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어려운 거리
가까운 사람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들을 때,
저는 가끔 그 말의 두께를 가늠해 보곤 합니다.
어떤 날의 “괜찮아”는
속이 비칠 만큼 얇고 투명해서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어떤 날의 “괜찮아”는
성벽처럼 두껍고 단단해서
도무지 그 너머의 진심을 읽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말 한마디에도 저마다의 두께가 있더군요.
상대가 쳐놓은 경계가 너무 얇으면
무심코 던진 말 한 줄에 상처가 날까 조심스러워지고,
반대로 지나치게 두꺼우면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그 앞에서 멈춥니다.
저는 종종 그 사이에서
말을 더 해야 할지, 멈춰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곤 합니다.
작품명: 빛의 경계선 (The Glowing Threshold)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을 오마주한 4x5 유화.
어두운 심연 위로 일렁이는 황금빛 선들이
마치 지층이나 파동처럼 겹겹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선들은 서로 닿을 듯 말 듯 평행을 유지하며,
어둠을 밀어내고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반도체에도 성질이 바뀌는 경계가 있습니다.
그 선을 넘지 못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너무 과하게 넘어가면 오히려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 황금빛 선들은
그 위태롭고도 찬란한 '한계'의 기록처럼 보입니다.
반도체에서 CD(Critical Dimension)는
선의 두께를 가늠하는 기준에 가깝습니다.
너무 얇으면 끊기고,
너무 두꺼우면 옆 선과 간격이 무너져
원치 않는 간섭이 생깁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한 번에 정답을 맞히기보다
조건을 조금씩 바꿔가며
허용되는 폭을 찾습니다.
그 범위를 공정 윈도우라고 부릅니다.
관계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습니다.
마음을 너무 얇게 내밀면
가벼운 말로 읽히고,
너무 두껍게 내밀면
상대의 숨을 좁히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그 경계에서 종종 삐끗합니다.
정성을 담는다고 덧붙인 말이,
어느새 설명이 아니라 설득이 되어버린 날이 있었습니다.
배려한다고 줄이다가,
정작 필요한 진심이 빠져버린 날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뒤늦게 알게 됩니다.
문제가 된 건 말의 내용이 아니라,
어쩌면 말의 두께였는지도 모른다는 걸요.
요즘은 그래서
말을 건네기 전에
아주 짧게만 제 마음을 확인해 봅니다.
지금 이 말은 너무 얇은가.
아니면 너무 두꺼운가.
대답이 늘 맞지는 않지만,
그 질문 하나가
제가 누군가를 밀어붙이거나
반대로 너무 멀어지는 일을
조금은 늦춰주더군요.
여러분은 요즘,
어떤 두께로 마음을 건네고 계신가요?
— JP 정표 | 결함의 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