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명 'JP 정표', 인생 주가 흐름 분석 보고서
주식 창을 들여다보면
빨간불과 파란불 사이에서 희비가 오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능인가 보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의 회사 주식 차트는 캔들 하나까지 분석하면서,
정작 ‘나’라는 종목의 차트는 한 번도 진지하게 복기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그래서 이번에는 40대 내 인생의 주가 흐름을 차분히 뜯어보기로 했다.
[종목 분석 보고서]
종목명: JP 정표
현재가: 우상향 중 (Holding)
내 차트는 화려한 상장이 아니었다.
10대에 아버지를 갑작스레 떠나보내며 말 그대로 폭락장을 맞았다.
지지선은 무너졌고 심리선은 바닥을 기었다.
그 시절 차트에는 상승도, 횡보도 없었다.
그저 ‘생존(Survival)’이라는 최후의 지지선을 지키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연재 브런치북] 마음공정 나를 새기다 1,2장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는
차트가 곧게 누워 있는 지루한 박스권(Box Range)이었다.
[연재 브런치북] 마음공정 나를 새기다 3장, 12/7(일) 09:00
대학교 졸업, 대학원, 박사 과정...
겉으로 보면 스펙을 쌓는 완만한 상승처럼 보였겠지만,
실제로는 내부 축적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는 남들 눈에는 박스권처럼 보였지만,
내 안에서는 변화의 활성화 에너지를 끓여 올리던 시기였다.
거래량도 적고, 뉴스도 없고, 대세 상승의 기미도 보이지 않던 시절.
시장은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절, 내 종목을 ‘부도 위험 낮은 우량주’라고 판단하고
지분을 팔지 않은 채 끝까지 들고 가준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아무런 스포트라이트도 없던 생존기 시절에 나를 먼저 매수해 준 사람 — 지금의 아내.
그녀의 조용한 장기 보유(Long-term Holding)가 없었다면,
나는 그 긴 박스권을 견디지 못하고 상장 폐지되었을지도 모른다.
반도체 공정에는 불필요한 막을 날카롭게 깎아내는 Etch(식각)이라는 과정이 있다.
삶도 그렇더라. 새로운 걸 더한다고 무조건 우상향 하는 게 아니었다.
내 인생이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건, 오히려 과감하게 ‘덜어냈을 때’였다.
남의 기준, 맞지 않는 역할, 오래된 두려움, 부질없는 욕심...
이런 ‘거품’들을 하나씩 Etch 해내자 비로소 내 종목의 본질 가치가 드러났다.
삶의 영업이익률이 좋아졌다.
손절(Loss Cut)은, 때로 인생에서 가장 현명한 투자 전략이다.
내 인생의 첫 번째 골든크로스(Golden Cross)는 30대 후반에 조용히 그려지기 시작했다.
두 딸이 태어나고, 마침내 청약에 당첨되어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생기던 시기.
내 삶의 장기 이동평균선이 정배열로 바뀌었다.
그때 깨달았다. ‘가족’이라는 펀더멘털(Fundamental)이 단단하게 받쳐줄 때,
인생의 차트는 자연스럽게 우상향의 기울기를 얻는다는 것을.
이 시기는 말 그대로 내 인생의 1차 대세 상승기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올해 가을, 추석 즈음. 뜻밖의 강력한 상승 모멘텀(Momentum)이 들어왔다.
바로 ‘글쓰기’였다.
차갑고 계산적인 공학의 이동평균선 위에, 문학이라는 따뜻한 이동평균선이 합류했다.
삶의 차트에는 두 번째 골든크로스, 또 하나의 강력한 매수 신호가 떴다.
잠은 줄었지만, 나는 꾸준히 쓴다.
지금의 단기 배당(잠, 휴식)을 줄이고, 미래의 장기 성장성을 선택한 셈이다.
나는 안다. 이 상승은 반짝하고 사라질 ‘테마주’가 아니라,
조용하지만 확실한 추세 전환(Trend Reversal)이라는 것을.
2년간의 해외 파견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내 인생의 배당금(여유·저녁·나만의 시간)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불안하지 않다.
배당이 일시적으로 줄었다고 해서 기업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
지금은 조정기, 그리고 더 큰 도약을 위한 재정비 구간이다.
나는 앞으로 내 삶의 배당 정책을 조금씩 회복시켜 갈 예정이다.
평일 가족과의 저녁 한 끼, 퇴근 후 적는 글 쓰기... 작지만 확실한 배당부터 다시 시작하려 한다.
나는 주식을 자주 사고팔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포트폴리오를 천천히 들여다볼 뿐이다.
내 인생도 그렇다.
하루하루의 단기 변동성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버티는 종목이 결국 수익을 준다는 걸 알고 있다.
사주 명리에서도 나는 초반보다 중후반이 강한 ‘성장형 종목’이라고 하더라.
그 말이 이상하게도 내 삶의 경험과 겹쳐 보인다.
폭락장도, 지루한 박스권도 지나... 지금 ‘JP 정표’라는 종목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우상향 중이다.
그리고 나는, 주가 바닥권일 때부터 내 지분을 팔지 않고 곁을 지켜준 아내와 가족에게,
언젠가 더 큰 배당으로 보답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인생이라는 종목을 묵묵히 홀딩(Holding)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