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돌아온 공정, 달라진 마음

유럽의 느린 시계가 남긴 ‘선택비’

by JP 정표

벨기에에서의 2년은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바꾸는 연습이었다.


동시에 가족에게는
평소엔 놓치기 쉬운 시간을
조용히 되돌려준 계절이기도 했다.


그 시간이 흐른 뒤,
2025년 여름
나는 다시 화성으로 돌아왔다.


인천공항의 습한 공기가 사라지고
캠퍼스 게이트를 넘는 순간,


내 몸은
묘하게 기억하고 있던 긴장감으로
다시 조여들었다.


2년 만에 돌아온 반도체 연구소는
건물도,
복도를 서둘러 지나가는 발걸음도
그대로였다.


벨기에에서 보낸 2년—


그 모든 경험을 지나
조금은 단단해진 채로,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진 채로
나는 그렇게 돌아와 있었다.




복귀 후 맡게 된 업무는
이전과는 결이 달랐다.


HBM, 이종 집적, 3DIC….


요즘은 칩 하나를 잘 만드는 일만으로는 부족하고,

칩을 고층 아파트처럼 수직으로 쌓고

그 층과 층을 정교하게 연결하는 기술이

성능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짧은 2년이었지만

현업의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회의실에서는

처음 듣는 용어들이 튀어나왔고,

개발 경쟁의 긴박함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듯했다.


솔직히 겁이 났다.


“내가 이 흐름을 다시 따라잡을 수 있을까?”
“현업을 떠난 공백이 나를 뒤처지게 만든 건 아닐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 안에서는 오래된 자격지심이
천천히 증발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이가 주는 복잡함도 있었다.
나는 이제 40대 중반을 넘어선
수석 엔지니어, 고년차였다.




그런데도

예전의 나처럼 흔들리지는 않았다.


벨기에에서 보낸 2년이라는 시간이
내 안에 조용히
하나의 층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쉽게 깎이지 않는 보호막층.
하드 마스크.


과거의 나였다면
조직의 분위기나 누군가의 한마디에
쉽게 식각 되어
마음까지 함께 깎여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게 반응한다.




반도체 식각 공정에서 중요한 스펙 중 하나는
선택비(Selectivity)다.


깎아야 할 부분은 정확히 제거하되,
지켜야 할 기반층은
절대 손상시키지 않는 능력.


선택비가 낮으면
원치 않는 영역까지 함께 파고들어
후속 공정이 막힌다.


돌아보면
나는 오랫동안 선택비가 낮은 사람이었다.


조직의 압박이 들어오면
업무만 깎이는 게 아니라
내 멘탈, 자존감, 자기 가치감까지
함께 식각 됐다.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면
인생 전체가 식각 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외부의 압박을
압박으로만 받아들일 뿐,
더 이상 내 깊은 층까지 침투하게 두지 않는다.


회의실에서 누군가 날카롭게 묻는다 해도
그 말의 ‘의도’를
나에게 씌우지 않는다.


“아, 지금 데이터의 정합성을 묻고 있구나.”


나는 팩트만 걸러 듣는다.
지켜야 할 층은 지키고,
깎아도 되는 층만 깎아낸다.


요즘 내가 연습하는 선택비는,

고선택비(High Selectivity) 마인드셋이었다.




다행히 업무 적응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공정의 디테일은 달라졌어도
문제를 진단하고 가설을 세워 검증해 나가는
공학적 로직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벨기에에서 배운 ‘다양성을 수용하는 자세’는
복잡한 이슈의 줄기를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퇴근길,
사내 불빛이 창밖으로 스친다.


예전엔 그 불빛들이
나를 감시하는 시선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안다.


불빛은 그저 불빛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의 몫을 다했고,
이제 집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을.


오늘도 회사라는 챔버 안에서
치열하게 반응했지만,
집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스크래치 없이
매끄럽고 단단했다.


이것이 내가 지켜온 나의 선택비,
그리고 돌아온 공정 위에서
다시 삶을 패터닝해 나가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