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끝난 줄 알았는데도 마음에 남아 내일을 흐리게 하는 말들에 대하여
유난히 대화가 많았던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누우면,
사방이 조용해진 틈을 타서
낮에 들었던 말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분명 그 자리에서는
다 풀고 웃으며 헤어졌는데,
왜 어떤 문장은
마음의 벽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걸까요.
아까 그 표정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 말 뒤에 숨겨진 의도가 있었나.
이미 상황은 끝났고,
상대는 잊었을지도 모를 말들인데
잔상은 밤새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깨끗이 씻어냈다고 생각했는데도,
끈적하게 남아
내일의 기분까지 건드리는 이 찌꺼기들.
저는 요즘
그런 흔적을
삶에 남는 레지듀라고 부르곤 합니다.
작품명: 기억의 얼룩 (Stains of Memory)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으로 그려진 4x5 비율의 유화.
청명한 푸른 하늘 위로 햇살이 비치고 있지만,
화면 곳곳에는 씻기지 않은 검은 구름 같은 얼룩들이 남아 있습니다.
맑은 배경과 대비되는 이 흔적들은
지나간 일의 잔상과
쉽게 떨어지지 않는 감정의 찌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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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아픈 기억도, 부끄러운 실수도
아무 흔적 없이 지워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어떤 날의 말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밝은 오늘의 하늘 위에도
작은 얼룩처럼 남아 있곤 합니다.
이 그림은 제게
바로 그런 잔상의 표정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반도체 공정에서는
회로를 만들기 위해 감광액(PR)을 바르고,
식각을 마친 뒤에는
그 역할을 다한 막을 벗겨내는 공정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가끔,
완벽하게 제거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주 미세한 잔여물이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레지듀(Residue), 잔여물입니다.
레지듀는 작고 미미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얇은 찌꺼기 하나가 남아 있으면
다음 층을 쌓을 때 제대로 붙지 않거나,
엉뚱한 곳을 연결해 버리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요.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다 지웠다”는 감각을 쉽게 믿지 못합니다.
구석구석을 다시 보고,
한 번 더 확인합니다.
큰일을 막는 건
늘 마지막에 남은 한 점이니까요.
삶에서 생기는 말의 잔상도
어쩌면 비슷합니다.
대화가 끝났는데도
어떤 문장이 마음 바닥에 눌어붙어
다음 날의 표정까지 흐리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그게 오해인지,
내 예민함인지,
혹은 단순히 피곤해서인지
정확히 모르겠는데도요.
예전의 저는
그 레지듀를 빨리 없애고 싶었습니다.
더 설명하거나,
더 따져 묻거나,
혹은 “별일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덮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하게 닦아낼수록
더 번지는 잔상도 있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지우기보다
헹구는 쪽에 가까운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그 말은
그 사람의 하루였을지도 몰라.
내 가치가
그 문장 하나로 결정되는 건 아니야.
진심이 다 전달되지 않았어도,
오늘은 여기까지여도 괜찮아.
이건 정답이라기보다
내 마음을 다음 하루로 넘기기 위한
작은 세정 같은 느낌입니다.
아주 강한 약품이 아니라,
조금 더 따뜻한 물로요.
오늘 하루,
당신의 마음 벽에
유난히 끈질기게 붙어 있는 말이 있나요.
그게 레지듀가 되어
내일의 당신을 방해하지 않도록,
지금 당장 완벽히 지우진 못해도
한 번만 조용히 헹궈봐도 좋겠습니다.
그 말이 남긴 잔상이
당신의 하늘을 전부 가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 JP 정표 | 결함의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