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넘으신 우리 할머니의 한마디
요즘따라 집에 있게되면 거실 소파에 달라붙어 티비를 보게된다. 그리고 할머니는 옆에 앉아 일일드라마라던가 좋아하는 목사님의 방송을 보신다.
나는 할머니와 산다. 종종 할머니가 낮설어하는 요즘 문화라던지 기계 사용법이라던지 알려드리고 티비를 보면서 잘 안들리시는 대목에 대해 통역기가 되어 설명해드린다. 대화가 꼬리를 물다보면 할머니가 겪은 옛날 이야기 - 북에서 피난오던 우여곡절, 할머니가 살림을 도맡았던 대가족의 일상 같은 것-를 듣기도 한다.
이렇게 나란히 소파에 앉아 얘기를 하거나 티비를 볼 때면 나는 7살 아이처럼 내 머리를 할머니 무릎에 얹어 눕거나 살짜기 할머니 등에 기대기도 한다. 그럴때면 할머니는 얘봐라, 나무라는 듯 하면서도 내심 귀여워하하신다.
오늘은 식탁 주변을 정돈하다가 무엇때문에 내가 흥이났는지 아니면 뻐근했는지 몸을 방방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시던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네가 그러니 사람사는 것 같다
어린 애들이 집에서 뛰어놀고 그래야 사람사는 느낌이 들고, 집엔 그런 사람사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같았다. 듣고보니 내가 이 집에 없을땐 얼마나 적적하실까 생각이 든다. 회사가 같은 서울이면서도 멀다면 멀기에 독립을 해볼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아흔이 넘은, 희끗한 머리에 주름이 자글한 우리 할머니 얼굴을 보며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출근은 조금 고생스러워도 할머니 옆에 있는 도란도란 포근한 시간이 아직은 더 좋지않을까 싶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