진다.


그날따라 마음이 헛헛했다.

'나는 왜 이걸 계속하고 있을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때,

화면에 숫자 하나가 떠 있었다.


구독자

1


단 한 명.

하지만 그건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 사람은 분명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괜찮아요'

'잘 보고 있어요'

'계속해요'


나는 그 말에

무너지듯 울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노트북도 없이,

소파에 기대어,

누워지지도 않게 비스듬한 자세로

한 자 한 자 눌러가며.


잘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분이 내 글을 또 읽어줄 것 같다는 마음하나가

나를 다시 앉혔다.


그분은

내 글을 챙겨봐 주신다.

나는 그걸 안다.


그리고

그분만이 아니다.

매번 내 글에 들러주는 분들이 있다.

말 한마디 없어도,

그 손끝의 클릭 하나가

나를 다시 앉히고,

다시 쓰게 한다.


구독자 1은,

시작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시작 위에

천천히 쌓여가는 많은 마음들 위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써 내려간다.

누가 볼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 한 사람,

그리고 그 옆에 조용히 서있는 사람들까지도

내 글을 보고 있다는 걸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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