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의 미술관] 오늘 나는 조금 더였을까, 조금 덜 이었을까
요리할 때 제일 곤란한 주문은
"소금 약간이요", "간은 적당히요" 같은 말입니다.
조금 덜 넣으면 맹맹하고,
조금 더 넣으면 그릇 전체가 달라져 버리죠.
관계나 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열정이 앞서면 누군가에겐 뜨겁고,
조심히 길어지면 또 누군가에겐 차갑습니다.
'적당히'라는 말이,
사실 제일 어렵습니다.
작품명: 흔들리는 저울 (The Swaying Balance)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으로 그려진 유화.
화면 왼쪽은 이글거리는 태양과 용암처럼 흐르는 불의 세계가,
오른쪽은 차가운 달과 얼음 절벽이 서 있는 냉기의 세계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 극단적인 두 세계 사이로 좁고 위태로운 황금빛 소용돌이 길이 나 있고,
한 인물이 중심을 잡으며 조심스레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반도체 식각에서도 늘 고민은 비슷합니다.
조금 더 깎으면 Over-etch, 조금 덜 깎으면 Under-etch.
그 사이의 아주 좁은 구간—공정 마진(Process Window)을 찾는 일이
결국 제품을 살리는 길이 되지요.
삶의 균형도 어쩌면 그런 것 같습니다.
한 번에 ‘정답’을 맞추기보다,
오늘의 무게중심을 조금씩 옮기며 버티는 일.
얼마나 사랑해야 과하지 않고,
얼마나 침묵해야 무관심해 보이지 않는지.
누가 레시피처럼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삶은 한 번의 식각으로 끝나지 않더군요.
오늘 조금 과했다면 다음에는 시간을 줄여보고,
오늘 조금 모자랐다면 다음에는 용기를 조금 더 내보는 식으로.
요즘의 저는
완벽한 균형보다
"아, 지금 내가 Over 쪽이구나"
혹은 "지금은 Under 쪽이구나"
그걸 알아차리는 쪽을 더 믿어보려고 합니다.
그 정도면
관계가 타버리는 일을
조금은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오늘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조금 더였나요, 아니면 조금 덜 이었나요?
— JP 정표 | Etch the Life