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속도에 적응하는 법
벨기에에 도착한 순간,
유럽은 우리에게 환대가 아니라 현실의 청구서를 먼저 내밀었다.
“어서 오세요”보다
“다음 서류는요?”가 먼저였다.
처음 두 달은 호텔과 에어비앤비를 전전했다.
거주증, 의료, 통신, 학교...
모든 시스템에 다시 로그인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 지원덕에
벨기에 테르뷔렌 (Tervuren) 2층 전원주택에 입성했다.
한국 아파트 키드에게
드넓은 정원이 딸린 집은 순도 100%의 로망이었다.
“이제 주말마다 바비큐 파티 해야지!”
들뜬 나를 보며 아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잔디는 누가 깎고?”
나는 너무나 순진하게 답했다.
“기계가… 깎아주겠지?”
로망은 정확히 2주 뒤, 산산이 부서졌다.
유럽의 잔디는 공포영화 속 괴물처럼 자라났다.
정원은 ‘꾸미는 공간’이 아니라,
정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동의 현장이었다.
주말 아침 단잠 대신
예초기 소리가 주말의 시작을 알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공짜 아침이 없듯,
공짜 정원은 없다는 것을.
한국인에게 집의 온기란
‘뜨끈한 온돌’이다.
하지만 이곳의 온기는
라디에이터 주변만 맴도는
건조한 따뜻함이었다.
‘이게 유럽 감성이구나..’
싶어 거실 가스 벽난로를 한 달 동안 켰다.
그리고 다음 달,
150만 원에 육박하는 고지서가 왔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고,
고지서를 몇 번이나 다시 봤다.
결국 우리는
낭만을 버리고 생존을 택했다.
각 방마다 한국에서 가져온
난방 텐트를 펼쳤다.
벨기에의 전원주택 안,
형형색색의 텐트들이 들어찬 풍경.
결국 우리 가족의 겨울을 지켜준 건
벽난로도 히터도 아닌
난방 텐트와 온수 매트였다.
집이 물리적 현실을 보여주었다면,
벨기에의 시스템은 인내를 요구했다.
한국의 “빨리빨리”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거주증을 만드는 과정은 대하드라마였다.
시청 방문 → 경찰 방문 → 기다림 → 다시 호출.
플라스틱 카드 한 장을 받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곳은 서류가 아니라 시간과 발품으로
신뢰를 증명하는 곳이구나.”
인터넷 설치는
드라마를 넘어 코미디였다.
약속한 오후 내내 오지 않는 기사.
분통을 터뜨리는 나와 달리
아내는 해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보, 다음엔 그냥 오전으로 잡아.
여긴 오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반도체 회로에서는
보내는 쪽과 받는 쪽의 저항을 맞추는 것을
'임피던스 매칭(Impedance Matching)'이라 한다.
이것이 맞지 않으면
신호는 반사되고
에너지는 손실된다.
벨기에에서의 초기 정착 생활은
나와 유럽 사이의
임피던스를 맞춰가는 과정이었다.
한국식 속도와 효율을 고집하면(Mismatch)
화가 되돌아와 내 안에서 반사됐다.
내 속만 타들어 갔다.
하지만 그들의 속도를 인정하고,
낭만 뒤에 숨은 현실—
노동과 추위를 받아들이자
비로소 삶이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겨울에는 벽난로 대신 난방 텐트 속에서
느릿한 유럽의 시계에
내 시계를 맞춰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