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10도와 1,000도 사이에서
2026년 1월 1일. 새해 첫날의 발인식이었다.
그날 아침, 공기는 영하 10도까지 내려가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번졌다.
그 김이 마치 “아직 여기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우리는 1,000도 앞에 서게 될 걸 알고 있었다.
차에 오르기 전,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아빠가 오늘은 온도차를 크게 느끼시네.”
장례식장 밖의 겨울 아침은 영하 10도였고,
잠시 뒤 우리가 향할 화장장은 1,000도를 훌쩍 넘는 열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을 보내는 하루가 영하 10도에서 1,000도로 급격히 이동하는 일이라니.
몸이 먼저 받아들이고, 마음은 한참 뒤에야 비틀거리며 따라오는 기분이었다.
반도체 공정에서도 온도는 늘 예민한 변수다.
너무 빨리 올리면 균열이 나고, 너무 급하게 내리면 뒤틀린다.
우리는 그걸 열충격(Thermal Shock)이라고 부른다.
한 번 생긴 스트레스는 표면 아래에 숨어 있다가,
아주 사소한 순간에 결과물 전체를 망가뜨리곤 한다.
그날의 아내는 열충격을 그대로 맞는 소자 같았다.
마음은 아직 장례식장에 있는데, 몸은 이미 다음 공정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시간은 새해를 향해 달려가는데, 슬픔은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뒤처졌다.
장례식은 이상하게도 ‘슬퍼하라’는 감정의 시간이라기보다
‘진행하라’는 공정의 시간처럼 흘러갔다.
화장장 앞에서 다시 한번 온도를 실감했다.
사람이 떠나는 순간이 이렇게 뜨거울 줄은 몰랐다.
불은 너무 확실했고, 절차는 너무 정확했다.
문득 생각했다. 앞으로의 장례는 더 작아지고, 더 효율적으로 정리될지도 모르겠다고.
저출산 시대, 관계가 얇아지는 시대.
슬픔도 언젠가는 화면 속에서 처리되는 일이 될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기억에 남는 건 그 어떤 시스템도 아니었다.
연말에도 달려와 준 친구들, 진심 어린 메시지를 보낸 선후배와 동료들, 그리고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버틴 가족들.
그들이 건넨 위로와 손끝의 온기 같은 작은 접점(Interface)들이 우리가 그날을 버틸 수 있었던 전부였다.
미래의 장례식이 아무리 바뀌어도,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붙잡아주는 건
화려한 형식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체온일지도 모른다.
아내의 말이 자꾸 돌아온다.
“아빠가 오늘은 온도차를 크게 느끼시네.”
언젠가 내 인생이 공정이 끝났을 때를 상상해 본다.
다 끝난 뒤 드러날 마지막 표면이, 누군가에게 매끄럽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오늘 하루라는 회로 위에 나는 조용히, 나만의 온도를 정성껏 새겨본다. — Etch the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