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투성이 웨이퍼가 나만의 수율을 찾아가는 법
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삶은 끊임없이 새로운 패턴을 요구한다.
원하는 대로 깔끔하게 깎일 때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결함(Defect)에 걸려
숨이 막히는 날도 있다.
완벽한 공정이란 없고,
인생에서 100%의 수율(Yield)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15년 넘게 반도체 공정이라는 치열한 챔버 안에서
무언가를 깎아내고, 쌓아 올리고, 패턴을 새기며 살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 삶을 ‘Etch the Life’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 용어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거대한 웨이퍼 위에서
무엇을 깎아내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에 대한
나만의 방식이었다.
가난이라는 결함은 나를 오래도록 깎아냈고,
아버지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불량(Fatal Fault)은
기반층을 크게 흔들었다.
하지만 그 결핍의 식각이 나를 부서뜨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나는 깎여 나간 자리 위에서
나만이 새길 수 있는 새로운 패턴을
찾아야만 했다.
그 긴 공정의 시간을 거쳐 팬데믹의 고립 속에서,
벨기에의 느린 겨울 속에서
나는 다시 배웠다.
가장 복잡한 문제도 결국
사람에게서 시작되고, 사람을 통해 풀린다는 것.
삶은 최적화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으며,
때로는 우회와 손실, 비효율을 감내해야
다음 공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삶이라는 거대한 챔버 안에서 반응하는
하나의 웨이퍼에 불과하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나는 이제 내가 깎이고 부서지는 것을
덜 두려워한다.
식각 된 자리에 더 나은 패턴을 새길 수 있다는 걸,
결함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자란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믿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흔들리면 다시 균형을 잡는다.
지워야 할 층은 조용히 지우고,
남겨야 할 본질은 더 깊게 새긴다.
삶은 여전히 복잡한 멀티패턴이지만,
나는 그 위에서
나만의 공정을 설계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내 삶을 식각 한다.
그리고 이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나는 여전히 — Etch the Life 중이다.
이 글을 끝으로 〈마음공정〉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함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