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 말하려다 오히려 관계를 깎아낸 순간들에 대하여
가끔은 말이 길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처음엔 잔소리가 한 문장이었는데
어느새 두 문장, 세 문장.
설명은 점점 더 촘촘해지고,
아이의 표정은 조금씩 멀어집니다.
그때 저는 알아차리면서도
이상하게 멈추지 못합니다.
“여기까지만”이 아니라
“조금만 더”를 선택해 버리거든요.
그리고 대개는
말이 끝난 뒤에야,
아이의 표정을 보고 깨닫습니다.
아, 그때가 종료점이었구나.
작품명: 날카로운 멈춤의 시간 (Sharpness of the Pause)
빈센트 반 고흐의 정물화풍을 오마주한 4x5 유화.
투박한 나무 탁자 위에 낡은 초시계와 날 선 면도날이 놓여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베어낼 듯한 긴장 속에서
희미한 붉은빛이 멈춤의 순간을 조용히 알립니다.
[도슨트 JP의 한마디]
반도체 공정에는
조금 더 가면 안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삶도 비슷하더군요.
더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때 멈추는 쪽이
무언가를 지켜주는 날이 있습니다.
반도체 공정에서 EPD(End Point Detection)는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에칭을 하다 보면
깎아야 할 층이 있고,
건드리면 안 되는 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보고 듣습니다.
지금이 아직 진행 중인지,
이미 목표에 도착했는지,
혹은 너무 멀리 가고 있는지.
종료점을 놓치면
공정은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됩니다.
그리고 그 “조금 더”
남겨야 할 것까지 함께 깎아버리곤 합니다.
저는 그 개념을 알면서도
삶에서는 자주 종료점을 놓칩니다.
아이의 표정이 흐려지는 순간,
대화가 무거워지는 순간,
상대가 “알겠어”라고 말하는 순간.
사실 신호는 있었는데
저는 그 신호를
‘끝’이 아니라 ‘버티면 넘어갈 구간’으로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면
돌릴 수 없는 흔적이 남습니다.
말은 지나갔고,
상대의 마음은 조금 닳아 있고,
저는 뒤늦게
혼자 복기를 합니다.
요즘은 그래서
저만의 EPD 신호를
조금씩 배워보려 합니다.
아이가 눈을 피할 때,
대화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질 때,
내 말이 설명이 아니라 증명이 되기 시작할 때.
그때는
뭔가 더 잘 말하려 하기보다
그냥 한 박자 멈춰보는 쪽으로요.
완벽하게 멈추는 데 성공하진 않지만,
가끔은 그 한 박자가
관계를 덜 깎아내는 날도 있더군요.
혹시 여러분에게도
“아, 여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싶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그때를 떠올리면
어떤 신호가 가장 먼저 생각나시나요?
— JP 정표 | 결함의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