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ㅣ 반도체 공정에서 배운 삶의 레시피
“반도체 뉴스, 외계어 같아서 그냥 덮어버리셨나요?”
맞습니다. 반도체는 차갑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기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코 차갑지 않습니다.
축구장 스무몇 개 크기의 반도체 팹(Fab).
밖에서 보면 기계들이 돌아가는 비밀 요새 같지만,
15년째 그 안에서 일하는 제 눈에는
치열한 인생이 끓고 있는 거대한 주방입니다.
여기엔 이런 요리가 있습니다.
불필요한 욕심을 덜어내야 비로소 본질이 남는 식각(Etch),
보이지 않는 하루를 성실히 쌓아야만 높이 오를 수 있는 증착(Deposition),
뜨거운 열기를 견뎌내며 단단해지는 산화(Oxidation).
놀랍게도, 이 공정들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삶의 희로애락과 꼭 닮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이곳을 ‘기술을 설명하는 강의실’이 아니라,
지친 하루 끝에 잠시 들러
따뜻한 생각거리 하나를 받아갈 수 있는 키친(Kitchen)으로 만들기로요.
이곳에서는 어려운 공부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런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거친 모래가 빛나는 웨이퍼가 되는 과정에서 배우는 성장의 가능성
수백 겹을 쌓아 올리는 구조에서 배우는 겸손과 균형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공정에서 배우는 나를 지키는 태도
물론 이 이야기들을 따라오다 보면,
그토록 낯설던 반도체가
조금은 친숙한 언어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더 대접하고 싶은 요리는 따로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문득,
“아, 내 하루도 이렇게 의미 있게 쌓이고 있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는 순간 말입니다.
AI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술 지식만이 아니라,
그 기술 너머를 읽어내는 인문학적 통찰이라고 믿습니다.
엔지니어의 이성과 셰프의 감성으로 정성껏 차린 식탁.
반도체 키친(Semiconductor Kitchen)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 이제 첫 번째 접시를 비우러 가보실까요?
— JP 정표
(Editor's Note: 이 프롤로그는, 2025년 12월말에 새롭게 다듬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