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웨이퍼 같던 나를 '양품'으로 되살려낸 헌신의 기록들
어린 시절, 나의 수율은 바닥이었다.
가난이라는 결함(Defect)은 너무 많았고,
아버지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불량(Fatal Fault)은
나를 오래 흔들었다.
나는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불량 웨이퍼와 같았다.
그런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돌려세워준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어머니다.
어머니의 삶은 남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가혹한 공정의 연속이었다.
내가 태어나는 해 첫째 아들을 떠나보내고,
남편마저 사고로 잃은 뒤
평생 집안일만 하던 분이 세상 밖으로 나와야 했다.
치킨집 뜨거운 튀김기 앞에서
기름 냄새를 뒤집어쓰며
하루하루를 버텨낸 어머니.
그 노동은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킨 기반이었다.
겨울날 언 손을 녹이며 밥을 짓고,
김치찌개 하나로 웃던 그 얼굴은
내 인생 가장 낮은 온도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활성화 에너지(Activation Energy)였다.
어머니는 내 결함을 수없이 복구하고
불량 난 마음을 다시 올곧게 세워준
최고의 수리 엔지니어(Repair Engineer)였다.
이제는 굽은 어깨와 거칠어진 손마디만이
그 지난한 공정을 말해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누나는 우리 집의 살림 밑천이 되어
가장의 짐을 짊어졌다.
내가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누나라는 지지층(Support Layer)이
결핍의 공정 속에서
나를 밑에서 떠받쳐주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아버지가 떠날 때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품고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일구어낸 그녀는,
고통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 패턴(Pattern) 그 자체였다.
독립 전 내 가족은
내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준
가장 단단한 구조적 레이어였다.
아내는 내 인생의 수율을 압도적으로 끌어올린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였다.
경제관념이 부족했던 나에게
자본의 언어를 가르쳐주고,
해지했던 청약 통장 대신
당신의 통장으로 우리 가족의 집을 마련해 준 사람.
현명함과 강인함으로 가정을 이끈 아내는
내 삶의 기반층을 안정화시킨
가장 단단한 하부막(Sub-Layer)이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두 딸은 차갑고
이성적인 엔지니어의 세계에
사랑을 불어넣어 준
강력한 희망의 광원(Light Source)이 되어주었다.
지금껏 묵묵히 우리 가족을 지켜주신
장인·장모님에 대한 고마움도 빼놓을 수 없다.
장모님은 투병 중인 아픈 몸으로도
해외 파견을 고민하던 우리에게
“아이들을 위해 가라”며 등을 밀어주신 분이다.
장인어른은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의 조용한
레퍼런스 레이어(Reference Layer)로 남아 계신다.
보이지 않지만 기준이 되고,
흔들릴 때마다 방향을 잡게 해주는 층.
두 분은 내 인생 수율을 조용히, 꾸준히 끌어올린
가장 따뜻한 완충층(Buffer Layer)이었다.
이 모든 헌신이 모여
우리 가족은 이제 겨우
안정된 수율을 논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다.
결핍의 끝자락에서 시작해,
이제는 식구들을 비바람으로부터 지켜줄
작은 울타리를 가졌다는 안도감.
이것은 단순히 통장에 쌓인 숫자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벼랑 끝에서 함께 만들어낸
삶의 양품(Good Die)들이다.
인생에서 완벽한 수율은 없다.
새로운 변수는 언제든 생기고,
보이지 않던 결함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40대 후반, 대기업 수석 엔지니어라는 자리 역시
화려해 보이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라는 살얼음판 위에 놓여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변수조차
수율을 높이기 위한 기회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나 혼자 양품으로 남는 것을 넘어,
내가 얻은 이 수율의 레시피를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다.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자기 삶의 첫 공정을 시작하게 하는
희망의 트리거(Trigger)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아직 삶이라는 챔버 안에서 반응 중이고
공정은 끝나지 않았지만,
함께해 준 사람들 덕분에
이제 어떤 결함이 와도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